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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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은 [[혜소|진감선사(眞鑑禪師)]]의 입당 구법 과정과 830년 귀국 이후 지리산 화개곡(花開谷)에서 선법(禪法)을 펼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ref>"[http://gsm.nricp.go.kr/_third/user/frame.jsp?View=search&No=4&ksmno=2821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 금석문세부정보,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sup>online</sup></online></html>, 국립문화재연구원.</ref> [[최치원]]은 유교와 불교 사상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역설하고, 노장(老莊) 사상이 드러나는 용어와 개념들을 다수 사용함으로써, 삼교(三敎: 불교, 유교, 도교)가 표방하는 이치는 다르지만 돌아가는 바는 하나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최치원]]은 [[혜소|진감선사]]가 그러한 경지에 있는 뛰어난 인물임을 부각하였다. 아울러 [[하동 쌍계사|옥천사(玉泉寺)]]를 [[하동 쌍계사|쌍계사(雙磎寺)]]로 고친 유래, 범패(梵唄)의 전래와 유포, 효소왕(孝昭王)의 피휘(避諱) 사실과 탑비의 건립 과정 등도 전하고 있다.<ref>곽승훈, "[http://hadong.grandculture.net/Contents?local=hadong&dataType=99&contents_id=GC03400577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디지털하동문화대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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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은 [[혜소|진감선사(眞鑑禪師)]]의 입당 구법 과정과 830년 귀국 이후 지리산 화개곡(花開谷)에서 선법(禪法)을 펼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ref>"[http://gsm.nricp.go.kr/_third/user/frame.jsp?View=search&No=4&ksmno=2821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 금석문세부정보,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sup>online</sup></online></html>, 국립문화재연구원.</ref> [[최치원]]은 유교와 불교 사상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역설하고, 노장(老莊) 사상이 드러나는 용어와 개념들을 다수 사용함으로써, 삼교(三敎: 불교, 유교, 도교)가 표방하는 이치는 다르지만 돌아가는 바는 하나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최치원]]은 [[혜소|진감선사]]가 그러한 경지에 있는 뛰어난 인물임을 부각하였다. 아울러 [[하동 쌍계사|옥천사(玉泉寺)]]를 [[하동 쌍계사|쌍계사(雙磎寺)]]로 고친 유래, 범패(梵唄)의 전래와 유포, [[신라 효소왕|효소왕]]의 피휘(避諱) 사실과 탑비의 건립 과정 등도 전하고 있다.<ref>곽승훈, "[http://hadong.grandculture.net/Contents?local=hadong&dataType=99&contents_id=GC03400577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디지털하동문화대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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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0일 (토) 00:02 판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BHST Ssangyesa Heysostele front 1.jpg
대표명칭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한자 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이칭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
주소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
문화재 지정번호 국보 제47호
문화재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찬자 최치원(崔致遠)
서자 최치원(崔致遠)
각자 환영(奐榮)
서체 전서(篆書)
승려 혜소(慧昭)
건립연대 887년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雙磎寺)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진감선사 혜소(眞鑑禪師 慧昭, 774-850)의 탑비.

내용

개요

이 비는 전체높이 3.63m, 비신높이 2.13m, 너비 1.035m, 두께 22.5㎝ 이다. 헌강왕의 명령으로 최치원(崔致遠)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으며, 환영(奐榮)이 글씨를 새겼다. 최치원사산비명(四山碑銘) 중 하나이다.[1]

귀부(龜趺)이수(螭首) 및 탑신이 완전한 탑비로, 신라 말기에 나타나는 탑비 양식에 따라 귀두(龜頭)는 용두화(龍頭化)되었으며, 귀부의 등에는 6각의 귀갑문(龜甲文)이 크고 간편하게 조식되어 있다. 이수 앞면 가운데에는 ‘해동고진감선사비(海東故眞鑑禪師碑)’라는 전액(篆額)이 양각되었으며, 그 위로 보주와 반룡(蟠龍: 승천하지 아니한 용)을 얹었다.[2][3]

이 탑비의 비문은 건립 연대를 알 수 있는 비면 부분이 훼손되었으나, 다행히 1725년(영조 1)에 목판에 그대로 본떠 새긴 비문이 있어 887년임을 알 수 있다. 비문의 글씨는 2cm 정도의 해서(楷書)로 위아래로 긴 짜임새를 하고 있다.[4] 1936년 7월 지진으로 인하여 비의 일부가 일부 훼손되었다.[5] 1962년 국보 제47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문

비문은 진감선사(眞鑑禪師)의 입당 구법 과정과 830년 귀국 이후 지리산 화개곡(花開谷)에서 선법(禪法)을 펼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6] 최치원은 유교와 불교 사상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역설하고, 노장(老莊) 사상이 드러나는 용어와 개념들을 다수 사용함으로써, 삼교(三敎: 불교, 유교, 도교)가 표방하는 이치는 다르지만 돌아가는 바는 하나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최치원진감선사가 그러한 경지에 있는 뛰어난 인물임을 부각하였다. 아울러 옥천사(玉泉寺)쌍계사(雙磎寺)로 고친 유래, 범패(梵唄)의 전래와 유포, 효소왕의 피휘(避諱) 사실과 탑비의 건립 과정 등도 전하고 있다.[7]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진감선사 혜소 A는 B를 위한 비이다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하동 쌍계사 A는 B에 있다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최치원 A는 B가 비문을 지었다 887년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최치원 A는 B가 비문을 썼다 887년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환영 A는 B가 비문을 새겼다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사산비명 A는 B에 포함된다
헌강왕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A는 B의 이름을 지었다 887년

시각자료

가상현실

  • 차후 있을 답사 후 보완..

갤러리

영상

주석

  1.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문화재 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4. "쌍계사 진감선사비명 탑본", 주요 소장품 검색, 『소장품』online, 국립중앙박물관.
  5. " 稀有(희유)의 珍事實(진사실) 被害六日(피해육일)만에判明(판명)",『동아일보』, 작성일: 1936년 7월 11일.
  6.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원.
  7. 곽승훈,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디지털하동문화대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8. "쌍계사 진감선사비명 탑본", 주요 소장품 검색, 『소장품』online, 국립중앙박물관.
  9. "쌍계사 진감선사비 탑본", 주요 소장품 검색, 『소장품』online, 국립중앙박물관.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