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격진천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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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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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유적정보
|대표명칭= 비격진천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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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족기록화 유물 비격진천뢰 01.jpg
|DB유형 = 민족기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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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Directory_Image.jsp?VdkVgwKey=12,08600000,11&imgfname=1614118.jpg&dirname=treasure&photoname=%EB%B9%84%EA%B2%A9%EC%A7%84%EC%B2%9C%EB%A2%B0(%E9%A3%9B%E6%93%8A%E9%9C%87%E5%A4%A9%E9%9B%B7)&photoid=1614118#pr2 비격진천뢰]", 문화재검색,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재정보』<sup>online</sup></online></html>, 문화재청.
|한글표기 = 비격진천뢰
+
|대표명칭=비격진천뢰
|한자표기 = 飛擊震天雷
+
|한자표기=飛擊震天雷
|시대 = 조선
+
|영문명칭=
|분야 = 과학기술/무기 
+
|이칭=진천뢰, 비진천뢰
|제작시기 = 16세기 중반~17세기 전반
+
|유형=무기
|제작자 = 이장손
+
|시대=조선
|image = 비격진천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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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보물 제8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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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1986년 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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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국립고궁박물관]]
 +
|경도=126.974905
 +
|위도=37.576795
 +
|수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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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인물=[[이장손]]]
 +
|관련단체=
 +
|관련장소=
 +
|관련물품=
 +
|관련유물유적=
 
}}
 
}}
  
==개요==
+
=='''정의'''==
조선 선조 때 화포장 이장손이 발명한 폭탄으로 하늘을 진동시키는 소리를 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조선 중기에 사용되었던 화기(火器).<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45447 비격진천뢰]", <html><online style="color:purple">『doopedia』<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ref>
비진천뢰, 진천뢰로 불리기도 하며 폭발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일종의 시한폭탄으로 조선 중기에 사용되었다.
 
<ref>[http://hcs.cha.go.kr/html/HtmlPage.do?pg=/n_hcs/library/library0301.jsp&mn=HCS_03_03_01&num=0204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비격진천뢰']</ref>
 
  
지름 21㎝, 둘레 68㎝로 도화선을 감는 목곡(木谷), 목곡이 들어가는 죽통(竹筒), 얇은 철 조각, 뚜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내용'''==
표면은 무쇠로 둥근 박과 같고 내부는 화약과 얇은 철 조각들로 장전하게 되어 있으며, 화포의 일종인 완구(碗口)를 이용하여 발사된다.  
+
===이장손이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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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시]](軍器寺) 화포장(火砲匠)이었던 [[이장손]](李長孫)이 만든 [[대완구]](大碗口)라는 중화기로 쏜 포탄으로, [[임진왜란]] 때 공성화기(攻城火器)로서 위력을 발휘하였다. 위 아래는 둥글고, 허리는 퍼진 모양이며, 위 한가운데는 뚜껑인 개철을 덮을 수 있도록 방형으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신관(信管)과 같은 발화장치인 죽통을 넣을 수 있도록 구경 5.5cm 정도의 구멍이 있다. 허리 부분에는 화약을 넣기 위하여 지름 2.5㎝의 구멍을 내었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45447 비격진천뢰]", <html><online style="color:purple">『doopedia』<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ref><br/>
  
