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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시와 글을 수록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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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시와 글을 수록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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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2일 (수) 19:33 판

고산유고
한글팀 고산유고 01.png
한자명칭 孤山遺稿
영문명칭 A Collection of Yun Seondo's poems and writings
작자 윤선도
간행시기 1796년(정조20)
청구기호 4-5758
유형 고서
크기(세로×가로) 32.4×21.0㎝
판본 목판본
수량 6冊
표기문자 한문, 한글



개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시와 글을 수록한 시문집.

내용

이 책 권6의 상에는 시(詩), 부(賦) 등이, 하에는 '가사(歌辭)'라는 표제 아래 75수의 시조가 실려 있다. <산중신곡(山中新曲)>, <산중속신곡(山中續新曲)>, <고금영(古琴詠)>,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등이 수록되어 있다. <산중신곡>, <산중속신곡> 등은 윤선도가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경상도 영덕에서 2년간의 유배를 마친 뒤, 고향인 전라도 해남의 금쇄동(金鎖洞)에 은거할 당시 지은 작품이다. 그 뒤 병자호란 당시 발견했던 보길도(甫吉島)의 부용동(芙蓉洞)에 들어가 낙서재(樂書齋)를 짓고 은거하였다. 그 때에 지은 것이 만년의 절창 <어부사시사>이다. 정치적으로 불우했던 윤선도는 벼슬길에서 벗어나 짐짓 어부의 생활을 했고, 그 결과로 남겨진 많은 작품이 '고산유고'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조선 사대부층의 자연관을 이해하는 데는 빼놓을 수 없는 자료이다. 조선의 강호문학은 이현보(李賢輔)와 송순(宋純)에 의해 정립되었고, 윤선도에 이르러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다.[1]

관련항목

중심 관계어 정의 대상
고산유고 isCreatedBy 윤선도
산중신곡 isIncludedIn 고산유고
고금영 isIncludedIn 고산유고
어부사시사 isIncludedIn 고산유고
금쇄동 isRelatedTo 고산유고
낙서재 isRelatedTo 고산유고
고산유고 isRelatedTo 강호문학
고산유고 isRelatedTo 가사

시간정보

중심 시간정보명 시간값
고산유고 창작연대 조선후기
고산유고 간행연도 1796년
고산유고 간행연도 정조20년

공간정보

중심 연결정보 공간정보이름 경도 위도
고산유고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37.39197 127.054387
고산유고 창작공간 금쇄동
고산유고 창작공간 낙서재

참고문헌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2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