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기록화로 살펴보는 기업의 탄생"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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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경직물]]에 뿌리를 두고 성장한 [[SK그룹]]은 [[한국전쟁]] 직후 폐허가 되었던 [[선경직물]] 공장부지를 매입한 1953년 4월 8일을 창립일로 정하고 기념해오고 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직원들과 함께 수원시 평동에 위치했던 공장부지에 돌과 자갈을 직접 나르고, 공장 내 고철을 팔아 첫 생산을 시작하였다.<br/> | # [[선경직물]]에 뿌리를 두고 성장한 [[SK그룹]]은 [[한국전쟁]] 직후 폐허가 되었던 [[선경직물]] 공장부지를 매입한 1953년 4월 8일을 창립일로 정하고 기념해오고 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직원들과 함께 수원시 평동에 위치했던 공장부지에 돌과 자갈을 직접 나르고, 공장 내 고철을 팔아 첫 생산을 시작하였다.<br/> | ||
− | # 1955년에 들어서면서 국내 직물업계는 극심한 침체국면을 맞았으나 [[선경직물]]만은 제품이 창고에 쌓일 틈도 없이 팔려나갔다. [[선경직물]]의 인조견 '루스터'(Rooster; 장닭)가 지누시(地主; 직물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물에 담갔다가 말리는 공정)를 하지 않고도 재단이 가능한 유일한 안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해 10월 1일부터 12월 20일까지 창경원에서 개최된 '해방10주년기념 산업박람회'에서 '닭표' 인조견은 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그때까지 일부 수요자들 사이에서만 인기를 누려오던 닭표 안감은 부통령상 수상으로 전국적인 브랜드가 됐다 | + | # 1955년에 들어서면서 국내 직물업계는 극심한 침체국면을 맞았으나 [[선경직물]]만은 제품이 창고에 쌓일 틈도 없이 팔려나갔다. [[선경직물]]의 인조견 '루스터'(Rooster; 장닭)가 지누시(地主; 직물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물에 담갔다가 말리는 공정)를 하지 않고도 재단이 가능한 유일한 안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해 10월 1일부터 12월 20일까지 창경원에서 개최된 '해방10주년기념 산업박람회'에서 '닭표' 인조견은 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그때까지 일부 수요자들 사이에서만 인기를 누려오던 닭표 안감은 부통령상 수상으로 전국적인 브랜드가 됐다.<ref>김창근, 『[http://sk.co.kr/pdf/20130403_60_01.pdf SK 60년사 1953~2013]』, SK, 2013, 30-31쪽.</ref><br/> |
− | # 1958년 5월, 봉황새를 수놓은 이불감인 '봉황새 이불감'은 출시하자마자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철야작업을 하며 시장의 수요를 맞추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봉황새 이불감은 출시 3개월 만에 웃돈이 붙어 거래됐다. 선경직물의 독점상품이었던 봉황새 이불감은 한동안 예비 신부가 꼭 준비해야 할 필수 혼수감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 + | # 1958년 5월, 봉황새를 수놓은 이불감인 '봉황새 이불감'은 출시하자마자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철야작업을 하며 시장의 수요를 맞추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봉황새 이불감은 출시 3개월 만에 웃돈이 붙어 거래됐다. 선경직물의 독점상품이었던 봉황새 이불감은 한동안 예비 신부가 꼭 준비해야 할 필수 혼수감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ref>김창근, 『[http://sk.co.kr/pdf/20130403_60_01.pdf SK 60년사 1953~2013]』, SK, 2013, 32-33쪽.</ref><br/> |
# 1958년 11월 외제 나일론 직물과 품질이 비슷한 나일론 직물 태피터(Taffeta; 실크나 인조 섬유의 필라멘트사로 짠 가느다란 가로 골이 있는 직물)의 생산에 성공했으나, 한・일 간 외교 분쟁으로 1959년 6월 대일통상이 중단 되었고, 1959년 9월 사라호 태풍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모든 경제활동이 일시에 위축됐다.<ref>김창근, 『[http://sk.co.kr/pdf/20130403_60_01.pdf SK 60년사 1953~2013]』, SK, 2013, 33쪽.</ref> 부채 증가라는 위기 속에서 [[선경직물]]은 폴리에스터 직물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선경직물은 폴리에스터 섬유 제직과정에서도 정전기 발생이 문제로 대두됐지만 나일론 직물의 경우를 경험삼아 쉽게 해결했다. 나일론 직물과는 달리 폴리에스터 직물은 120도의 고온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밀폐된 염색탱크를 개발하는 등 온갖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그렇게 출시된 선경직물의 폴리에스터 직물은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ref>김창근, 『[http://sk.co.kr/pdf/20130403_60_01.pdf SK 60년사 1953~2013]』, SK, 2013, 34-35쪽.