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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1년 가을에 집현전 직제학 [[유효통|유효통(兪孝通)]], 전의감정 [[노중례|노중례(盧重禮)]], 동 부정 [[박윤덕|박윤덕(朴允德)]]에게 명하여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1433년 6월에 완성하였다. 이 책은 1399년(정종 1) [[제생원]]에서 간행한 『[[향약제생집성방|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30권의 [[구증|구증(舊症)]]과 [[구방]]을 기본으로 하여 다시 [[향약]]의 모든 방문들을 수집하고, 또는 널리 방서들을 빠짐없이 모아서 분류, 첨가하여 만든 것이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1431년 가을에 집현전 직제학 [[유효통|유효통(兪孝通)]], 전의감정 [[노중례|노중례(盧重禮)]], 동 부정 [[박윤덕|박윤덕(朴允德)]]에게 명하여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1433년 6월에 완성하였다. 이 책은 1399년(정종 1) [[제생원]]에서 간행한 『[[향약제생집성방|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30권의 [[구증|구증(舊症)]]과 [[구방]]을 기본으로 하여 다시 [[향약]]의 모든 방문들을 수집하고, 또는 널리 방서들을 빠짐없이 모아서 분류, 첨가하여 만든 것이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 | *[[구증]]이 388이던 것이 959로, [[구방]]이 2,803이던 것이 1만706이 되었으며, 그 밖에 [[침구법|침구법(鍼灸法)]] 1,416조, [[향약본초]] 및 [[포제법|포제법( | + | *[[구증]]이 388이던 것이 959로, [[구방]]이 2,803이던 것이 1만706이 되었으며, 그 밖에 [[침구법|침구법(鍼灸法)]] 1,416조, [[향약본초]] 및 [[포제법|포제법(?製法)]] 등을 합하여 85권으로 되었다. [[조선 세종|세종]]이 [[권채|권채(權採)]]에게 서를 명하고, 같은 해 8월전라도·강원도 두 도에서 나누어 간행하게 하였다. 그 뒤 1478년(성종 9)에 복간되고, 1633년(인조 11)에 훈련도감 소활자로 중인되었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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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약]]이라는 말은 우리 나라 향토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의미한 것인데, 중국산의 약을 [[당재|당재(唐材)]]라고 부르는 데 대한 우리 나라산의 총칭이다. 그런데 [[조선 세종|세종]]은 우리 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리 나라 풍토에 적합하고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병과 약에 대한 의토성(宜土性)을 강조하여 의약 제민(濟民)에 대한 자주적 방책을 세우고자 [[향약방]]을 종합수집한 『[[향약집성방]]』을 편집하게 한 것이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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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책은 그 서명을 특히 [[향약]]이라 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고려 후반기부터 민간 노인들이 사용해 오던 [[향약방]]을 많이 채집한 데서 우리 고유 의학의 전통을 중국에서 수입한 한의방과 융합시켜 우리 의학의 독자적 전통을 찾아보려고 노력해 온 자취를 넉넉히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편집하기 위한 전 작업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향약]]을 [[당재]]와 비교, 연구하고, 또는 각 도 각 읍에 분포된 [[향약]]의 실태를 조사하여 [[향약]]의 채취를 시기에 적절하도록 하는 『[[향약채취월령]]』을 간행하게 함으로써 이 책의 편성과 함께 당시의 우리 의약적 지식은 어느 정도의 학술적 체계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향약]]의 아래에 고유의 향명을 붙이게 한 것은 우리 고전언어의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하고 있다. [[한독의약박물관]]과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규장각 도서]]에 있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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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31년 가을에 집현전 직제학 [[유효통|유효통(兪孝通)]], 전의감정 [[노중례|노중례(盧重禮)]], 동 부정 [[박윤덕|박윤덕(朴允德)]]에게 명하여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1433년 6월에 완성하였다. 