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 서씨
남양 서씨(南陽 徐氏)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
시조(始祖) 서간(徐趕)은 송(宋)나라에서 고려로 동래한 8학사(八學士)의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당성(唐城)에 정착했는데 벼슬이 태사(太師)에 올랐고 남양군(南陽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이천서씨(利川徐氏) 아간공(阿干公) 서신일(徐神逸) 10세손인 서적 선생이 남양(당성)서씨 후손이다.
4세손 서유걸(徐惟傑)이 좌복야를, 그의 아들 5세손 서존(徐存)은 병부상서를 역임하여 가세를 일으켰으며, 정당문학을 지낸 8세손 서찬(徐贊)의 아들 9세손 서희팔(徐希八)과 판도판서에 오른 서적(徐迪)의 부자가 유명했다. 한편 우승지 서숙(徐淑)의 맏아들 서충수(徐忠守)는 도승지을 역임했으며, 부위 서혼(徐混)의 아들 서충필(徐忠弼)이 부호군에 올라 호조참판을 지낸 아우 서충우(徐忠佑)와 함께 명성을 떨쳤다.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매년 11월 첫째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21(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매년 11월 첫째주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 166-1에서 거행된다.
이천 서씨는 통일신라 아간대부 서신일(徐神逸),내의령 서필(徐弼),내사령 서희(徐熙),문하시중 서눌(徐訥) 좌복야 서유걸(徐惟傑),평장사 서정(徐靖),우복야 서균(徐均) 판대부사 서린(徐嶙), 평장사 서공(徐恭) 추밀원사 서순(徐淳) 등 7대가 연속 재상이 되어 고려의 최고 문벌 귀족 가문으로 성장한다.
고려 초기에 나라의 기틀의 튼튼히 한 서필(徐弼)이다. 이어 손자 서희(徐熙)와 증손자 서눌(徐訥) 서유걸(徐惟傑) 서유위(徐惟偉) 서주행(徐周行), 고손자 서정(徐靖) 서존(徐存),서균(徐鈞) 서린(徐璘), 서원(徐元) 서공(徐恭) 서성(徐成) 서순(徐淳),서숭조,서희찬,서능(徐稜),서효손,서신계, 서린(徐鱗),서성윤,서념,서원경,서충,서신,서윤,서후상,서윤현 등이 15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남양당성 서씨(남양 서씨 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대구달성서씨(달성 서씨 대구 서씨)(大丘達城徐氏)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서준영(徐俊英 연성군)- 서보(徐寶 공조전서.정3품 .장관) 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중화서씨(中華徐氏) 계보는 단군조선 여수기(余守己)-번한조선(番韓朝鮮) 서우여(徐于餘)-고조선(古朝鮮) 소호(少昊), 고도(皋陶), 백익(伯益)의 아들 약목(若木)-서국(徐國)에 30세 서구왕(駒王=徐駒王), 32세 서언왕(徐偃王)-진나라 재상 서복(徐福)-삼국시대(三國時代) 서선(徐宣),서유자(徐孺子; 徐穉) 서서(徐庶), 오(吳) 나라에는 서성(徐盛),부여 동명왕(東明王),백제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신라 서두라(徐豆羅)- 남송(南宋) 서희(徐煕), 서도(徐道), 서도(徐度), 서숙향(徐叔嚮), 서중융(徐仲融), 서문백(徐文伯), 서사백(徐嗣伯)- 북제(北齊) 서지재(徐之才), 서임경(徐林卿), 서동경(徐同卿)- 원위(元魏) 서건(徐謇), 서웅(徐雄)- 수 나라 서민제(徐敏齊) -.명나라 말기 호족 서수휘(徐壽輝)청나라- 지리학자 서진객(徐震客),대학자 서광계(徐光啓)
가족
시조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부총리)
2세 서필(徐弼 내의령(內議省).종 1품.국무총리)
3세 서희(徐熙 내사령(內史令).종 1품.국무총리)
- 큰고고고조할아버지: 서눌(徐訥) 종1품 문하시중門下侍中)
- 고고고조할아버지 : 서유걸(徐惟傑)(정2품 좌복야)
- 작은고고고조아버지 : 서유위(徐惟偉)(정3품 장야서령)
- 작은고고고조할아버지 : 서주행(徐周行)(달성군)
- 작은고고조할아버지: 서한(徐閈) (정4품 군기소윤)
본관
남양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일대의 지명이다. 본래 고구려의 당성현(唐城縣)이다. 신라가 757년(경덕왕 16)에 당은군(唐恩郡)으로 고쳤고, 822년(헌덕왕 14)에 수성군(水城郡)에 병합되었으나 829년(흥덕왕 4)에 당성진을 설치하면서 분리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당성군이 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수주(水州)의 관할에 들었고, 후에 인주(仁州)의 영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 독립하여 감무를 두었다. 1290년(충렬왕 16)에 강녕도호부(江寧都護府)로 승격되었고, 익주목(益州牧)이 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에 남양부가 되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에 남양도호부가 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경기도 남양도호부의 토성(土姓)으로 홍(洪)·송(宋)·방(房)·박(朴)·최(崔)·서(徐) 6성이 기록되어 있다.[1]
1896년에 경기도 남양군이 되었다. 1914년 수원군에 병합되었다가 1949년 수원시가 분리되면서 화성군으로 개칭되었다. 2001년 화성시로 승격되었고, 시청 소재지는 남양읍이다.
