민족기록화관 개관

박각순-산업선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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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S김지선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4월 18일 (화) 14:4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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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박각순-산업전철선-1975s.jpg
작가 박각순
제작연도 1975년
규격 300호(197x290.9cm)
유형 건설/교통
분류 유화
소장처 미상


개요

전철은 수송목적에 따라 시가지전철, 도시전철, 교외전철, 도시간전철, 간선전철, 산업선전철 등으로 구분되는데, 해당 작품은 산업선전철 중 석탄, 시멘트, 목재 등을 대량 수송하는 영동선 전철을 담고있다.[1]
영동선 전철은 강원 태백산지에 매장되어 있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수송하면서 지역개발은 물론 산업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였으며, 지금도 시멘트와 석탄 등의 지하자원을 전국으로 운반하면서 운송 분야에서도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2]

설명

작품 소재

산업선 전철화 공사는 1969년 9월 12일에 중앙선(청량리∼제천, 155.2㎞)을 시작으로, 태백선(제천∼정선, 107.9㎞), 영동선(철암∼북평, 85.5㎞) 등 모두 320km에 이루어졌는데, 5백 2억원을 투입하여 6년 3개월만에 완성되었다.
1975년 12월 5일 전철화 공사가 완료된 영동선은 72년 12월 6일 착공, 3년간 연인원 54만명과 내자 24억원, 외자 8백만달러 등 총 62억원의 공사비가 들었다.
이로써 산업선전철은 전국 철도 화물 수송량의 40퍼센트를 감당하게 됐으며 5,300 마력의 전기기관차를 움직여 전철 구간은 일반 철도의 복선구간과 거의 같은 효과를 가져오게 됐고,[3] 국토의 간선망을 형성하는 경부선을 포함하여 호남선, 충북선, 중앙선, 영동선 등에서 전기철도의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 이로써 전국 대부분 지역을 전철이 자유롭게 운행할 수 있게 되었고, 철도의 열차운용효율 및 수송능력은 크게 개선되었다.[4]
작품 소재는 영동선 전철로, 청량리에서 북평까지의 철도는 심한 경사도와 곡선 및 1백3개나 되는 터널 등 산악지대를 관통하는 나쁜 조건인데다 화물수송량은 전국철도의 40%를 차지하는 반면, 영동 지방에서 생산되는 무연탄, 시멘트, 광석 등 산업물자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 전철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었다.
1975년 12월 5일 영동선의 전철화 공사가 완료되면서 전철 운행이 하루 10회 늘어나게 되었고, 연간 8백 65만t이 늘어난 2천 5 백72만t을 수송할 수 있게 되었다.[5]

시각적 안내

갑문박각순 「산업전철선」 1975
이 그림에 대한 정보

관련 민족기록화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박각순 박각순-산업선전철 A는 B를 그렸다 1975년
박각순-산업선전철 영동선 전철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국회사무처 박각순-산업선전철 A는 B를 대여하였다 1991년 1월 8일-1992년 1월 7일
전기철도 영동선 전철 A는 B를 포함한다
영동선 전철 영동선 A는 B와 관련이 있다
전기철도 영동선 전철 A는 B를 포함한다
산업선전철준공기념비는 한국철도공사 선정 철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영동선의 전철역이 동해역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75년 박각순이 박각순-산업선전철를 그렸다
1991년 1월 8일-1992년 1월 7일 국회사무처가 박각순-산업선전철를 대여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532103 126.914133 국회사무처가 박각순-산업선전철을 대여하였다

그래프

참고문헌

주석

  1.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민족기록화 경제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3년, 47쪽.
  2. "전기철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18일.
  3. 김봉선, "영동선, 전철로 완전개통", 『동아일보』, 1975년 12월 05일.
  4. "전기철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18일.
  5. "영동선 전철 개통", 『중앙일보』, 1975년 12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