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순천 선암사 승선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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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eonamsa_seungseongyo-3.jpg|작은 무지개다리 사이로 보이는 승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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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eonamsa_seungseongyo_yong.jpg|승선교 가운데의 용머리
 
파일:Seonamsa_seungseongyo_yong.jpg|승선교 가운데의 용머리

2017년 4월 27일 (목) 00:19 판


순천 선암사 승선교
(順天 仙巖寺 昇仙橋)
대표명칭 순천 선암사 승선교
영문명칭 Seungseongyo Bridge of Seonamsa Temple, Suncheon
한자 順天 仙巖寺 昇仙橋
주소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400호
문화재 지정일 1963년 9월 2일
소유자 순천 선암사
관리자 순천 선암사
건립시대 조선시대
관련승려 약휴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다리.[1]

내용

승선교는 홍예(虹霓 : 무지개) 아치형식인데, 홍예 아치는 지면에 면한 하부부터 원형으로 내쌓기 시작하여 완전한 반원형을 이룬다. 결구방법은 잘 다듬은 장대석을 종으로 1단씩 빈틈없이 총총히 밀집시켜 스스로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하였다. 기저부에는 큰 돌로 쌓고 위로 오르면서 꼭대기부분에 다소 작은 돌을 끼워넣었다. 정교한 홍예석 양측면에는 잡석들을 쌓아 양쪽 언덕과 연결시켰으며, 위쪽에는 흙을 덮어 평평하도록 이루고 있다.[2]

다리 한복판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밑으로 삐죽 나와 있어 장식적 효과를 주고 있는데, 예로부터 이것을 뽑아내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전해오고 있다.[3]

전설

1698년(숙종 24) 호암대사(護巖大師)가 관음보살의 시현(示現)[4]을 바라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는데, 이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圓通殿)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웠다고 한다.[5]

시각자료

갤러리

동영상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순천 선암사 승선교 순천 선암사 A는 B에 있다
약휴 순천 선암사 승선교 A는 B를 설치하였다 1698년
순천 선암사 승선교 순천 선암사 원통전 A는 B와 관련있다

참고문헌

  • 사찰문화연구원, 『전국사찰총서6』, 1996

주석

  1. "순천 선암사 승선교", 황학주,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25일.
  2. 사찰문화연구원, 『전국사찰총서6』, 1996. 298쪽.
  3. "순천 선암사 승선교", 『문화재검색』online, 문화재청. 최종확인: 2017년 04월 26일.
  4.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하여 나타나는 것. "시현", 『시공 불교사전』online. [네이버 지식백과 인용].
  5. "순천 선암사 승선교", 황학주,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