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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김택영(金澤榮)이 편한 『[[매천집|매천집(梅泉集)]]』권5에 수록되어 전한다. 「절명시」는 작자 [[황현]]이 [[경술국치]]를 당하여 8월 7일(음력) 더덕술에 아편을 타 마시고 자결하면서 남긴 시이다.<ref>심경호,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9803 절명시]",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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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명시 絶命詩<ref>정구현, "[http://mpva.tistory.com/4225 매천 황현 최후작, 절명시]", 작성일:2016년 12월 6일, <html><online style="color:purple">『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sup>online</sup></online></html>, 국가보훈처.</ref> | 절명시 絶命詩<ref>정구현, "[http://mpva.tistory.com/4225 매천 황현 최후작, 절명시]", 작성일:2016년 12월 6일, <html><online style="color:purple">『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sup>online</sup></online></html>, 국가보훈처.</ref> | ||
− | 백발이 성한 세월에 난리 | + | 백발이 성한 세월에 난리 속에 이르러/ |
이 목숨 물리칠까 하였지만 그리 하지 못하였고/ | 이 목숨 물리칠까 하였지만 그리 하지 못하였고/ | ||
오늘에는 더 이상을 어찌할 수 없게 되었으니/ | 오늘에는 더 이상을 어찌할 수 없게 되었으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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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망한 기운에 가려 제국의 별 옮겨지고/ | 요망한 기운에 가려 제국의 별 옮겨지고/ | ||
옛 궁궐은 가라앉아 글은 새고 느려 터져/ | 옛 궁궐은 가라앉아 글은 새고 느려 터져/ | ||
− | 이제는 따르고 | + | 이제는 따르고 좇을 조칙마저 다시없을 것이러니/ |
옥같이 아름다웠던 우리 천가닥 눈물만 흘리도다. | 옥같이 아름다웠던 우리 천가닥 눈물만 흘리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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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지식인 되어 인간답기 어렵도다. | 참다운 지식인 되어 인간답기 어렵도다. | ||
− | 일찍이 나라를 위해 반 조각만한 공도 | + | 일찍이 나라를 위해 반 조각만한 공도 없었고/ |
다만 인자함을 이룰 뿐 충이라고는 할 수 없었으니/ | 다만 인자함을 이룰 뿐 충이라고는 할 수 없었으니/ | ||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겨우 ‘윤곡’의 뜻을 따르를 뿐,/ |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겨우 ‘윤곡’의 뜻을 따르를 뿐,/ |
2018년 1월 2일 (화) 16:57 판
절명시(絶命詩) | |
대표명칭 | 절명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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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絶命詩 |
저자 | 황현 |
저술시기 | 1910년 |
간행시기 | 1911년 |
간행지 | 『매천집』권5 |
간행인 | 김택영 |
시대 | 근대 |
정의
조선 말기 문신 황현(黃玹)이 유언으로 지은 한시이다.
내용
김택영(金澤榮)이 편한 『매천집(梅泉集)』권5에 수록되어 전한다. 「절명시」는 작자 황현이 경술국치를 당하여 8월 7일(음력) 더덕술에 아편을 타 마시고 자결하면서 남긴 시이다.[1]
1910년 한일합방(韓日合邦)으로 국권이 상실되는 상황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처신에 대한 어려움을 절감하고, 이로 인해 자결하는 심경을 나타냈다.[2]
칠언절구 4수로 이루어졌다. 제1수에서는 작가가 이미 순명에 대한 결심을 하고 있음을 말하였다. 제2수에서는 망국에 대한 슬픔을 나타냈으며 제3수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제4수는 충(忠)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 것에 대한 한탄을 표현하였다.[3]
작품
절명시 絶命詩[4]
백발이 성한 세월에 난리 속에 이르러/ 이 목숨 물리칠까 하였지만 그리 하지 못하였고/ 오늘에는 더 이상을 어찌할 수 없게 되었으니/ 바람에 날리는 촛불만이 창천에 비치도다.
요망한 기운에 가려 제국의 별 옮겨지고/ 옛 궁궐은 가라앉아 글은 새고 느려 터져/ 이제는 따르고 좇을 조칙마저 다시없을 것이러니/ 옥같이 아름다웠던 우리 천가닥 눈물만 흘리도다.
고국강산 찌그러져 짐승도 슬피 울고 나는 새도 슬피 우니/ 무궁화 이 강산은 가라앉아 사라지고/ 세월의 등잔불 아래 천고의 한 덮어두니/ 참다운 지식인 되어 인간답기 어렵도다.
일찍이 나라를 위해 반 조각만한 공도 없었고/ 다만 인자함을 이룰 뿐 충이라고는 할 수 없었으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겨우 ‘윤곡’의 뜻을 따르를 뿐,/ 의당, ‘진동’처럼 몰아붙이지 못함을 부끄러워할 뿐이로다.
지식 관계망
- 황현과 최익현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절명시 | 황현 | A는 B가 저술하였다 | A ekc:writer B |
매천집 | 절명시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매천집 | 황현 | A는 B가 저술하였다 | A ekc:writer B |
매천집 | 김택영 | A는 B가 간행하였다 | A dcterms:publisher B |
절명시 | 경술국치 | A는 B와 관련이있다 | A edm:isRelatedTo B |
주석
- ↑ 심경호, "절명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 ↑ "절명시",
『두산백과』online . - ↑ "절명시",
『두산백과』online . - ↑ 정구현, "매천 황현 최후작, 절명시", 작성일:2016년 12월 6일,
『국가보훈처 대표 블로그』online , 국가보훈처.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더 읽을거리
- 함규진, 「황현:자유의 마음을 담아 절명시를 짓다」, 『인물과사상』 2015년 7월호, 113-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