모양은 박과 같이 둥글고 죽통을 넣는 네모난 구멍(부리)과 화약을 넣는 허리 구멍이 있으며,무게는 20근, 뚜껑의 무게는 4냥, 사정거리는 300보(420m)이나 포열이 없는 완구로만 쏠 있었기 때문에 정확도가 낮았다.
+
===일종의 시한폭탄===
주요 부품으로 약선(도화선)을 감는 목곡(木谷), 목곡이 들어가는 죽통(竹筒) 그리고 부리를 막는 손잡이가 달린 뚜껑이 있다.목곡은 폭파 시간을 조절하는 장치로서 나사 모양으로 골을 파는데 감겨져 있는 도화선인 약선의 숫자에 따라 폭발 시간이 좌우며, 그 재료는 박달나무를 사용한다.
+
비격진천뢰의 가장 큰 특징은 폭발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있는 일종의 시한폭탄이라는 점이다. 즉 대나무 통 속에는 도화선인 약선을 감는 나선형의 목곡(木谷)이 들어가는데, 빨리 폭발시키려면 10곡(), 늦게 폭발시키려면 15곡으로 약선을 감아서 넣었다. 대나무 통의 도화선 끝은 덮개의 구멍을 통하여 밖으로 빼내어 발사할 때 불을 붙였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9&cp_code=cp0208&index_id=cp02081203&content_id=cp020812030001&search_left_menu=3 비격진천뢰]",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콘텐츠닷컴』<sup>online</sup></online></html>, 한국콘텐츠진흥원.</ref><br/>
사용 순서는 포탄 안에 철 조각을 넣고 목곡을 넣은 죽통을 넣은 후에 뚜껑을 덮고 주위를 종이로 밀봉한다. 화약은 허리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하여 채워 넣고 격목으로 구멍을 막은 후 완구로 발사한다.
+
발사할 때는 대나무 통을 넣고, 속에 화약과 사람과 말을 살상시키기 위한 예리한 삼각철편을 채운 다음, 종이를 가지고 메워 틈이 없도록 한 뒤에 뚜껑인 개철로 입구를 단단히 막았다. 허리 부분에 있는 구멍을 통하여 화약을 가득 채운 다음 격목으로 구멍을 막고 [[대완구]]나 [[중완구]]로 발사한다. 420m(300보) 정도 날아가 땅에 떨어진 뒤 도화선이 타들어가 폭발하게 되고 함께 넣은 철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사람이나 말을 다치게 하였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9&cp_code=cp0208&index_id=cp02081203&content_id=cp020812030001&search_left_menu=3 비격진천뢰]",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콘텐츠닷컴』<sup>online</sup></online></html>, 한국콘텐츠진흥원.</ref>
발사된 비격진천뢰는 죽통에 연결된 약선이 타 들어가 구멍을 통하여 화염과 마름쇠가 방사된다.
 
  
1592년 9월 경주성 탈환 때 경주 부윤 박의장이 사용하여그 위력을 발휘했으며 수군에서는 1593년 2월 웅천수륙합공작전 때 “언덕 위의 진지에 진천뢰를 쏘았는데,터지고 부서지고 죽고 상하여 시체를 끌고 쩔쩔매며 달아나는 적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는 이순신의 장계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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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전투에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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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선조 25) 왜병에게 쫓겨 경상북도 안강(安康)으로 진을 옮긴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 [[박진]](朴晋)이 경주싸움 때 경주 판관(判官) [[박의장]](朴毅長)을 선봉으로 하여 비격진천뢰를 써서 많은 성과를 올렸으며, 수군의 함포(艦砲)에도 이를 이용하여 많은 적의 함선을 부수었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45447 비격진천뢰]", <html><online style="color:purple">『doopedia』<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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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민족기록화와의 연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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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강대운]]이 그린 민족기록화의 배경이 된 '[[진주성싸움]]'에서 사용된 조선중기에 개발된 화약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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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 및 관계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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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격진천뢰]] || [[이장손]] ||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 A dcterms:creator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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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격진천뢰]]||~에서 사용되었다||[[진주성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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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격진천뢰]] || [[대완구]]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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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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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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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heritage.tv/www/jsp/heritage/vod/oldView.jsp?bbIdx=558&lang=ko 조선의 비밀병기, 비격진천뢰]",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유산채널』<sup>online</sup></online></html>, 한국문화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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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ame width="600" height="400" src="http://www.k-heritage.tv/www/jsp/heritage/vod/oldView.jsp?bbIdx=558&lang=ko"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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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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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references/>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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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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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및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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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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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칠,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5079 비격진천뢰]",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8600000,11 비격진천뢰]", 문화재검색,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재정보』<sup>online</sup></online></html>, 문화재청.
 +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45447 비격진천뢰]", <html><online style="color:purple">『doopedia』<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
 +
#*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9&cp_code=cp0208&index_id=cp02081203&content_id=cp020812030001&search_left_menu=3 비격진천뢰]",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콘텐츠닷컴』<sup>online</sup></online></html>, 한국콘텐츠진흥원.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232511&cid=51293&categoryId=51293 비격진천뢰]", <html><online style="color:purple">『e뮤지엄』<sup>online</sup></online></html>, 네이버 지식백과.
  