이 책은 1399년(정종 1) [[제생원]]에서 간행한 『[[향약제생집성방|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30권의 [[구증|구증(舊症)]]과 [[구방]]을 기본으로 하여 다시 [[향약]]의 모든 방문들을 수집하고, 또는 널리 방서들을 빠짐없이 모아서 분류, 첨가하여 만든 것이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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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증]]이 388이던 것이 959로, [[구방]]이 2,803이던 것이 1만706이 되었으며, 그 밖에 [[침구법|침구법(鍼灸法)]] 1,416조, [[향약본초]] 및 [[포제법|포제법(?製法)]] 등을 합하여 85권으로 되었다. [[조선 세종|세종]]이 [[권채|권채(權採)]]에게 서를 명하고, 같은 해 8월전라도·강원도 두 도에서 나누어 간행하게 하였다. 그 뒤 1478년(성종 9)에 복간되고, 1633년(인조 11)에 훈련도감 소활자로 중인되었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향약]]이라는 말은 우리 나라 향토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의미한 것인데, 중국산의 약을 [[당재|당재(唐材)]]라고 부르는 데 대한 우리 나라산의 총칭이다. 그런데 [[조선 세종|세종]]은 우리 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리 나라 풍토에 적합하고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병과 약에 대한 의토성(宜土性)을 강조하여 의약 제민(濟民)에 대한 자주적 방책을 세우고자 [[향약방]]을 종합수집한 『[[향약집성방]]』을 편집하게 한 것이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향약]]이라는 말은 우리 나라 향토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의미한 것인데, 중국산의 약을 [[당재|당재(唐材)]]라고 부르는 데 대한 우리 나라산의 총칭이다. 그런데 [[조선 세종|세종]]은 우리 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리 나라 풍토에 적합하고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병과 약에 대한 의토성(宜土性)을 강조하여 의약 제민(濟民)에 대한 자주적 방책을 세우고자 [[향약방]]을 종합수집한 『[[향약집성방]]』을 편집하게 한 것이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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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집성방]]의 구조=== | ===[[향약집성방]]의 구조=== | ||
− | *이 책은 모든 질병을 57대강문(大綱門)으로 나누어 그 아래 959조의 소목을 나누고, 각 강문과 조목에 해당되는 병론과 방약들을 출전(出典)과 함께 낱낱이 열거하였다. 그 밖에 권두에는 『[[자생경|자생경(資生經)]]』으로부터 채록한 침구목록이 있으며, 권말에는 [[향약본초]]의 총론 및 각론들이 붙어 있는데, 총론 중에는 [[제품약석포제법|제품약석포제법( | + | *이 책은 모든 질병을 57대강문(大綱門)으로 나누어 그 아래 959조의 소목을 나누고, 각 강문과 조목에 해당되는 병론과 방약들을 출전(出典)과 함께 낱낱이 열거하였다. 그 밖에 권두에는 『[[자생경|자생경(資生經)]]』으로부터 채록한 침구목록이 있으며, 권말에는 [[향약본초]]의 총론 및 각론들이 붙어 있는데, 총론 중에는 [[제품약석포제법|제품약석포제법(諸品藥石?製法)]]이 첨부되어 있다. 57병문들을 총괄하여 보면, 분류방법에 있어 인체 부위를 중심으로 한 병문과 병증을 중심으로 한 병문들이 서로 섞여 있어서, 근세 임상의학의 각 분과별에 대한 계통적 지식을 파악하기는 좀 어려운 느낌이 있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 내과 및 전염병·외과·이비인후과·안과·산부인과·소아과 및 치과 등에 이르는 임상 각 과가 거의 망라되어 있어, 종합된 의방서로서 넓은 범위에 걸쳐 자세히 논증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인용 서목은 한·당·송·원의 방서가 160여 종이나 된다. 