</ref> | # 1958년 11월 외제 나일론 직물과 품질이 비슷한 나일론 직물 태피터(Taffeta; 실크나 인조 섬유의 필라멘트사로 짠 가느다란 가로 골이 있는 직물)의 생산에 성공했으나, 한・일 간 외교 분쟁으로 1959년 6월 대일통상이 중단 되었고, 1959년 9월 사라호 태풍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모든 경제활동이 일시에 위축됐다.<ref>김창근, 『[http://sk.co.kr/pdf/20130403_60_01.pdf SK 60년사 1953~2013]』, SK, 2013, 33쪽.</ref> 부채 증가라는 위기 속에서 [[선경직물]]은 폴리에스터 직물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선경직물은 폴리에스터 섬유 제직과정에서도 정전기 발생이 문제로 대두됐지만 나일론 직물의 경우를 경험삼아 쉽게 해결했다. 나일론 직물과는 달리 폴리에스터 직물은 120도의 고온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밀폐된 염색탱크를 개발하는 등 온갖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그렇게 출시된 선경직물의 폴리에스터 직물은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ref>김창근, 『[http://sk.co.kr/pdf/20130403_60_01.pdf SK 60년사 1953~2013]』, SK, 2013, 34-35쪽.</ref> | ||
# 1962년 4월 국내 직물업계 최초로 홍콩에 [[레이온]] 10만 마를 수출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선경직물]]은 1962년 일년 동안 46,000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박창돈-선경직물]]』은 1962년 4월 이후로 추정되는데, 작품 하단 오른쪽에 뉴욕으로 수출하기 위해 포장된 박스를 확인할 수 있다. | # 1962년 4월 국내 직물업계 최초로 홍콩에 [[레이온]] 10만 마를 수출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선경직물]]은 1962년 일년 동안 46,000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박창돈-선경직물]]』은 1962년 4월 이후로 추정되는데, 작품 하단 오른쪽에 뉴욕으로 수출하기 위해 포장된 박스를 확인할 수 있다. |
2017년 11월 1일 (수) 00:57 판
목차
개요
민족기록화 경제편은 1970년대 초 기간산업에 대한 경제발전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민족기록화 제작에 참여한 작가들은 전국의 대표적인 산업시설과 새마을운동을 답사하여 300호 크기의 대형작품을 제작하였다. 그 중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 기업, 포스코, LG그룹, 그리고 SK그룹의 탄생을 담은 3점의 작품들이 있다. 지금은 국내의 유수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모체가 되어 준 산업현장이 기록되어 있는 작품들이다.
내용
『오승우-포항종합제철』로 살펴보는 포스코의 탄생, 포항종합제철
1968년 포항종합제철(주)로 설립되어 2002년 3월 15일 지금의 사명(포스코)으로 변경하였다. 국내 최초의 고로(高爐;용광로) 업체로서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 등 2개의 일관제철소를 보유하고 있다.[2]
1973년 7월 3일 조강(粗鋼) 연산 103만t 규모의 포항제철소 1기 설비를 준공한 이래 꾸준히 설비를 늘려 2009년 현재 포항제철소는 고로 5기와 PCI(미분탄취입) 설비, 용광로공법을 대체하는 친환경 제철공법인 파이넥스(FINEX) 2기 등을, 광양제철소는 고로 5기와 PCI 설비 등을 갖추고 있다. 2011년 포스코 광양제철소 하이밀 공장이 합리화 공사를 마치고 세계 최초의 연연속 열연공장을 갖추게 되어 기존 보다 30%가량 더 얇은 박판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3]
@ 작품은 1973년 6월 9일 국내 최초의 일관제철소(一貫製鐵所)인 포항종합제철 제1고로에서 쇳물을 토해내는 장면을 생동감 있게 그리고 있다. 1973년 7월 3일 완공된 포항제철소의 포항 1기 설비 건설에는 연인원 581만명,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의 3배에 해당하는 1,205억원의 자금이 소요되었다. 여기에는 전체 대일 청구권의 23.9%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이 포함되어 있다
『박창돈-금성사』로 살펴보는 LG그룹의 탄생, 금성사
- 금성사
LG전자의 전신.
1947년 락희화학공업이 창립되었다 1958년 10월 구인회가 금성사를 설립하였다 1994년 LG그룹이 탄생했다 1995년 3월 LG전자가 탄생했다
그룹의 기틀은 1947년 락희화학 설립에서 비롯되지만, 이보다 앞선 1931년 7월 구인회(具仁會),구철회(具喆會) 형제가 경상남도 진주에서 자본금 3,800원으로 구인상회를 세운 것이 효시이다 ①②③④⑤⑥⑦
『박창돈-선경직물』으로 살펴보는 SK그룹의 탄생, 선경직물
⑥ 1964년~1965년-크레퐁과 깔깔이, 잇따른 히트상품 개발[5]
- 선경직물에 뿌리를 두고 성장한 SK그룹은 한국전쟁 직후 폐허가 되었던 선경직물 공장부지를 매입한 1953년 4월 8일을 창립일로 정하고 기념해오고 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직원들과 함께 수원시 평동에 위치했던 공장부지에 돌과 자갈을 직접 나르고, 공장 내 고철을 팔아 첫 생산을 시작하였다.