 
[[분류:민족기록화]][[분류:문화유산]]
 
[[분류:민족기록화]][[분류:문화유산]]
[[분류:민족기록화 문화유산]]
 

2017년 10월 2일 (월) 17:38 판

비격진천뢰
(飛擊震天雷)
"비격진천뢰", 문화재검색, 『문화재정보』online, 문화재청.
대표명칭 비격진천뢰
한자표기 飛擊震天雷
이칭 진천뢰, 비진천뢰
유형 무기
시대 조선
지정번호 보물 제860호
지정일 1986년 3월 14일
소장처 국립고궁박물관
관련인물 이장손]



정의

조선 중기에 사용되었던 화기(火器).[1]

내용

이장손이 발명

군기시(軍器寺) 화포장(火砲匠)이었던 이장손(李長孫)이 만든 대완구(大碗口)라는 중화기로 쏜 포탄으로, 임진왜란 때 공성화기(攻城火器)로서 위력을 발휘하였다. 위 아래는 둥글고, 허리는 퍼진 모양이며, 위 한가운데는 뚜껑인 개철을 덮을 수 있도록 방형으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신관(信管)과 같은 발화장치인 죽통을 넣을 수 있도록 구경 5.5cm 정도의 구멍이 있다. 허리 부분에는 화약을 넣기 위하여 지름 2.5㎝의 구멍을 내었다.[2]

일종의 시한폭탄

비격진천뢰의 가장 큰 특징은 폭발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일종의 시한폭탄이라는 점이다. 즉 대나무 통 속에는 도화선인 약선을 감는 나선형의 목곡(木谷)이 들어가는데, 빨리 폭발시키려면 10곡(曲), 늦게 폭발시키려면 15곡으로 약선을 감아서 넣었다. 대나무 통의 도화선 끝은 덮개의 구멍을 통하여 밖으로 빼내어 발사할 때 불을 붙였다.[3]
발사할 때는 대나무 통을 넣고, 속에 화약과 사람과 말을 살상시키기 위한 예리한 삼각철편을 채운 다음, 종이를 가지고 메워 틈이 없도록 한 뒤에 뚜껑인 개철로 입구를 단단히 막았다. 허리 부분에 있는 구멍을 통하여 화약을 가득 채운 다음 격목으로 구멍을 막고 대완구중완구로 발사한다. 420m(300보) 정도 날아가 땅에 떨어진 뒤 도화선이 타들어가 폭발하게 되고 함께 넣은 철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사람이나 말을 다치게 하였다.[4]

여러 전투에 사용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선조 25) 왜병에게 쫓겨 경상북도 안강(安康)으로 진을 옮긴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 박진(朴晋)이 경주싸움 때 경주 판관(判官) 박의장(朴毅長)을 선봉으로 하여 비격진천뢰를 써서 많은 성과를 올렸으며, 수군의 함포(艦砲)에도 이를 이용하여 많은 적의 함선을 부수었다.[5]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비격진천뢰 이장손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A dcterms:creator B
비격진천뢰 진주전투 A는 B에 사용되었다 A ekc:isUsedIn B
비격진천뢰 행주대첩 A는 B에 사용되었다 A ekc:isUsedIn B
비격진천뢰 대완구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시각자료

영상

주석

  1. "비격진천뢰", 『doopedia』online, 두산백과.
  2. "비격진천뢰", 『doopedia』online, 두산백과.
  3. "비격진천뢰",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문화콘텐츠닷컴』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
  4. "비격진천뢰",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문화콘텐츠닷컴』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
  5. "비격진천뢰", 『doopedia』online, 두산백과.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웹 자원
    • 이강칠, "비격진천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비격진천뢰", 문화재검색, 『문화재정보』online, 문화재청.
    • "비격진천뢰", 『doopedia』online, 두산백과.
    • "비격진천뢰",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문화콘텐츠닷컴』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
    • 비격진천뢰", 『e뮤지엄』online,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