그러나 그 서명들은 『[[의방유취|의방유취(醫方類聚)]]』에 인용된 서목과 거의 일치되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인용된 우리의 고유 의방서들의 이름만을 들어보면 『[[삼화자향약방|삼화자향약방(三和子鄕藥方)]]』·『[[본조경험방|본조경험방(本朝經驗方)]]』·『[[향약구급방|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향약혜민방|향약혜민방(鄕藥惠民方)]]』·『[[향약간이방|향약간이방(鄕藥簡易方)]]』·『[[어의촬요방|어의촬요방(御醫撮要方)]]』·『[[동인경험방|동인경험방(東人經驗方)]]』·『[[향약고방|향약고방(鄕藥古方)]]』·『[[제중립효방|제중립효방(濟衆立效方)]]』 등이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 내과 및 전염병·외과·이비인후과·안과·산부인과·소아과 및 치과 등에 이르는 임상 각 과가 거의 망라되어 있어, 종합된 의방서로서 넓은 범위에 걸쳐 자세히 논증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인용 서목은 한·당·송·원의 방서가 160여 종이나 된다. 그러나 그 서명들은 『[[의방유취|의방유취(醫方類聚)]]』에 인용된 서목과 거의 일치되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인용된 우리의 고유 의방서들의 이름만을 들어보면 『[[삼화자향약방|삼화자향약방(三和子鄕藥方)]]』·『[[본조경험방|본조경험방(本朝經驗方)]]』·『[[향약구급방|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향약혜민방|향약혜민방(鄕藥惠民方)]]』·『[[향약간이방|향약간이방(鄕藥簡易方)]]』·『[[어의촬요방|어의촬요방(御醫撮要方)]]』·『[[동인경험방|동인경험방(東人經驗方)]]』·『[[향약고방|향약고방(鄕藥古方)]]』·『[[제중립효방|제중립효방(濟衆立效方)]]』 등이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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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집성방]]이 중요한 이유=== | ===[[향약집성방]]이 중요한 이유=== | ||
이 책은 그 서명을 특히 [[향약]]이라 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고려 후반기부터 민간 노인들이 사용해 오던 [[향약방]]을 많이 채집한 데서 우리 고유 의학의 전통을 중국에서 수입한 한의방과 융합시켜 우리 의학의 독자적 전통을 찾아보려고 노력해 온 자취를 넉넉히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편집하기 위한 전 작업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향약]]을 [[당재]]와 비교, 연구하고, 또는 각 도 각 읍에 분포된 [[향약]]의 실태를 조사하여 [[향약]]의 채취를 시기에 적절하도록 하는 『[[향약채취월령]]』을 간행하게 함으로써 이 책의 편성과 함께 당시의 우리 의약적 지식은 어느 정도의 학술적 체계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향약]]의 아래에 고유의 향명을 붙이게 한 것은 우리 고전언어의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하고 있다. [[한독의약박물관]]과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규장각 도서]]에 있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이 책은 그 서명을 특히 [[향약]]이라 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고려 후반기부터 민간 노인들이 사용해 오던 [[향약방]]을 많이 채집한 데서 우리 고유 의학의 전통을 중국에서 수입한 한의방과 융합시켜 우리 의학의 독자적 전통을 찾아보려고 노력해 온 자취를 넉넉히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편집하기 위한 전 작업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향약]]을 [[당재]]와 비교, 연구하고, 또는 각 도 각 읍에 분포된 [[향약]]의 실태를 조사하여 [[향약]]의 채취를 시기에 적절하도록 하는 『[[향약채취월령]]』을 간행하게 함으로써 이 책의 편성과 함께 당시의 우리 의약적 지식은 어느 정도의 학술적 체계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향약]]의 아래에 고유의 향명을 붙이게 한 것은 우리 고전언어의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하고 있다. [[한독의약박물관]]과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규장각 도서]]에 있다.<ref>김두종,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62961 향약집성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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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5일 (목) 17:30 판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 |
대표명칭 | 향약집성방 |
---|---|
한자표기 | 鄕藥集成方 |
유형 | 문헌 |
편자 | 유효통(兪孝通) 노중례(盧重禮) 박윤덕(朴允德) |
저술시기 | 1433년 |
시대 | 조선 |
수량 | 85권 30책 |
표기문자 | 한문 |
소장처 | 한독의약박물관 규장각 |
목차
정의
1433년(세종 15)에 간행된 향약에 관한 의약서(醫藥書).
