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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설법으로 왜장을 감동시킨 사명당(송운대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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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 曰 : 우리나라에는 6조가 있지 7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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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장 曰 : 이 산에 금,은,동 여러 가지 보물이 있을테니 모두 내어놔라? 응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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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 曰 : 우리나라에서는 본래 금,은,동을 보배로 쓰지 않고 다만 쌀과 베를 쓰기 때무에 금, 은 따위는 귀중히 여기지도 않지만 산중에 있는 중은 채식으로 생활하는데 무슨 보물이 있겠는가? 또한 장군이 불교의 7조를 묻는것만 보아도 慈悲不殺을 제일로 삼는 불교를 아는 모양인데, 지금 죄없는 중들을 묶어놓고 보물을 내어놓으라니 지팡이 하나만 들고 千山萬水에 돌아 다니는 중에게 무슨 보물이 있겠는가? 비록 죽을지라도 보물은내어놓을 것이 없으니 장군은 자비심을 베풀어서 결박한 중들을 모두 풀어 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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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절에 있는 금·은 등 여러가지 보물을 모두 내놓아라. 만약 응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이 절에 있는 금·은 등 여러가지 보물을 모두 내놓아라. 만약 응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고 위협하니 [[유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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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왼편에 그려진 석탑은 [[유점사 구층석탑]]으로, 해당 작품에는 삼층석탑으로 잘못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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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유점사에서 있었던 일화를 보자. 왜적이 절을 점령한 뒤 승려 20여 명을 묶어 놓고 금은보화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는 혼자 왜적을 찾아갔다. "금은보화는 온 나라 안에서도 희귀한데, 초의를 입고 채식하며 사는 중들이 어찌 금은보화를 쌓아두었겠느냐." 당당히 이치를 따져가며 말로써 적장을 제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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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은 승려들을 풀어준 뒤 큰 판자에 '이 절에는 도승이 있으니 모든 군사는 들어오지 말라'고 써서 절문에 걸어 놓고 군사를 철수시켰다. 사명당은 이어 왜적의 본대가 주둔하고 있던 강원도 고성으로 가서 적장을 상대로 백성을 죽이지 말라고 설득했다. 유점사에서 있었던 사명당의 담대한 행동을 전해 들은 적장은 이 훈계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영동 지방의 아홉 고을 백성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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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아닌 총성이 고요한 산사의 정적을 깨뜨리고 난데없는 일본군의 무리가 나타나자 유점사의 수백명 승려들은 혼비백산하여 숲 속으로 달아났다 미처 도망하지 못하고 일본군에게 잡힌 승려들은 모두 결박을 당하였고 경내는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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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숲 속에 숨어있던 승려들 앞에 다른 승려가 나타났다, 절안의 사정을 들은 그는 이내 절로 가려 했으나 승려들은 한결같이 일본군의 포악함을 말하면서 그를 만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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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유점사를 향해 황급히 내려갔다 절에이른 그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경내에 들어서니 마주보는 일본군 병들도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그의츠연한 태도에 감히 앞을 막아서지 못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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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법당에 들어섰을 때 법당안에는 왜잔 4인이 앉아 있었으나 그는 그들은 못 본 체하고 뒷짐만 지고 이리저리 법당 안을 거닐기만 하였다. 그의 이러한거동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왜장 하나가 그를 불렀다. 그제야그는 왜장들 곁에 가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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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담에 의한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단. 왜장이 먼저 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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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왜장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안색이 달라졌다. 그 승려의 높은 법력에 감화를 받았음이리라. 그들은 이내 부하들를 불러 결박했던 승려들은 일제히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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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안내'''==
 
=='''시각적 안내'''==

2017년 4월 16일 (일) 14:07 판


설법으로 왜장을 감동시킨 사명당(송운대사)
박서보-왜장감화(사명당)-1976s.jpg
작가 박서보
제작연도 1976년
규격 300호(197x290.9cm)
유형 전쟁
분류 유화
소장처 미상


개요

유정(惟政)은 조선 중기의 고승, 승장(僧將)으로, 해당 작품은 선조(宣祖) 25년(1592) 6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금강산 유점사(楡岾寺)까지 침입한 왜장을 유정이 설법으로 감화시켜 물러나게 하는 장면을 담고있다.

설명

작품 소재

유점사에서 유정은 왜장과 필담을 나누었는데,

왜장 曰 : 글을 아는가?
유정 曰 : 조금 아노라
왜장 曰 : 너의 나라에서도 7조(七祖 화엄종의 교를 이어받은 7인)를 높이 섬기는가?
유정 曰 : 우리나라에는 6조가 있지 7조는 없다
왜장 曰 : 이 산에 금,은,동 여러 가지 보물이 있을테니 모두 내어놔라? 응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유정 曰 : 우리나라에서는 본래 금,은,동을 보배로 쓰지 않고 다만 쌀과 베를 쓰기 때무에 금, 은 따위는 귀중히 여기지도 않지만 산중에 있는 중은 채식으로 생활하는데 무슨 보물이 있겠는가? 또한 장군이 불교의 7조를 묻는것만 보아도 慈悲不殺을 제일로 삼는 불교를 아는 모양인데, 지금 죄없는 중들을 묶어놓고 보물을 내어놓으라니 지팡이 하나만 들고 千山萬水에 돌아 다니는 중에게 무슨 보물이 있겠는가? 비록 죽을지라도 보물은내어놓을 것이 없으니 장군은 자비심을 베풀어서 결박한 중들을 모두 풀어 놀아라


이 절에 있는 금·은 등 여러가지 보물을 모두 내놓아라. 만약 응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고 위협하니 유정

우리나라에서는 본래 금·은 등을 보배로 쓰지 않고 다만 쌀과 베를 쓰기 때문에 금·은 따위는 귀중히 여기지도 않는다...죽인다고 해도 내어놓을 것이 없으니, 저 묶여있는 중들을 모두 풀어 놓아라

하며 불교의 설법으로 가토 기요마사를 탄복케 하였고, 왜장 두 명이 그에게 계를 받아, 유점사(楡岾寺) 인근 아홉 고을 사람들이 참회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해당 작품은 이와 같은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작품 중앙에 그려진 고승이 유정이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투구를 벗고 있는 왜장이 가토 기요마사이다.

