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간이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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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7일 (금) 00:14 판
구급간이방언해 | |
한자명칭 | 救急簡易方諺解 |
---|---|
영문명칭 | The most complet first-aid book |
작자 | 윤호 등 |
작성시기 | 1489년(성종20) |
간행시기 | 조선초기 |
소장처 |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
유형 | 고문헌 |
크기(세로×가로) | 26.6×18.6㎝ |
판본 | 목판본, 초간, 16세기 중간본 |
수량 | 1冊(권7) |
표기문자 | 한글, 한자 |
개요
고종이 1881년 내린 사실상 마지막 척사윤음으로, 대소 관료와 서울과 지방의 백성들에게 내린 척사윤음으로 한문본과 언해본이 실려 있다.
텍스트
윤호尹壕, 1424~1496 등이 성종成宗의 명을 받고 편찬한 의학서이다. 일반 백성들도 이 책을 활용해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방문마다 한글로 언해를 덧붙였다. 『구급간이방』의 서문에 출간에 참여한 인물을 나열했는데, 『의방유취醫方類聚』의 출간에 참여했던 임원준任元濬과 『의방유취』의 요약판인 『의문정요醫門精要』를 저술한 허종許琮, 1434~1494이 주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종실록』 20년 5월조의 “내의원제조 영돈녕 윤호尹壕, 1424~1496 등이 신찬 『구급간이방』을 진상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간행하여 중외 여러 고을에 두루 반포하여 여항 소민으로 하여금 모두 얻어 볼 수 있게 하였다.”는 기록으로 볼 때 일반 백성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준비하여 1489년 5 월에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구급방서 중에서 가장 완비된 것으로 질병을 중풍과 두통 등 127종으로 나누어 그 치료 방문을 모아 엮었다. 조선 초기의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의서 중 하나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언해 부분도 15세기 국어학 연구에도 많은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반치음의 불규칙한 사용이나 어두의 경음화가 보이며, 약초와 관련된 독특한 어휘가 많이 보인다.[1]
시각자료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시 [1] 한글전시도록
관련항목
중심 | 연결정보 | 대상 |
---|---|---|
구급간이방 | 인물 | 윤호 |
구급간이방 | 인물 | 성종 |
구급간이방 | 인물 | 임원준 |
구급간이방 | 인물 | 허종 |
구급간이방 | 인물 | 신찬 |
구급간이방 | 개념 | 성종실록 |
구급간이방 | 개념 | 의방유취 |
구급간이방 | 개념 | 의문정요 |
구급간이방 | 개념 | 구급간이방 |
공간정보
중심 | 연결정보 | 공간정보이름 | 경도 | 위도 |
---|---|---|---|---|
구급간이방 | 소장처 |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 35.833435 | 128.758046 |
시간정보
중심 | 시간정보명 | 시간값 |
---|---|---|
구급간이방 | 간행년 | 1489년(성종20) |
참고문헌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