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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창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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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사(普賢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평창 월정사|월정사(月精寺)]]말사이다. 보현사는 650년([[진덕여왕]] 4년)에 [[자장|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창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ref>"[http://bohyunsa.or.kr/bbs/content.php?co_id=1010 보현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보현사홈페이지』<sup>online</sup></online></html>, 보현사. 최종확인: 2017년 5월 12일.</ref>
 
보현사(普賢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평창 월정사|월정사(月精寺)]]말사이다. 보현사는 650년([[진덕여왕]] 4년)에 [[자장|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창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ref>"[http://bohyunsa.or.kr/bbs/content.php?co_id=1010 보현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보현사홈페이지』<sup>online</sup></online></html>, 보현사. 최종확인: 2017년 5월 12일.</ref>
  
==='''또 다른 창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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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창건설'''===
보현사의 창건에는 두 가지 설이 전래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신라시대 불교의 4대보살 가운데 한분인 보현보살이 직접 창건하였다는 설이다. 보현보살의 창건설은 매우 전설적인 성격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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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사의 창건에는 두 가지 설이 전래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신라시대 불교의 4대보살 가운데 한분인 보현보살이 직접 창건하였다는 설이다. 보현보살의 창건설은 매우 전설적인 성격이 짙다.  
 
보현보살 창건설은 어느 날 인도에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강릉의 동남쪽 남항진 해변에 당도하여 [[한송사지|문수사(文殊寺, 지금의 한송사지)]]를 세웠는데, 이 때 보현보살은 “한 절에 두 보살이 함께 있을 필요가 없으니, 내가 활로 쏘아 화살이 떨어진 곳을 절터로 삼아 떠나겠다.”라고 말하며 시위를 당기니 보현사 터에 화살이 떨어졌으므로 이 절을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하여 온다. 이처럼 보현사는 한송사와 함께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설화는 『동문선(東文選)』제71권에 실린 이곡(李穀)의 「동유기(東遊記)」에서 사람들이 문수와 보현이 땅 속에서 솟아나온 것이라 한 기록과 관련 된다.<ref>"[http://bohyunsa.or.kr/bbs/content.php?co_id=1010 보현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보현사홈페이지』<sup>online</sup></online></html>, 보현사. 최종확인: 2017년 5월 12일.</ref>  
 
보현보살 창건설은 어느 날 인도에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강릉의 동남쪽 남항진 해변에 당도하여 [[한송사지|문수사(文殊寺, 지금의 한송사지)]]를 세웠는데, 이 때 보현보살은 “한 절에 두 보살이 함께 있을 필요가 없으니, 내가 활로 쏘아 화살이 떨어진 곳을 절터로 삼아 떠나겠다.”라고 말하며 시위를 당기니 보현사 터에 화살이 떨어졌으므로 이 절을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하여 온다. 이처럼 보현사는 한송사와 함께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설화는 『동문선(東文選)』제71권에 실린 이곡(李穀)의 「동유기(東遊記)」에서 사람들이 문수와 보현이 땅 속에서 솟아나온 것이라 한 기록과 관련 된다.<ref>"[http://bohyunsa.or.kr/bbs/content.php?co_id=1010 보현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보현사홈페이지』<sup>online</sup></online></html>, 보현사. 최종확인: 2017년 5월 12일.</ref>  
  

2017년 5월 12일 (금) 17:56 판


강릉 보현사
(江陵 普賢寺)
대표명칭 강릉 보현사
한자 江陵 普賢寺
주소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현길 396
건립시기 신라시대
창건자 자장
경내문화재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 강릉 보현사 대웅전, 강릉 보현사 목조보살좌상



정의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만월산(滿月山)에 있는 절.[1]

내용

보현사(普賢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月精寺)말사이다. 보현사는 650년(진덕여왕 4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창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2]

===또 다른 창건설===
보현사의 창건에는 두 가지 설이 전래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신라시대 불교의 4대보살 가운데 한분인 보현보살이 직접 창건하였다는 설이다. 보현보살의 창건설은 매우 전설적인 성격이 짙다. 

보현보살 창건설은 어느 날 인도에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강릉의 동남쪽 남항진 해변에 당도하여 문수사(文殊寺, 지금의 한송사지)를 세웠는데, 이 때 보현보살은 “한 절에 두 보살이 함께 있을 필요가 없으니, 내가 활로 쏘아 화살이 떨어진 곳을 절터로 삼아 떠나겠다.”라고 말하며 시위를 당기니 보현사 터에 화살이 떨어졌으므로 이 절을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하여 온다. 이처럼 보현사는 한송사와 함께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설화는 『동문선(東文選)』제71권에 실린 이곡(李穀)의 「동유기(東遊記)」에서 사람들이 문수와 보현이 땅 속에서 솟아나온 것이라 한 기록과 관련 된다.[3]

보현사가 사찰의 모습을 갖추고 번창한 것은 889년(진선여왕3년) 낭원대사(朗圓大師)에 의해 중창되어 지장선원(地藏禪院)이라 이름을 바꾸면서다.[4]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세운 것이다.[5]

동영상

시간정보

관련항목

참고문헌

주석

  1. 김위석, "보현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5월 12일.
  2. "보현사", 『보현사홈페이지』online, 보현사. 최종확인: 2017년 5월 12일.
  3. "보현사", 『보현사홈페이지』online, 보현사. 최종확인: 2017년 5월 12일.
  4. "보현사", 『보현사홈페이지』online, 보현사. 최종확인: 2017년 5월 12일.
  5. "보현사(강릉)", 『대한민국구석구석』online, 한국관광공사. 최종확인: 2017년 5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