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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8일 (금) 16:47 판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한글팀 순명효황후 한글편지.png
영문명칭 Empress Soonmyeonghyo's Korean letter to Kim Sangdeok
작자 순명효황후
작성시기 1904년
기탁처 경주김씨 직각종택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유형 고문서
크기(세로×가로) 23.4×12.6㎝
판본 필사본
수량 2장
표기문자 한글


정의

순종비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1872-1904)가 성균관대사성을 지낸 김상덕(金商德, 1852-1924)에게 1904년 정월에 보낸 한글편지이다.

내용

국화꽃이 그려진 시전지에 작성되었다. 순명효황후김상덕세자시강원 필선(弼善)으로 있을 때 알게 된 이후 김상덕을 특별히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순명효황후는 우선 김상덕이 평안이 지내고 있다는 소식에 대해 기쁨을 전한 뒤, 자신의 안부를 전하였다. 수난을 겪던 왕실의 일을 떠올릴 때마다 죽고 싶은 마음을 차마 글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하였다. 황제와 황태자의 병환에 대해 소식을 전하면서 자신 또한 평안치 않다고 하였다. 순명효황후의 고단한 심정과 처지를 엿볼 수 있는 편지이다. 순명효황후는 이 편지를 쓰던 해 11월에 33세로 세상을 떠났다. [1]

부연설명

순명효황후의 한글 간찰은 조선 궁중의 주요 인물이 쓴 한글 편지라는 가치 뿐아니라, 한글 서체 연구에 있어서도 의미가 크다. 순명효황후는 11세의 어린 나이에 입궁하면서 정치적 소용돌이의 중심에 선다. 한글을 잘 썼던 시어머니 명성황후는 순명효황후의 한글쓰기에 영향을 많이 주었다. 명성황후 사가(私家)의 친척이었던 순명효황후 민씨는 그녀를 친어머니 같이 따랐으며 명성황후도 순명효황후를 친딸처럼 여기면서 모든 일에 모범을 보였다. 때문에 1895년(乙未, 고종32) 을미사변 으로 큰 충격을 받은 순명효황후는 마음의 병을 얻고 이후 1904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2]

순명효황후 한글편지을 포함한 순명효황후의 한글편지 11편은 경주김씨 직각종택에 소장되어 있던 것이다. 기증자 김환기는 편지의 수신자인 김상덕의 증손이다. [3] 순명효황후는 김상덕에게 학문을 배웠기에 그를 아버지처럼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한글서간의 내용은 개인적으로 주고 받는 편지의 특성상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것이 가장 많으며, 정확한 기간이 적혀있진 않으나, 몇 월 며칠과 내용 등으로 시기 및 시대적 배경을 추정할 수 있는 데 도움을 준다. [4] 순명효황후는 국가의 안위를 항시 걱정하던 인물이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항상 충절만을 생각하고 일제 강점에 맞서 의병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던 위관 김상덕과 상통하였고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때문에 그녀가 쓴 편지에도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5]

순명효황후의 한글편지 11편 중에서 화려한 시전지(詩箋紙:시나 편지 따위를 쓰는 종이)를 사용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순명효황후 한글편지이다. 붉은색의 계선이 있고 바탕에는 붉은 색의 꽃을 피운 국화무늬가 새겨져 있다. 봉투는 앞부분 전체를 붉은 종이로 두른 후 영지를 꽂은 꽃병을 그려넣었다. 뒷면에는 수신자인 김상덕이 살던 곳인 '홍듀'와 수신자를 지칭하는 '김직각ᄃᆡᆨ'이라 적혀있다. '홍듀'는 충청남도 홍주를 말하는 것으로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면이다.[6] 내용에서는 김상덕이 설날을 무사히 보낸 것에 대해 기쁨을 표현하고 있으며 순종과 세자의 건강이 나쁘고 '기시'를 떠올리면 몸을 가누기가 어렵다고 하고 있다. '기시(其時)’는 명성 황후가 시해당한 때(을미사변)를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고 있다.[7]

시각자료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순명효황후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A는 B를 저술하였다 1904년
김상덕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A는 B와 관련이 있다
순명효황후 순종 A는 B의 아내이다
명성황후 고종 A는 B의 아내이다
고종 순종 A는 B의 어버이다
을미사변 명성황후 A는 B와 관련이 있다
을미사변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A는 B에 언급된다
김상덕 순명효황후 A는 B의 스승이다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경주김씨 직각종택 A는 B에 소장되어 있었다
순명효황후 한글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04년 순명효황후순명효황후 한글편지를 저술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경주김씨 직각종택순명효황후 한글편지가 소장되어 있었다
37.39197 127.054387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순명효황후 한글편지가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292쪽.
  2. 박지은, 「19세기 조선조 순원왕후와 순명효황후의 언간서체의 심미적 특징」, 부산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35-36쪽.
  3. 어강석, 「藏書閣 所藏 '純明孝皇后 관련 한글 簡札'의 內容과 價値」, 『장서각』17, 2007, 165쪽.
  4. 박지은, 「19세기 조선조 순원왕후와 순명효황후의 언간서체의 심미적 특징」, 부산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37쪽.
  5. 어강석, 「藏書閣 所藏 '純明孝皇后 관련 한글 簡札'의 內容과 價値」, 『장서각』17, 2007, 169쪽.
  6. 어강석, 「藏書閣 所藏 '純明孝皇后 관련 한글 簡札'의 內容과 價値」, 『장서각』17, 2007, 165-167쪽.
  7. "1904년 순명효황후가 김상덕에게 보낸 편지(1)", , 『한국학자료센터 조선시대 한글편지』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2017년 4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