- 1955년에 들어서면서 국내 직물업계는 극심한 침체국면을 맞았으나 선경직물만은 제품이 창고에 쌓일 틈도 없이 팔려나갔다. 선경직물의 인조견 '루스터'(Rooster; 장닭)가 지누시(地主; 직물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물에 담갔다가 말리는 공정)를 하지 않고도 재단이 가능한 유일한 안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해 10월 1일부터 12월 20일까지 창경원에서 개최된 '해방10주년기념 산업박람회'에서 '닭표' 인조견은 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그때까지 일부 수요자들 사이에서만 인기를 누려오던 닭표 안감은 부통령상 수상으로 전국적인 브랜드가 됐다.[7]
- 1958년 5월, 봉황새를 수놓은 이불감인 '봉황새 이불감'은 출시하자마자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철야작업을 하며 시장의 수요를 맞추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봉황새 이불감은 출시 3개월 만에 웃돈이 붙어 거래됐다. 선경직물의 독점상품이었던 봉황새 이불감은 한동안 예비 신부가 꼭 준비해야 할 필수 혼수감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8]
- 1958년 11월 외제 나일론 직물과 품질이 비슷한 나일론 직물 태피터(Taffeta; 실크나 인조 섬유의 필라멘트사로 짠 가느다란 가로 골이 있는 직물)의 생산에 성공했으나, 한・일 간 외교 분쟁으로 1959년 6월 대일통상이 중단 되었고, 1959년 9월 사라호 태풍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모든 경제활동이 일시에 위축됐다.[9] 부채 증가라는 위기 속에서 선경직물은 폴리에스터 직물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선경직물은 폴리에스터 섬유 제직과정에서도 정전기 발생이 문제로 대두됐지만 나일론 직물의 경우를 경험삼아 쉽게 해결했다. 나일론 직물과는 달리 폴리에스터 직물은 120도의 고온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밀폐된 염색탱크를 개발하는 등 온갖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그렇게 출시된 선경직물의 폴리에스터 직물은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10]
- 1962년 4월 국내 직물업계 최초로 홍콩에 레이온 10만 마를 수출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선경직물은 1962년 일년 동안 46,000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박창돈-선경직물』은 1962년 4월 이후로 추정되는데, 작품 하단 오른쪽에 뉴욕으로 수출하기 위해 포장된 박스를 확인할 수 있다.
- 선경직물은 1964년에는 크레퐁(구불구불한 주름이 있는 직물) 생산에 성공하였고, 뒤이어 1965년에 통풍이 잘되는 '깔깔이'를 개발하였다.
- 1968년 아세테이트 원사공장 준공, 1969년 폴리에스터 원사공장 준공으로 대한민국 원사생산 48톤 중 26%를 담당하게 되었다.
지식 관계망
중심요소
- 작품: 오승우-포항종합제철
- 작품: 박창돈-금성사
- 작품: 박창돈-선경직물
문맥요소
- Actor-인물:
- Concept-개념:
- Place-유적:
- Event-사건:
- Object-문헌:
- Object-유물:
- Object-유물:
- Object-유물: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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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기록화로 살펴보는 기업의 탄생 | 오승우-포항종합제철 |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 |
민족기록화로 살펴보는 기업의 탄생 | 박창돈-금성사 |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 |
민족기록화로 살펴보는 기업의 탄생 | 박창돈-선경직물 | A는 B를 포함하는 기획기사이다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 ↑ "SK네트웍스의 발자취",
『사이버역사관』online , SK네트웍스. - ↑ SK에너지, "선경직물의 탄생과 성장",
『SK에너지』online , 작성일 : 2013년 08월 22일. - ↑ SK에너지, "선경직물의 탄생과 성장",
『SK에너지』online , 작성일 : 2013년 08월 22일. - ↑ "SK네트웍스의 발자취",
『사이버역사관』online , SK네트웍스. - ↑ "SK네트웍스의 발자취",
『사이버역사관』online , SK네트웍스. - ↑ SK에너지, "선경직물의 탄생과 성장",
『SK에너지』online , 작성일 : 2013년 08월 22일. - ↑ 김창근, 『SK 60년사 1953~2013』, SK, 2013, 30-31쪽.
- ↑ 김창근, 『SK 60년사 1953~2013』, SK, 2013, 32-33쪽.
- ↑ 김창근, 『SK 60년사 1953~2013』, SK, 2013, 33쪽.
- ↑ 김창근, 『SK 60년사 1953~2013』, SK, 2013, 34-35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웹 자원
- SK에너지, "선경직물의 탄생과 성장",
『SK에너지』online , 작성일 : 2013년 08월 22일. - "SK네트웍스의 발자취",
『사이버역사관』online , SK네트웍스. - 김창근, 『SK 60년사 1953~2013』, SK, 2013.
- SK에너지, "선경직물의 탄생과 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