서한주(徐漢柱)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인.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군석(君石), 호는 복재(復齋)이다.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을 지낸 서정지(徐挺之)이며, 큰아버지는 사봉(沙峯) 서정연(徐挺然)이다.
서한주(徐漢柱)[1622~?]는 조선 후기 성리학의 대가인 포저(浦渚) 조익(趙翼)의 문인이다. 1646년(인조 24)에 생원시에 2등 1위로 합격한 후 교관·주부·좌랑·정랑·사평·판관을 거쳐, 흡곡·영춘·김화·예산·김제 안악의 수령을 역임하고 부평 부사에 이르렀다. 실학(實學)에 종사하여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일찍이 그 학행을 상소하여 밝힌 바 있다. 유집이 있어 전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남아 있지는 않다.
천안시 풍세면 풍서 5리에 있는 육현사(六賢祀)에서는 조선 시대의 선비 유언겸(兪彦謙)·이승벽(李承璧)·현덕승(玄德升)·서정연(徐挺然)·이중명(李重明)·서한주를 모시는데,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제향을 지내고 있다.
육현사(六賢祀)
천안시 풍세면 풍서 5리에 있는 육현사(六賢祀)에서는 조선 시대의 선비 유언겸(兪彦謙)·이승벽(李承璧)·현덕승(玄德升)·서정연(徐挺然)·이중명(李重明)·서한주를 모시는데,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제향을 지내고 있다.
남양서씨3세정려(南陽徐氏三世旌閭)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 3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려.
남양 서씨 3세 정려(南陽 徐氏 三世 旌閭)는 남양 서씨 효자 서충필(徐忠弼), 서충좌(徐忠佐) 형제와 종손(從孫) 서한장(徐漢章)의 3위를 기리는 정려로 1695년(숙종 21)에 세워졌다.
남양 서씨 3세 정려는 천안시 광덕면 매당 3리에 있다. 광덕면사무소에서 신흥교를 건너 매당리 629번 도로를 타고 풍세 방향으로 약 700m 가면 당하리 도로변 약 40m 지점에 남양 서씨 3세 정려각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에 겹처마를 한 익공(翼工)식 건물로 방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4면은 홍살을 시설하였으며 네모난 초석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내부에는 3매의 현판이 걸려 있다.
정려의 내부에는 3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효자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 서충필 지려(孝子折衝將軍行龍讓衛副護軍徐忠弼之閭)
2. 효자 학생 서충좌 지려(孝子學生徐忠佐之閭)
3. 효자 통덕랑 서한장 지려(孝子通德郞徐漢章之閭)
2013년 현재 주변에 단을 둘러 보호하고 있으며 바닥에는 벽돌을 깔아 그 위의 초석에 정려를 세웠다. 충청남도 역사 문화 연구원에서 주관하는 ‘문화재 상시 관리 활동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보호 및 관리되고 있다.
광덕면 매당리는 남양 서씨 3세 정려 이외에도 고흥 유씨 정려를 비롯해 연안 이씨 이시백의 묘소 등 여러 문화 유적이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유적들은 매당리의 오랜 역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가 되며, 정려가 건립된 연대가 숙종 대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보아 당시 남양 서씨들의 활발한 사족 활동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