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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 있는 전각으로, [[왕]]이 신하인 백관을 만나 국사를 논의하고, 유교 경전 등을 공부하기도 하고, 시험을 보기도 하였으며, 잔치를 베풀기도 한 공식 집무실로 쓰인 편전이다. 보물 제814호로 지정되었다.<ref>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26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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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 있는 전각으로, 왕의 공식 집무실인 편전으로 사용되었다.<ref>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266쪽.</ref>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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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백관들과 국사를 논하거나 경연이나 전시(殿試)를 실시하고, 왕실 잔치를 베풀기도 하였다. 현재 궁궐 전각들 중 유일하게 청기와로 지붕을 덮었다.<ref>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26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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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
창건 당시에 ‘조계청(朝啟廳)’에서 1461년(세조 7)에 궁궐 건물들의 이름을 바꿀 때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때 재건하고, [[인조반정]] 때 다시 화재를 당했다가 1647년(인조 25)에 중건되었다. [[광해군]]이 창건한 [[인경궁 광정전]] 9칸을 철거해 [[창덕궁 선정전]] 9칸을 중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순조]] 이후에는 [[창덕궁 선정전|선정전]]보다는 [[창덕궁 희정당|희정당]]을 편전으로 사용해 혼전을 모시는 곳으로 사용되었다.<ref>"[http://www.cdg.go.kr/cms_for_cdg/show.jsp?show_no=39&check_no=8&c_relation=8&c_relation2=70 문화재청 창덕궁]", 전각소개,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재청 창덕궁』<sup>online</sup></online></html>, 문화재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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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 당시의 이름은 ‘조계청(朝啟廳)’이었다. 1461년(세조 7)에‘정치[政]는 베풀어야[宣] 한다.’는 의미로 이름이 바뀌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때 재건하고, [[인조반정]] 때 다시 화재를 당했다가 1647년(인조 25)에 중건되었다. [[광해군]]이 창건한 [[인경궁 광정전]] 9칸을 철거해 [[창덕궁 선정전]] 9칸을 중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순조]] 이후에는 [[창덕궁 희정당|희정당]]을 편전으로 사용하였으며 선정전은 혼전(魂殿)을 모시는 곳으로 사용되었다.<ref>"[http://www.cdg.go.kr/cms_for_cdg/show.jsp?show_no=39&check_no=8&c_relation=8&c_relation2=70 문화재청 창덕궁]", 전각소개,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재청 창덕궁』<sup>online</sup></online></html>, 문화재청.</ref>  
  
 
===현재===
 
===현재===
현존하는 궁궐 건물에서 유일하게 청색 기와로 치장한 건물이다. 〈동궐도〉와 현재의 [[창덕궁 선정전]]을 비교해보면 마당이 원래보다 동서쪽이 좁아진 상태이고, [[창덕궁 선정문|선정문]]도 현재보다 더욱 앞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창덕궁]]을 개조하면서 [[창덕궁 선정전|선정전]]의 회랑과 [[창덕궁 인정전|인정전]]의 회랑에 석축을 높이 쌓고 통로를 만든 뒤 복도 건물을 세워 연결시키면서 이전 제도와 다르게 구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ref>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 55~5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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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와 현재의 [[창덕궁 선정전]]을 비교해보면 마당이 원래보다 동서쪽이 좁아진 상태이고, [[창덕궁 선정문|선정문]]도 현재보다 더욱 앞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창덕궁]]을 개조하면서 [[창덕궁 선정전|선정전]]의 회랑과 [[창덕궁 인정전|인정전]]의 회랑에 석축을 높이 쌓고 통로를 만든 뒤 복도 건물을 세워 연결시키면서 이전 제도와 다르게 구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ref>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 55~56쪽.</ref> 1985년 보물 제814호로 지정되었다.
  
 
=='''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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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궁중기록화 장소 창덕궁 선정전01 두산백과.jpg| 창덕궁 선원전의 청색 기와.<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45766&cid=40942&categoryId=33079 창덕궁 선정전]", 두산백과,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 네이버.</ref></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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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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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9일 (일) 22:09 기준 최신판

창덕궁 선정전(昌德宮 宣政殿)
문화재청(http://www.cha.go.kr/)
대표명칭 창덕궁 선정전
한자표기 昌德宮 宣政殿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율곡로 99
관련인물 경종, 정조, 순조


정의

창덕궁에 있는 전각으로, 왕의 공식 집무실인 편전으로 사용되었다.[1]

내용

왕이 백관들과 국사를 논하거나 경연이나 전시(殿試)를 실시하고, 왕실 잔치를 베풀기도 하였다. 현재 궁궐 전각들 중 유일하게 청기와로 지붕을 덮었다.[2]

역사

창건 당시의 이름은 ‘조계청(朝啟廳)’이었다. 1461년(세조 7)에‘정치[政]는 베풀어야[宣] 한다.’는 의미로 이름이 바뀌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때 재건하고, 인조반정 때 다시 화재를 당했다가 1647년(인조 25)에 중건되었다. 광해군이 창건한 인경궁 광정전 9칸을 철거해 창덕궁 선정전 9칸을 중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순조 이후에는 희정당을 편전으로 사용하였으며 선정전은 혼전(魂殿)을 모시는 곳으로 사용되었다.[3]

현재

〈동궐도〉와 현재의 창덕궁 선정전을 비교해보면 마당이 원래보다 동서쪽이 좁아진 상태이고, 선정문도 현재보다 더욱 앞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창덕궁을 개조하면서 선정전의 회랑과 인정전의 회랑에 석축을 높이 쌓고 통로를 만든 뒤 복도 건물을 세워 연결시키면서 이전 제도와 다르게 구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4] 1985년 보물 제814호로 지정되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창덕궁 선정전(昌德宮 宣政殿) 경종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창덕궁 선정전(昌德宮 宣政殿) 순조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창덕궁 선정전(昌德宮 宣政殿) 정조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창덕궁 선정전(昌德宮 宣政殿) 효종 A는 B의 재궁이다 A edm:isRelatedTo B

시간정보

시간 내용
1641년 5월 4일 창덕궁 선정전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1724년 경종의 빈전을 창덕궁 선정전에 마련하였다
1800년 11월 7일 정조의 신주를 창덕궁 선정전에 봉안하였다
1834년 4월 19일 순조의 신주를 창덕궁 선정전에 봉안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579660 126.990995 창덕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율곡로 99에 위치한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266쪽.
  2.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266쪽.
  3. "문화재청 창덕궁", 전각소개, 『문화재청 창덕궁』online, 문화재청.
  4.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 55~56쪽.
  5. "창덕궁 선정전",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네이버.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공준원, 『오궁과 도성』, 세계문예, 2009.
  • 이강근, 『한국의 궁궐』, 대원사, 1991.
  • 이태호, 『그림으로 본 옛 서울』, 서울학연구소, 1995.
  •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 장순용, 『창덕궁』, 대원사, 1990.

더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