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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육절려(六節閭) 강원 횡성군 공근면 매곡리 산11에 있는 정려각.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5호. 18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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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군 공근면 매곡리 산11에 있는 정려각.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5호. 1817년(순조 17),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전사한 [[서예원]]과 그의 처, 아들, 며느리, 사위, 딸의 충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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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군 공근면 매곡리 산11에 있는 정려각.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5호. 1817년(순조 17),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전사한 [[서예원]](徐禮元)과 그의 처, 아들, 며느리, 사위, 딸의 충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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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군 공근면에 있는 조선후기 진주목사 [[서예원]](徐禮元) 관련 정려각. 시도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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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건물. 198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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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전사한 진주목사 겸 진주진 병마첨절제사 [[서예원]](徐禮元)과 그의 처에게 1817년(순조 17) 조정에서 정려(旌閭)를 내렸고, 그로부터 15년 후에 아들·며느리·사위·딸도 함께 순절한 공적이 인정되어 한 가문 6명이 정려를 받았는데, 이들의 충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육절려각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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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원]](徐禮元)의 현판에는 “忠臣通訓大夫晋州牧使兼晋州鎭兵馬僉節制使矗石守城將 贈通政大夫兵曹參議徐禮元之閭 上之十七年丁丑十月日命旌(충신통훈대부진주목사겸진주진병마첨절제사촉석수성장 증통정대부병조참의서예원지려 상지17년정축10월일명정)”이라고 기록되었고, 처 이씨 현판에는 “烈女通訓大夫晋州牧使兼晋州鎭兵馬僉節制使矗石守城將 贈通政大夫兵曹參議徐禮元之妻 贈淑夫人全州李氏之閭(열녀통훈대부진주목사겸진주진병마첨절제사촉석수성장 증통정대부병조참의서예원지처 증숙부인전주이씨지려)”라고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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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인 서계성(徐繼聖)의 현판에는 “孝子成均生員徐繼聖之閭 上之三十三年壬辰十月日命旌(효자성균생원서계성지려 상지33년임진10월일명정)”이라고 기록되었고, 며느리 노씨의 현판에는 “烈女成均生員徐繼聖妻豊川盧氏之閭 上之三十二年 壬辰十月日命旌(열녀성균생원서계성처풍천노씨지려 상지32년 임진10월일명정)”이라고 기록되었으며, 딸의 현판에는 “烈女贈參議徐禮元 未筓女之閭 上之三十二年十月日命旌(열녀증참의서예원 미계녀지려 상지32년10월일명정)”이라고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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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육절려 건물은 1983년에 재건한 것이다. 네 벽은 건물의 높이 3분의 2정도에 띠방을 두고 홍살을 돌려 세웠고 양 측면에는 방풍판(防風板)을 댄 굴도리집양식이다. 육절려각이 이곳에 건립된 것은 그 후손들이 이곳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9일 (일) 09:26 판

육절려(六節閭)

강원 횡성군 공근면 매곡리 산11에 있는 정려각.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5호. 1817년(순조 17),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전사한 서예원(徐禮元)과 그의 처, 아들, 며느리, 사위, 딸의 충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에 있는 조선후기 진주목사 서예원(徐禮元) 관련 정려각. 시도유형문화재.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건물. 1981년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전사한 진주목사 겸 진주진 병마첨절제사 서예원(徐禮元)과 그의 처에게 1817년(순조 17) 조정에서 정려(旌閭)를 내렸고, 그로부터 15년 후에 아들·며느리·사위·딸도 함께 순절한 공적이 인정되어 한 가문 6명이 정려를 받았는데, 이들의 충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육절려각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서예원(徐禮元)의 현판에는 “忠臣通訓大夫晋州牧使兼晋州鎭兵馬僉節制使矗石守城將 贈通政大夫兵曹參議徐禮元之閭 上之十七年丁丑十月日命旌(충신통훈대부진주목사겸진주진병마첨절제사촉석수성장 증통정대부병조참의서예원지려 상지17년정축10월일명정)”이라고 기록되었고, 처 이씨 현판에는 “烈女通訓大夫晋州牧使兼晋州鎭兵馬僉節制使矗石守城將 贈通政大夫兵曹參議徐禮元之妻 贈淑夫人全州李氏之閭(열녀통훈대부진주목사겸진주진병마첨절제사촉석수성장 증통정대부병조참의서예원지처 증숙부인전주이씨지려)”라고 기록되었다.

장자인 서계성(徐繼聖)의 현판에는 “孝子成均生員徐繼聖之閭 上之三十三年壬辰十月日命旌(효자성균생원서계성지려 상지33년임진10월일명정)”이라고 기록되었고, 며느리 노씨의 현판에는 “烈女成均生員徐繼聖妻豊川盧氏之閭 上之三十二年 壬辰十月日命旌(열녀성균생원서계성처풍천노씨지려 상지32년 임진10월일명정)”이라고 기록되었으며, 딸의 현판에는 “烈女贈參議徐禮元 未筓女之閭 上之三十二年十月日命旌(열녀증참의서예원 미계녀지려 상지32년10월일명정)”이라고 기록되었다.

현재의 육절려 건물은 1983년에 재건한 것이다. 네 벽은 건물의 높이 3분의 2정도에 띠방을 두고 홍살을 돌려 세웠고 양 측면에는 방풍판(防風板)을 댄 굴도리집양식이다. 육절려각이 이곳에 건립된 것은 그 후손들이 이곳에 거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