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탑동표석"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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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6일 (일) 11:51 판

양문탑동표석
양문탑동표석 04.jpg
한자명칭 梁文塔洞表石
작자 낭성군 이우
작성시기 1686년(숙종12)
간행시기 조선후기
소장처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소재 (사진제공)한신대학교박물관
유형 금석문
크기(세로×가로) (전·후면) 141.0×38.0cm, (좌·우면) 141.0×38.0cm
판본 각자
표기문자 한글, 한자



개요

1686년숙종12 겨울에 낭선군 이우가 아버지 인흥군 이영의 묘역에 세운 비이다.

텍스트

1686년숙종12 겨울에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 1637~1693가 아버지 인흥군仁興君 이영李瑛, 1604~1651의 묘역에 세운 비이다. 인흥군 이영은 선조의 제12자로, 어머니는 정빈민씨靜嬪閔氏이다. 1651년 11월 이영이 세상을 떠나자 포천 영평현에 예장하고, 1681년 부인 여산송씨가 세상을 떠나자 함께 모셨다. 아들인 이우가 1686년 묘역의 앞에 표석을 세웠는 데, 한 면에 한글 20자를 새겨 “이 비가 극히 영검하니 절대로 사람이 건드리지 말라.”고 하였다. 다른 면에 이우가 글씨를 썼다고 밝혔으므로 이 한글 역시 이우의 글씨로 추정된다. 한글이 새겨진 금석문으로는 1536년에 세운 고양시 이윤탁묘갈李允濯墓碣의 한 면에 새긴 한글 비문[靈碑]와 함께 매우 드문 사례이다. 두 비의 한글은 한문을 모르는 백성들이 묘역을 범할 것을 염려하여 함부로 드나들지 말라는 문구를 새긴 것이다.[1]


시각자료

관련항목

중심 연결정보 대상
양문탑동표석 인물 이우
양문탑동표석 인물 이영
양문탑동표석 인물 선조
양문탑동표석 인물 정빈민씨
양문탑동표석 인물 여산송씨
양문탑동표석 유물 이윤탁묘갈

공간정보

중심 연결정보 공간정보이름 경도 위도
양문탑동표석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37.39197 127.054387

시간정보

중심 시간정보명 시간값
양문탑동표석 간행년 1686년(숙종12)

참고문헌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28-1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