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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주먹으로 일본에 건너가 낮에는 제철공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밤에는 열심히 공부하여 23세에 오사카의 관서공업학교를 졸업하셨다.   
 
빈주먹으로 일본에 건너가 낮에는 제철공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밤에는 열심히 공부하여 23세에 오사카의 관서공업학교를 졸업하셨다.   
  
  28세에 이천공작소를 설립, 경영하였는데 뛰어난 기술로 사업이 날로 번창하였다. 해방후 귀국하여 이천방직, 이천전기, 이천제강, 이천중기등의 주식회사를 설립, 경영함으로써 우리 나라 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고장 인재 육성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당시 빈약한 교육기관을 돕고 수많은 어려운 학생에게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우셨다. 특히 1952년 2월에 어려운 국내 경제속에도 사재를 쾌척하시어 나주고등학교에 10개 교실을 신축, 기증하심으로써 오늘의 명문 나주고의 기틀을 마련해 주셨다. 또한 1981년에는 금하장학회를 설립하여 지속적으로 고향의 영재 육성에 기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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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세에 이천공작소를 설립, 경영하였는데 뛰어난 기술로 사업이 날로 번창하였다. 해방후 귀국하여 이천방직, 이천전기, 이천제강, 이천중기등의 주식회사를 설립, 경영함으로써 우리 나라 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고장 인재 육성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당시 빈약한 교육기관을 돕고 수많은 어려운 학생에게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우셨다. 특히 1952년 2월에 어려운 국내 경제속에도 사재를 쾌척하시어 나주고등학교에 10개 교실을 신축, 기증하심으로써 오늘의 명문 나주고의 기틀을 마련해 주셨다. 또한 1981년에는 금하장학회를 설립하여 지속적으로 고향의 영재 육성에 기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셨다.
  
 
이천서씨(利川徐氏) 종친회 회장으로 자비 3억원을 들여 1991년 이천서씨(利川徐氏) 시조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阿干大夫).부총리) 묘역을 재구성하고, 정민공 서필(徐弼 내의령(內議令). 종1품. 국무총리) 묘역과 장위공 서희(徐弼 내사령(內史令). 종1품. 국무총리) 묘역 주변을 많은 자금을 들여 재구성하여, 천만대 후손에게 기리 기억될 수 있는 아름다운 선행을 하셨다.
 
이천서씨(利川徐氏) 종친회 회장으로 자비 3억원을 들여 1991년 이천서씨(利川徐氏) 시조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阿干大夫).부총리) 묘역을 재구성하고, 정민공 서필(徐弼 내의령(內議令). 종1품. 국무총리) 묘역과 장위공 서희(徐弼 내사령(內史令). 종1품. 국무총리) 묘역 주변을 많은 자금을 들여 재구성하여, 천만대 후손에게 기리 기억될 수 있는 아름다운 선행을 하셨다.

2022년 8월 22일 (월) 23:08 판

1910. 1. 8일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에서 태어 나셨다.

16세 나이에 스스로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기로 결심하고

빈주먹으로 일본에 건너가 낮에는 제철공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밤에는 열심히 공부하여 23세에 오사카의 관서공업학교를 졸업하셨다.


28세에 이천공작소를 설립, 경영하였는데 뛰어난 기술로 사업이 날로 번창하였다. 해방후 귀국하여 이천방직, 이천전기, 이천제강, 이천중기등의 주식회사를 설립, 경영함으로써 우리 나라 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셨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고장 인재 육성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당시 빈약한 교육기관을 돕고 수많은 어려운 학생에게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우셨다. 특히 1952년 2월에 어려운 국내 경제속에도 사재를 쾌척하시어 나주고등학교에 10개 교실을 신축, 기증하심으로써 오늘의 명문 나주고의 기틀을 마련해 주셨다. 또한 1981년에는 금하장학회를 설립하여 지속적으로 고향의 영재 육성에 기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셨다.

이천서씨(利川徐氏) 종친회 회장으로 자비 3억원을 들여 1991년 이천서씨(利川徐氏) 시조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阿干大夫).부총리) 묘역을 재구성하고, 정민공 서필(徐弼 내의령(內議令). 종1품. 국무총리) 묘역과 장위공 서희(徐弼 내사령(內史令). 종1품. 국무총리) 묘역 주변을 많은 자금을 들여 재구성하여, 천만대 후손에게 기리 기억될 수 있는 아름다운 선행을 하셨다.


자녀는 서형열(이천물산회장), 서의열회장(서안개발(주)회장.금하장학재단 이사장)


금하 선생의 자우명인 자력(自力), 자립(自立), 자주(自主)정신을 이어받고, 높고 큰 공적과 공덕을 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