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유대소신료급중외민인척사윤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시간정보)
30번째 줄: 30번째 줄:
 
1881년 [[고종]]이 내린 윤음은 사실상 마지막 척사윤음이었다. 이 윤음의 내용은 천주교 교리를 반박하고, 백성들에게 천주교에 현혹되지 말라는 취지의 다른 윤음과는 성격이 다르다. [[고종]]은 [[정조]] 이후로 천주교인을 여러 번 징계했으나, 소멸되지 않았다고 전제하였다. 이어 천주교인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설명하고, 유학 사상을 실생활에서 실천함으로써 순박한 풍속을 회복하고 사당(私黨)인 천주교인들을 소멸시키자는 것이었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96쪽.</REF>
 
1881년 [[고종]]이 내린 윤음은 사실상 마지막 척사윤음이었다. 이 윤음의 내용은 천주교 교리를 반박하고, 백성들에게 천주교에 현혹되지 말라는 취지의 다른 윤음과는 성격이 다르다. [[고종]]은 [[정조]] 이후로 천주교인을 여러 번 징계했으나, 소멸되지 않았다고 전제하였다. 이어 천주교인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설명하고, 유학 사상을 실생활에서 실천함으로써 순박한 풍속을 회복하고 사당(私黨)인 천주교인들을 소멸시키자는 것이었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96쪽.</REF>
  
<!--
+
 
 
==부연설명==
 
==부연설명==
천추교 박해에 대한 설명 필요
+
[[고종]]시기 내려진 [[척사윤음]]은 2건이 있었는데, 하나는 1866년에 내려진 것이고<ref>『고종실록』3권, 고종 3년(1866) 8월 3일(기축), 1번째 기사.</ref> 마지막 하나는 1881년에 내려진 {{PAGENAME}}이다.<ref>『고종실록』 18권, 고종 18년(1881), 5월 15일(병자), 2번째기사. </ref> 기존 [[헌종]]시기와 마찬가지로 유교적 입장에서 천주교를 사교(邪敎)로 규정하고 비판하고 있으며, 백성들을 회유하는 내용이다. 1866년에 내려진 [[척사윤음]] 직후 무려 7년동안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 엄청나 수의 천주교인들이 순교하였는데, 15년이 지나서도 강도 높은 [[척사윤음]]을 펼치는 것을 보면, 조선 조정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천주교인들이 소멸하지 않았고, 더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ref>인원순,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3139 병인박해(丙寅迫害)],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22일</ref> 
-->
 
  
 
==시각자료==
 
==시각자료==

2017년 4월 22일 (토) 21:52 판

고종윤음
한글팀 고종윤음 01 표지.jpg
한자명칭 高宗綸音
영문명칭 King Gojong's royal message to the officials and ordinary people of Seoul and other provinces
작자 고종
작성시기 1881년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청구기호 2-1867
유형 고서
크기(세로×가로) 30.1×20.6㎝
판본 목판본
수량 1冊
표기문자 한글



정의

고종이 1881년 내린 사실상 마지막 척사윤음으로, 대소 관료와 서울과 지방의 백성들에게 내린 척사윤음으로 한문본과 언해본이 실려 있다.

내용

고종이 대소 관료와 서울과 지방의 백성들에게 내린 척사윤음으로 한문본과 언해본이 실려 있다. 천주교에 대한 척사로 발생한 사옥(邪獄)은 1801년 (순조 1) 신유사옥을 기화로 헌종대 기해사옥, 병오사옥 그리고 고종 대 병인사옥이 대표적이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병인사옥이었다. 1866년(고종 3)에 시작된 병인사옥은 다른 사옥과는 달리 6년 동안 지속되어 약 8,000명의 천주교인이 순교하였다. 병인양요신미양요 등 열강의 침입을 경험하면서, 흥선대원군은 서구 열강에 대한 국가적 위기의식과 정치적 반대세력의 비난을 피하기 위하여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를 지속하였다. 1881년 고종이 내린 윤음은 사실상 마지막 척사윤음이었다. 이 윤음의 내용은 천주교 교리를 반박하고, 백성들에게 천주교에 현혹되지 말라는 취지의 다른 윤음과는 성격이 다르다. 고종정조 이후로 천주교인을 여러 번 징계했으나, 소멸되지 않았다고 전제하였다. 이어 천주교인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설명하고, 유학 사상을 실생활에서 실천함으로써 순박한 풍속을 회복하고 사당(私黨)인 천주교인들을 소멸시키자는 것이었다.[1]


부연설명

고종시기 내려진 척사윤음은 2건이 있었는데, 하나는 1866년에 내려진 것이고[2] 마지막 하나는 1881년에 내려진 어제 유대소신료급중외민인척사윤음이다.[3] 기존 헌종시기와 마찬가지로 유교적 입장에서 천주교를 사교(邪敎)로 규정하고 비판하고 있으며, 백성들을 회유하는 내용이다. 1866년에 내려진 척사윤음 직후 무려 7년동안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 엄청나 수의 천주교인들이 순교하였는데, 15년이 지나서도 강도 높은 척사윤음을 펼치는 것을 보면, 조선 조정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천주교인들이 소멸하지 않았고, 더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4]

시각자료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어제 유대소신료급중외민인척사윤음 고종 A는 B에 ~이다
어제 유대소신료급중외민인척사윤음 신유사옥 A는 B에 ~이다
어제 유대소신료급중외민인척사윤음 병오사옥 A는 B에 ~이다
어제 유대소신료급중외민인척사윤음 병인사옥 A는 B에 ~이다
어제 유대소신료급중외민인척사윤음 병인양요 A는 B에 ~이다
어제 유대소신료급중외민인척사윤음 신미양요 A는 B에 ~이다
어제 유대소신료급중외민인척사윤음 흥선대원군 A는 B에 ~이다
어제 유대소신료급중외민인척사윤음 정조 A는 B에 ~이다
어제 유대소신료급중외민인척사윤음 유교 A는 B에 ~이다
어제 유대소신료급중외민인척사윤음 천주교 A는 B에 ~이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818년 이후 어제 유대소신료급중외민인척사윤음은 간행되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39197 127.054387 어제 유대소신료급중외민인척사윤음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있다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96쪽.
  2. 『고종실록』3권, 고종 3년(1866) 8월 3일(기축), 1번째 기사.
  3. 『고종실록』 18권, 고종 18년(1881), 5월 15일(병자), 2번째기사.
  4. 인원순, 병인박해(丙寅迫害),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