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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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5일 (토) 12:27 판

틀:문화유산 유물정보

정의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진전사지(陳田寺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내용

탑은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은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날아갈 듯한 옷을 입은 천인상(天人像)이 있으며, 위층 기단에는 구름위에 앉아 무기를 들고 있는 웅건한 모습의 8부신중(八部神衆)이 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1층 몸돌에는 각기 다양한 모습의 불상 조각들이 있다.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려져 있어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3층 지붕돌 꼭대기에는 받침돌만 남아있을 뿐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 지붕돌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이 경쾌한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 가운데 하나이다. 기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과 1층 몸돌의 세련된 불상 조각은 진전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1]

1966년 2월 28일 국보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5m이다. 진전사의 옛터에 서 있는 삼층 석탑으로 통일신라 8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8세기 말경으로 추정된다. 도의(道義)가 당나라로 유학갔다가 821년(헌덕왕 13) 귀국하여 오랫동안 은거하던 곳이다. 터 주변에서 '진전(陳田)'이라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 탑은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천의 자락을 흩날리는 비천상(飛天像)이 사방으로 각각 둘씩 모두 여덟이 양각되었고, 위층 기단에는 구름 위에 앉아 무기를 들고 있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이 사방에 둘씩 양각되었다. 1층 탑신에는 사방불(四方佛) 각 면마다 양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가 살짝 올라가 경쾌하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3층 상륜부(相輪部)에는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지고 노반(露盤)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전성기의 정교함과 기품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화려하거나 장식적이지 않고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 지붕돌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이 경쾌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기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과 탑신의 세련된 불상 조각은 진전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불국사 삼층석탑의 장중함이 이 탑에서는 아담함으로 바뀌었으며, 불국사 삼층석탑이 중대 신라 중앙 귀족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이 탑은 지방 호족의 새로운 문화 능력을 과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2]

진전사터의 법당자리 앞에 서 있는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있는데, 기단으로부터 탑신에 이르기까지 많은 새김장식이 베풀어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아랫기단은 높직한 댓돌 위로 바닥, 벽, 덮개를 형성하는 석재를 각 부위마다 여러 장의 돌로 맞추고 있는데 벽면에는 귀기둥과 각 면 하나씩의 사잇기둥이 새겨지고, 덮개돌에는 약간의 경사를 두면서 둥글고 각이 진 2단의 괴임턱을 돋우었다. 윗기단은 각 면에 귀기둥과 사잇기둥 하나씩을 새겼고, 덮개돌에는 밑에 안턱이 있고 위에는 각이 진 2단의 괴임턱이 돋아 있다. 그런데 이 탑의 상하 기단에는 각 면을 사잇기둥으로 이등분하여 아래층에는 연꽃대좌 위에 광배를 갖추고 띠자락을 휘날리며 앉아 있는 비천상을 새겨 넣고, 위층의 벽면에는 팔부중상을 배치하였는데 조각기법이 매우 정교하고 유려하며 생기가 있다. 탑신부는 각 층의 몸체와 지붕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네 벽에는 귀기둥이 새겨지고 처마 밑에는 5단의 층단받침이 나 있으며, 지붕 위에는 각이 진 2단의 괴임턱을 돋우고 있다. 특히 1층탑신의 네 벽에는 각 면에 하나씩 앉은 부처를 유려하게 새기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없어졌다. 이 탑은 경주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잡았던 진전사의 위상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유물로 신라 변방의 탑으로서는 상당한 조형감각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아울러 9세기에 들어 탑의 표면장식이 활성화 되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3]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양양 진전사지 A는 B에 있다

시각자료

영상

주석

  1.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2.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두산백과』online.
  3. 한국불교미술대전, "진전사지삼층석탑",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한국사전연구사.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