내용
향약집성방 편찬 목적
- 1431년 가을에 집현전 직제학 유효통(兪孝通), 전의감정 노중례(盧重禮), 동 부정 박윤덕(朴允德)에게 명하여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1433년 6월에 완성하였다. 이 책은 1399년(정종 1) 제생원에서 간행한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 30권의 구증(舊症)과 구방을 기본으로 하여 다시 향약의 모든 방문들을 수집하고, 또는 널리 방서들을 빠짐없이 모아서 분류, 첨가하여 만든 것이다.[1]
- 구증이 388이던 것이 959로, 구방이 2,803이던 것이 1만706이 되었으며, 그 밖에 침구법(鍼灸法) 1,416조, 향약본초 및 포제법(?製法) 등을 합하여 85권으로 되었다. 세종이 권채(權採)에게 서를 명하고, 같은 해 8월전라도·강원도 두 도에서 나누어 간행하게 하였다. 그 뒤 1478년(성종 9)에 복간되고, 1633년(인조 11)에 훈련도감 소활자로 중인되었다.[2]
- 향약이라는 말은 우리 나라 향토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의미한 것인데, 중국산의 약을 당재(唐材)라고 부르는 데 대한 우리 나라산의 총칭이다. 그런데 세종은 우리 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리 나라 풍토에 적합하고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병과 약에 대한 의토성(宜土性)을 강조하여 의약 제민(濟民)에 대한 자주적 방책을 세우고자 향약방을 종합수집한 『향약집성방』을 편집하게 한 것이다.[3]
향약집성방이 중요한 이유
이 책은 그 서명을 특히 향약이라 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고려 후반기부터 민간 노인들이 사용해 오던 향약방을 많이 채집한 데서 우리 고유 의학의 전통을 중국에서 수입한 한의방과 융합시켜 우리 의학의 독자적 전통을 찾아보려고 노력해 온 자취를 넉넉히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편집하기 위한 전 작업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향약을 당재와 비교, 연구하고, 또는 각 도 각 읍에 분포된 향약의 실태를 조사하여 향약의 채취를 시기에 적절하도록 하는 『향약채취월령』을 간행하게 함으로써 이 책의 편성과 함께 당시의 우리 의약적 지식은 어느 정도의 학술적 체계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향약의 아래에 고유의 향명을 붙이게 한 것은 우리 고전언어의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하고 있다. 한독의약박물관과 규장각 도서에 있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 B | 관계 | 비고 |
---|---|---|---|
향약집성방 | 유효통 | A 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향약집성방 | 노중례 | A 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향약집성방 | 박윤덕 | A 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
향약제생집성방 | 제생원 | A 는 B에 의해 간행되었다 | A dcterms:publisher B |
향약집성방 | 향약제생집성방 | A 는 B와 관련이있다 | A edm:isRelatedTo B |
향약집성방 | 구증 | A 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향약집성방 | 구방 | A 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향약집성방 | 향약 | A 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향약집성방 | 침구법 | A 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향약집성방 | 포제법 | A 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향약집성방 | 당재 | A 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향약집성방 | 조선 성종 | A 는 B에 의해 중간되었다 | A dcterms:publisher B |
향약집성방 | 조선 인조 | A 는 B에 의해 중간되었다 | A dcterms:publisher B |
향약집성방 | 향약방 | A 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향약채취월령 | 향약집성방 | A 는 B와 관련이있다 | A edm:isRelatedTo B |
향약채취월령 | 향약 | A 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향약채취월령 | 당재 | A 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향약채취월령 | 황자후 | A 는 B와 관련이있다 | A edm:isRelatedTo B |
향약채취월령 | 당약 | A 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향약집성방 | 삼화자향약방 | A 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향약집성방 | 본조경험방 | A 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향약집성방 | 향약구급방 | A 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향약집성방 | 구급간이방 | A 는 B와 관련이있다 | A edm:isRelatedTo B |
향약집성방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A 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향약집성방 | 한독의약박물관 | A 는 B에 소장되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조선 세종 | 향약집성방 | A 는 B와 관련이있다 | A edm:isRelatedTo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399년 | 향약제생집성방이 제생원에서 간행되었다 |
1428년 | 향약채취월령 이 반포되었다 |
1433년 | 향약집성방이 간행되었다 |
1478년 | 향약집성방이 중간되었다 |
1633년 | 향약집성방이 중간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7.462058 | 126.950273 | 향약집성방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었다 |
36.970538 | 127.46532 | 향약집성방은 한독의약박물관에 소장되었다 |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김두종, "향약집성방",
『한국민족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두종, "향약집성방",
『한국민족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두종, "향약집성방",
『한국민족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두종, "향약집성방",
『한국민족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金重權, 「《鄕藥集成方》의 引用文獻 分析」, 『서지학연구』, Vol-35, 2006, 183-229쪽.
- 이경록, 「《향약집성방》의 편찬과 중국 의료의 조선화」, 『醫史學』, Vol-20, 2011, 225-262쪽.
유용한 정보
- 김두종, "향약집성방",
『한국민족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