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복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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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신분= 왕실, 사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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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일 (수) 21:47 판


복건[幅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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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360px|thumb|center|]]
대표명칭 복건[幅巾]
이칭별칭 絡頭, 帕頭, 陌頭, 幧頭, 帩頭, 綃頭, 幓頭[1]
착용신분 왕실, 사대부
착용성별 남성



정의

  •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의례복이자 일상복인 심의를 착용할 때 쓰던 쓰개.
  • 조선시대 일반 사가에서 관례시 초가복의 쓰개.
  • 조선시대 이후 현재까지 남자아이의 백일 및 돌 때 착용하던 쓰개.

어원

베의 온 폭을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복건[幅巾]이라 이름 붙임.

기원

한대(漢代)의 두건(頭巾)에서 변형된 형태.

착용신분과 착용상황

  • 성인: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전래와 함께 사대부의 연거복 및 일상복으로 착용.

내용

1) 유래

  • 처음에는 재야의 사(士)가 썼으나, 한말(漢末)에 이르러 왕공(王公)들이 사의 옷을 입고 복건을 썼는데, 모습이 우아하고 소박한 것이 착용 계기가 됨.[2]
  • 위진남북조시기 도교가 유행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추어 더욱 유행.
  • 사마온공(司馬溫公)에 이르러 深衣와 함께 연거할 때 착용하는 관복[燕居冠服]이 되었고, 주자가 다시 《가례(家禮)》에 싣자 마침내 예복이 됨.[3]

2) 기본 형태

  • 위는 둥글고 뾰쪽하며 뒤에는 넓고 긴 자락이 늘어지게 해서 양쪽 옆에 있는 끈을 뒤로 잡아맨 것.
  • 옛날에는 흰색 베로 만들었는데 뒤에 검게 물들이게 되었고, 차차 검은 비단으로 바꿔서 제작.[4]
  • 어린이는 금박(金箔)으로 각종 무늬를 입히거나 이마 부분에 옥이나 석웅황을 달아 장식.

3) 제작법

  • 검은 비단 6척 남짓을 사용한다. 가운데를 접고, 오른쪽 가장자리는 접은 바로 그곳에 가로로 두 귀를 만들고, 왼쪽 가장자리는 반대로 접는다. 두 귀에서 왼쪽으로 4~5촌 거리에서부터 비스듬히 꿰매어 왼쪽을 향해 둥글게 아래로 내려가고, 그대로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양 끝에 이른다. 다시 시접을 반대로 하여, 그것을 안으로 향하게 한다. 첩은 이마 앞에 오게 해서 감싼다. 양쪽 상투 옆에 이르러서는 각각 하나의 끈을 다는데, 너비는 2촌이고 길이는 2척이다. 복건의 밖으로부터 뒷머리(뒤통수)로 넘겨 서로 묶어 드리운다.[5]
  • 옛날에는 검은색 견[黑絹]으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겨울에는 검은색 단[黑緞]을 사용하고, 여름에는 검은색 사[皁紗]를 사용한다.[6]

관련항목

노드 관계 노드
복건 관계 관련노드명
복건 관계 관련노드명
복건 관계 관련노드명
복건 관계 관련노드명
복건 관계 관련노드명

참고문헌

주석

  1. 孫機(2001) 中國古與服論叢. 文物出版社. pp. 205~207.
  2. 《三才圖會》 〈衣服1〉, 幅巾: “옛날 서인들은 복건을 쓰고 사는 관을 썼다. 󰡔傅子󰡕에서 이르기를, ‘한나라 말 왕공들은 士의 복장인 복건을 우아하고 소박하다고 여긴 사람이 많았다.’라고 하였다. 巾을 착용하는 것은 옛날 미천한 사람들의 옷인데, 한나라 말에 비로소 士人의 옷이 되었다.(古庶人幅巾, 士則冠矣. 《傅子》曰: ‘漢末王公, 多委士服以幅巾爲雅素, 則服巾.’ 古賤者之服也, 漢末始爲士人之服.)”
  3. 《林園經濟志》 卷50, 〈贍用志, 服飾之具〉, ‘幅巾’: “……及司馬溫公, 與深衣同作燕居冠服, 朱子又載之《家禮》, 則遂爲禮服矣.……”
  4. 李永馥(1983) 深衣에 關한 硏究. 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P. 23.; 金仁淑(1977) 深衣考. 의류직물연구 5, 이화여자대학교 의류직물학회. p. 67.
  5. 󰡔朱子家禮󰡕 卷1, 「通禮」, 幅巾: “用黑繒六尺許. 中屈之, 右邊就屈處爲橫㡇, 左邊反屈之, 自㡇左四五寸間斜縫, 向左圓曲而下, 遂循左邊至於兩末, 復反所縫餘繒, 使之向裏, 以㡇當額前裹之, 至兩鬢旁, 各綴一帶, 廣二寸, 長二尺, 自巾外過頂後, 相結而垂之.”
  6. 《林園經濟志》 卷50, 〈贍用志, 服飾之具〉, ‘幅巾’: “……古以皁絹爲之, 今冬用黑緞, 夏用皁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