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적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기타)
29번째 줄: 29번째 줄:
  
 
===기타===
 
===기타===
조선 초 태종 3년(1403) 10월과 문종 즉위년(1451)8월, 세조 2년(1456)4월, 성종 8년(1477) 2월과 12년(1481) 5월에는 주취칠적관(珠翠七翟冠)을 받았음이 확인된다.
+
조선시대에는 태종 3년(1403)에 처음으로 왕비의 관복 일습이 사여되면서 주취칠적관(珠翠七翟冠)을 받았고 이를 시작으로 세종, 연산, 인종대를 제외하고 인조 3년(1625)까지 사여되었다.
대한제국시기에 고종이 황제국을 선포하면서 『대한예전』에는 중국 황후의 관모 제도와 같은 구룡사봉관(九龍四鳳冠)을 착용하도록 새로 제정하였으나 시행 되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
대한제국시기에 고종이 황제국을 선포하면서 『대한예전』에는 중국 황후의 관모 제도와 같은 구룡사봉관(九龍四鳳冠)을 착용하도록 새로 제정하였으나 시행 되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지식 관계망==
 
==지식 관계망==

2017년 6월 11일 (일) 10:31 판


적관(翟冠)
()
[[file:|360px|thumb|center|대한예전에 그려진 적관. 장서각.]]
대표명칭 적관(翟冠)
이칭별칭 -
착용신분 왕비
착용성별 여성



정의

조선시대 왕비가 대례복인 적의를 입을 때 갖추어 쓴 예장용 관이다.[1]

내용

복식구성

착용신분

왕비가 착용하였다.

착용상황

국가의 큰 제례를 올리거나 혼례를 올릴 때 또는 책봉을 받을 때 착용하였다. [2] 등 착용.

형태

조선초기에 사여받은 주취칠적관(珠翠七翟冠)은 꿩이나 용, 봉황 등이 신분에 따라 숫자를 달리하여 장식되어 있다. 대한제국시기의 구룡사봉관(九龍四鳳冠) [3]

기타

조선시대에는 태종 3년(1403)에 처음으로 왕비의 관복 일습이 사여되면서 주취칠적관(珠翠七翟冠)을 받았고 이를 시작으로 세종, 연산, 인종대를 제외하고 인조 3년(1625)까지 사여되었다. 대한제국시기에 고종이 황제국을 선포하면서 『대한예전』에는 중국 황후의 관모 제도와 같은 구룡사봉관(九龍四鳳冠)을 착용하도록 새로 제정하였으나 시행 되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적관 왕비 A는 B를 착용하였다
적관 왕세자빈 A는 B를 착용하였다
적관 왕세손빈 A는 B를 착용하였다
적관 홍장삼 A는 B에 착용한다
적관 의궤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14쪽.
  2.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100쪽.
  3.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614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더 읽을거리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