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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의==
통문관은 고려시대 역어교육(譯語敎育)과 통역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던 관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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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문관은 고서매매 겸 출판업을 주 업무로 하는 출판업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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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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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및 주요업무===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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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는 이겸로(李謙魯)이다. 당시 일본인이 경영하던 서점을 인수하여 금항당(金港堂)이라는 서점을 차려 참고서와 교과서를 취급하면서 차차 국학관계 고문헌과 인연을 맺었다. 1943년관훈동 147번지의 현위치로 이전하였고, 광복이 되면서 통문관으로 바뀌었으며, 일본인이 소장하였던 우리 고문헌이 쏟아져나와 각종 문헌거래가 활발하여지면서 고문헌의 매매뿐만 아니라 출판도 시작하였다. 처녀출판으로 1946년 3월 이윤재(李允宰)의 『성웅 이순신』, 곧이어 김천택(金天澤)의 『청구영언』을 발간하였다. 6·25사변을 거치면서 흩어져가던 고서더미 속에서 귀중한 문헌을 많이 찾아냈다. 1950∼1960년대를 지나면서 통문관은 명실공히 국학 제분야를 연구하는 이들의 필수서점이자 사랑방 구실도 하였다.<ref>김영복,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9321 통문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통문관은 고려시대 역어교육(譯語敎育)과 통역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던 관청이다. 1276년(충렬왕 2) 참문학사(參文學事) 김구(金坵)의 건의로, 당시 통역관인 설인(舌人)이 대부분 미천한 신분으로 지식이 풍부하지 못하고 또 통역할 때 사리(私利)를 도모하는 등의 폐단이 있어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ref>박천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9320 통문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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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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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발간한 대표적인 책은 1950년대에 초간본 [[분류두공부시언해 | 『두시언해(杜詩諺解)』]], 김민수(金敏洙)의 『주해훈민정음(注解訓民正音)』, 1958년 [[동국정운 | 『동국정운(東國正韻)』]], 1960년대에 유창돈(劉昌惇)의 『국어변천사(國語變遷史)』·[[월인천강지곡 |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원본 재현), 1970년대에 이병주(李丙疇)의 『두시언해비주(杜詩諺解批注)』, 1980년대에 이동향(李東鄕)의 『가헌신기질사연구(稼軒辛棄疾詞硏究)』 등이 있다.<ref>김영복,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9321 통문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설립목적===
 
이에 앞서 역어교육을 담당한 최초의 관서로서『삼국사기』궁예열전에 ‘사대(史臺)’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통문관의 설치동기가 설인들의 폐단 때문이라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통문관설치 이전에는 설인들을 관리하는 국가적 차원의 공식기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몽고와의 강화로 사신내왕이 빈번하여지자 통역사무를 전담하는 기구인 통문관을 설치하여 비서성(秘書省)·사관(史館)·한림원(翰林院)·보문각(寶文閣)·어서원(御書院)·동문원(同文院) 등 금내학관(禁內學官)의 6품 이하직에 있는 40세 미만자를 선발하여 한어(漢語 : 몽고어)를 습득하게 함으로써 통역사무의 질적 향상을 꾀하게 되었다.<ref>박천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9320 통문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한계===
 
그러나 실제 역관으로 현달한 조인규(趙仁規)를 비롯하여 원나라 있는 고려인이나 내주자(來住者)들이 역인으로서 대부분의 통역실무를 맡았으므로 통문관을 통한 역관교육의 실효성은 의심스럽다. 그리하여 고려말에 이르면 통문관을 대신하여 전문기관으로 사역원(司譯院)을 두어서 역어를 관장하게 하였다. 조선시대에까지 존속되었던 사역원은 몽고어·한어를 비롯한 여진어(女眞語 : 淸學)·왜학(倭學) 등 여러 외국어의 통역과 번역 실무를 맡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방면에서 들어오는 과학·기술의 수용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ref>박천식,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9320 통문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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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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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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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을 거리
 
전가람, 「고려 후기 金坵의 文翰外交와 通文館 설치」, 『대동한문학』  vol.48, 대동한문학회
 
 
 
[[분류: 한글고문서]]
 
[[분류: 기관]]
 

2017년 10월 7일 (토) 22:25 판

'7b{ 단체정보 |사진= |사진출처= |대표명칭=통문관 |한자표기=通文館 |영문명칭= |이칭= |유형=단체/서점 |창립자=이겸로(李謙魯) |창립시대=현대 |창립일=1934년 |변경일= |해체일= |주요업무= |담당업무= |관련기관= |관련단체= |소재지=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147 |웹사이트=www.tongmunkwan.co.kr }}

정의

통문관은 고서매매 겸 출판업을 주 업무로 하는 출판업체이다.

내용

설립 및 주요업무

대표는 이겸로(李謙魯)이다. 당시 일본인이 경영하던 서점을 인수하여 금항당(金港堂)이라는 서점을 차려 참고서와 교과서를 취급하면서 차차 국학관계 고문헌과 인연을 맺었다. 1943년관훈동 147번지의 현위치로 이전하였고, 광복이 되면서 통문관으로 바뀌었으며, 일본인이 소장하였던 우리 고문헌이 쏟아져나와 각종 문헌거래가 활발하여지면서 고문헌의 매매뿐만 아니라 출판도 시작하였다. 처녀출판으로 1946년 3월 이윤재(李允宰)의 『성웅 이순신』, 곧이어 김천택(金天澤)의 『청구영언』을 발간하였다. 6·25사변을 거치면서 흩어져가던 고서더미 속에서 귀중한 문헌을 많이 찾아냈다. 1950∼1960년대를 지나면서 통문관은 명실공히 국학 제분야를 연구하는 이들의 필수서점이자 사랑방 구실도 하였다.[1]

출판작

이곳에서 발간한 대표적인 책은 1950년대에 초간본 『두시언해(杜詩諺解)』, 김민수(金敏洙)의 『주해훈민정음(注解訓民正音)』, 1958년 『동국정운(東國正韻)』, 1960년대에 유창돈(劉昌惇)의 『국어변천사(國語變遷史)』·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원본 재현), 1970년대에 이병주(李丙疇)의 『두시언해비주(杜詩諺解批注)』, 1980년대에 이동향(李東鄕)의 『가헌신기질사연구(稼軒辛棄疾詞硏究)』 등이 있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통문관 이겸로 A는 B에 의해 설립되었다 A ekc:founder B
동국정운 통문관 A는 B에 의해 영인되었다 A dcterms:publisher B
월인천강지곡 통문관 A는 B에 의해 영인되었다 A dcterms:publisher B

시간정보

시간 내용

주석

  1. 김영복, "통문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김영복, "통문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분루 :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