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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1일 (목) 15:56 판

홍재전서(弘齋全書)
"홍재전서(弘齋全書)", 소장유물정보,『서울역사박물관』online, 서울역사박물관.
대표명칭 홍재전서
한자표기 弘齋全書
유형 고서
저자 조선 정조
편자 규장각
간행시기 1799년
시대 조선
소장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서울역사박물관
지정번호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재 제316호
지정일 2011년 09월 08일


정의

1760년(영조 36)부터 1910년(융희 4)까지 국왕의 동정을 중심으로 국정 운영에 관해 매일 기록한 일기이다.

내용

일성록의 유래

일성록』은 정조(正祖, 재위 1776~1800)가 세손 시절 자신을 반성할 목적으로 쓰기 시작한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에서 출발하였다. 국가 정무가 늘어나고 규장각의 체제가 정비되자 1781년(정조 5) 조선 정조는 자신이 직접 쓰던 일기를 규장각 신하들에게 대신 기록할 것을 명하였다. 이로써 국정 운영에 참고하고 국정 전반을 성찰할 수 있는 국가의 일기로 발전시켰다. 시간 순으로 기록한 대표적인 국가의 공식 문서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 있지만, 이것은 편찬 후 사고(史庫)에 비장(秘藏)하기 때문에 국왕이라고 해도 함부로 열람할 수 없었다. 정조는 가까이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열람이 가능한 국정 기록을 남겨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여 정부의 공식 기록으로써 『일성록』의 편찬을 명하였다.[1]

일성록의 편찬과 내용 체제

조선 정조규장각 각신들과 『일성록』의 체제를 논의하면서 기록의 주체를 ‘여(予)’라고 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는 『일성록』이 국왕의 시각으로 정리된 기록임을 나타낸다. 또 하나의 사건이나 일을 하나의 기사로 구성하였으며, 각 기사는 제목인 강(綱)과 세부 내용인 목(目)으로 나누어 기록하여 실제로 찾아서 참고하기 쉽게 하였다. 또한 매일의 기록 끝에는 편찬을 담당한 인물의 관직과 성명을 기재하여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였다.[2]

일성록의 가치와 의의

조선 정조에 의해 기록되기 시작한 『일성록』은 1910년 일제 강점 이전까지 계속해서 기록되었다. 『일성록』에는 국왕이 정치에 직접 관여한 일들, 예컨대 신하들이나 백성들이 왕에게 올린 건의서나 왕의 명령, 왕의 동정, 서적의 편찬, 경연에서 읽은 책의 내용, 군사 훈련, 죄수 심리, 백성에 대한 진휼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성록』 역시 관찬 사서로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고쳐지거나 지워질 수도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왕이 죽은 후 편집되는 『조선왕조실록』보다 훨씬 생생하면서도 정연한 형식의 당시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3]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일성록은 18~20세기 동·서양의 정치·문화적 교류의 구체적 실상과 세계사의 보편적 흐름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이라는 한 나라의 역사 기록물을 넘어서는 세계사적 중요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2011년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일성록 조선 정조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일성록 규장각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일성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A는 B에 소장되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일성록 A는 B와 관련이 있다

시각 자료

영상

  • 일성록과 조선왕조실록, youtube, 게시일: 2014.10.16.

주석

  1. "일성록", 교과서 용어 해설,『우리역사넷』online, 국사편찬위원회.
  2. "일성록", 교과서 용어 해설,『우리역사넷』online, 국사편찬위원회.
  3. "일성록", 교과서 용어 해설,『우리역사넷』online, 국사편찬위원회.
  4. "일성록", 세계기록유산,『문화재청』online, 문화재청.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연갑수, 「《日省錄》의 사료적 가치와 활용 방안」, 『민족문화』27, 한국고전번역원, 2004.
    • 홍순민, 「《日省錄》의 편찬 과정과 구성 원리」, 『민족문화』27, 한국고전번역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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