작품 배경

작품의 배경은 금강산 4대 사찰 중 하나인 유점사로, 작품의 뒷배경에 금강산의 산세가 묘사되어 있다.
작품 왼편에 그려진 석탑은 유점사 구층석탑으로, 해당 작품에는 삼층석탑으로 잘못 묘사되어 있다.


금강산 유점사에서 있었던 일화를 보자. 왜적이 절을 점령한 뒤 승려 20여 명을 묶어 놓고 금은보화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는 혼자 왜적을 찾아갔다. "금은보화는 온 나라 안에서도 희귀한데, 초의를 입고 채식하며 사는 중들이 어찌 금은보화를 쌓아두었겠느냐." 당당히 이치를 따져가며 말로써 적장을 제압했다. 적장은 승려들을 풀어준 뒤 큰 판자에 '이 절에는 도승이 있으니 모든 군사는 들어오지 말라'고 써서 절문에 걸어 놓고 군사를 철수시켰다. 사명당은 이어 왜적의 본대가 주둔하고 있던 강원도 고성으로 가서 적장을 상대로 백성을 죽이지 말라고 설득했다. 유점사에서 있었던 사명당의 담대한 행동을 전해 들은 적장은 이 훈계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영동 지방의 아홉 고을 백성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때아닌 총성이 고요한 산사의 정적을 깨뜨리고 난데없는 일본군의 무리가 나타나자 유점사의 수백명 승려들은 혼비백산하여 숲 속으로 달아났다 미처 도망하지 못하고 일본군에게 잡힌 승려들은 모두 결박을 당하였고 경내는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이즈음 숲 속에 숨어있던 승려들 앞에 다른 승려가 나타났다, 절안의 사정을 들은 그는 이내 절로 가려 했으나 승려들은 한결같이 일본군의 포악함을 말하면서 그를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유점사를 향해 황급히 내려갔다 절에이른 그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경내에 들어서니 마주보는 일본군 병들도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그의츠연한 태도에 감히 앞을 막아서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가 법당에 들어섰을 때 법당안에는 왜잔 4인이 앉아 있었으나 그는 그들은 못 본 체하고 뒷짐만 지고 이리저리 법당 안을 거닐기만 하였다. 그의 이러한거동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왜장 하나가 그를 불렀다. 그제야그는 왜장들 곁에 가서 앉았다.

필담에 의한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단. 왜장이 먼저 붓을 들었다


4명의 왜장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안색이 달라졌다. 그 승려의 높은 법력에 감화를 받았음이리라. 그들은 이내 부하들를 불러 결박했던 승려들은 일제히 풀어주었다. =


시각적 안내

금강산유정유점사 구층석탑박서보 「설법으로 왜장을 감동시킨 사명당(송운대사)」 1976
이 그림에 대한 정보

관련 민족기록화

관련항목

A항목 B항목 관계
박서보-설법으로 왜장을 감동시킨 사명당(송운대사) 박서보 A는 B에 의해 그려졌다
박서보-설법으로 왜장을 감동시킨 사명당(송운대사) 유정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박서보-설법으로 왜장을 감동시킨 사명당(송운대사) 유점사 A는 B를 배경으로 한다
유점사 금강산 A는 B에 위치한다
유점사 구층석탑 유점사 A는 B에 위치한다
유정 휴정 A는 B의 제자이다
유정 남한산성
유정 이향견문록 A는 B에 언급된다
유정 정여립 모반사건 A는 B와 관련이 있다
유정 평양성 전투 A는 B에 참가하였다
정여립 모반사건 기축옥사 A는 B와 관련이 있다
정여립 정여립 모반사건 A는 B와 관련이 있다
정여립 기축옥사 A는 B와 관련이 있다
가토 기요마사 진주성 싸움 A는 B에 참가하였다




박서보-설법으로 왜장을 감동시킨 사명당(송운대사) 관련 기사

시간정보

중심 시간정보명 시간값
박서보-설법으로 왜장을 감동시킨 사명당(송운대사) 제작연도 1976년
박서보-설법으로 왜장을 감동시킨 사명당(송운대사)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남부연수원 대여기간 1991.11.20 ~ 1992.11.19

공간정보

중심 연결정보 공간정보이름 경도 위도
박서보-설법으로 왜장을 감동시킨 사명당(송운대사) 소장처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남부연수원 35.4249581 126.8236472

그래프

참고문헌

  • 편집부, 「민족기록화로 본 한국역사」, 월간보훈문화, 2004년.
  • "유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14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204478&cid=51267&categoryId=51267

주석

  1. "민족기록화1", 『국가기록원 기록물뷰어』online, 국가기록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12일.
  2. "민족기록화구국위업편6", 『국가기록원 기록물뷰어』online, 국가기록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12일.
  3. "민족기록화2", 『국가기록원 기록물뷰어』online, 국가기록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12일.
  4. "최규하국무총리민족기록화구국위업편전람회관람5", 『국가기록원 기록물뷰어』online, 국가기록원. 최종확인: 2017년 04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