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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기, "북녘화가 100인, 그 잃어버린 얼굴을 찾아서", 『 Art』, 2000년, 07. | ***김복기, "북녘화가 100인, 그 잃어버린 얼굴을 찾아서", 『 Art』, 2000년, 07. | ||
2016년 12월 28일 (수) 09:21 판
목차
개요
김태는 한국의 대표적인 월남 화가이자, 서양화가이다.
그의 작품은 19세기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인 폴 세잔에 의해 이루어진 회화적 태도가 드러난다는 평을 받는다.
폴 세잔은 "자연은 표면보다 내부의 깊이에 있다"고 말하고 정확한 묘사를 위해 사과를 썩을 때까지 그렸다는 일화가 있다. 이처럼 세잔은 인상파의 사실주의를 추진시켜 단순한 시각적ㆍ현상적 사실에서 다시 근본적인 물체의 파악, 즉 자연의 형태가 숨기고 있는 내적 생명을 묘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1]
화가 김태도 실향의 아픔을 딛고 자연을 형성하고 있는 사물의 구조나 조직을 근원적으로 탐구하여 거친 색감으로 표현하여 부드러움과 우아함을 보여준다.
1931 함남에서 출생하여 평양미술학교에 진학하였다. 함경도 홍원군 삼호면이 고향인 그는 평양미술대학 2학년 때 6·25가 발발하자 1·4 후퇴 때 단신 월남했다. 돛단배에 몸을 싣고 풍랑을 만나 천신만고 끝에 속초에 도착, 부산과 거제도 수용소 생활을 거치고, 전쟁 중에 다시 서울대 미술대학에 입학했다. 평양미술학교를 다녔던 김태는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입학시험을 치르고 신입생이 되어야 했다. 1951년 9월에 치렀던 학과시험은 국어, 영어, 수학이었으며 실기시험은 데생과 수채화였다. 조은정,「6.25전쟁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조형 아카이브』, 제2호, 2010, 284쪽.
195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3, 4, 5, 7회 국전에 입선하였고, 10여회의 개인전과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전 초대출품, 한국수채화작가회전 회원출품등을 하였다.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피난생활의 호구지책으로 미군부대 옆에서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고 영화 간판을 그리던 시절도 있었다.
선생은 정년 퇴직 후 아예 작업실을 속초로 옮겼다. 삶과 예술의 만년을 고향 하늘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는데, 1백명으로 제한한다니, 경쟁은 치열하지만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지. 내가 70이니 어머니와 친척 어른들이야 다 돌아가셨을 테고, 그래도 누이동생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
오전에는 실기 등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군사훈련을 하는 전시 학교에서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물감은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던 수채화 도구로 그리고 유화물감은 비쌌지만 일본에서 들어온 국제시장에 들어온 유화그림 도구 등이 약간 있을 정도였다. 학생들 거개는 물감을 만들어 썼다. 예를 들어 징크화이트는 약국에서 파는 아연화분말을 개서 화이트로 사용하는 식이었다. 도안과 학생들은 포스터칼라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72 김태는 미군부대 주변에 있었으므로 일본여행 다녀온 미군에게 부탁해서 사용하기도 하였고 시중에는 미군 PX용품으로 주문한 물감들이 유통되고 있었다. 김태는 UNESCO에서 지원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교육용으로 유화물감, 박스, 캔버스를 나누어 주었는데 물감은 영국의 윈저앤뉴턴(Winsor & Newton)사의 것으로 모두 미국에서 온 것이었다고 전한다.
1952년 12월 15일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제4회 미술전이 개최되었다. 서대신동 부산대학 강당에서 개최된 전람회는 전쟁 중에도 학생들의 의기를 모아 작품을 생산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73 김태는 북에서 남으로 피난올 때 흥남부두의 풍경이 너무도 생생하여 그것을 그렸고 또 송도 가교사에서 내려다 본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두 점을 출품하였다.(그림18, 19)
조은정,「6.25전쟁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조형 아카이브』, 제2호, 2010, 288-289쪽.
생애
- 1931년 3월 13일 함남에서 출생
- 1949년 평양미술대학에 진학
- 1950년 평양미술대학 2학년 때 단신 월남
- 1950-1951년 부산 및 거제도 수용소 생활
- 195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입학
- 195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학력
- 1955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 1957 서울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졸업. ('57년 석사학위)
경력
- 한국미술협회 회원
- 한국신미술협회 회원
- 한국수채화작가회전 회원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교수(1996년 8월)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명예교수
- 한국카톨릭미술협회 회원
작품세계
김태는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완전히 자기의 구상적인 본질을 지키면서 자기 예술에 정진하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말하자면 그가 바라다보는 자연이나 작품의 대상은 그들 자연이나 대상이 이루고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 그 분위기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구조 그 자체인 것이다.
화가 김태는 구상적인 표현을 빌리면서 가장 현대적인 조형을 시도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의 경향은 붓의 움직임을 수평으로 자리잡고 그곳에다 힘찬 텃치로서 화면에 묵직한 마띠에르를 형성하고 있다.
마치 바위의 피부나 같은 거친 힘의 상태가 그곳에는 있다. 그와 같은 조야(粗野)한 미감은 조화잡힌 색감에 의해서 세련된 화면으로 된다. 그리하여 힘의 상태와 아름다움의 경지가 하나의 화면 위에서 실현되기도 한다.
민족기록화와 작가
전시
- 1954년-1958년, 제3,4,5,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입선, 경복궁미술관
- 1961년-1971년, 제1-10회 앙가쥬망동인전, 국립도서관전시실
- 1963년, 한국미술협회창립기념전
- 1967년, 민족기록화전
- 1970년, 서울미술대학 미술관개관기념전, 서울미술대학교 가설미술관
- 1973년, 한국현역작가100인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4년, 제10회 아시아현대미술전, 동경 우에노모리화랑
- 1974년 12월 12일-12월 18일, 개인전, 양지화랑
- 1975년, 김형구&김태 2인전, 신세계화랑
- 1976년, 서양화100인전 문화화랑
- 1976년, 개관기념전, 명동화랑
- 1977년, 한국현대미술대전; 서양화, 국립현대미술관
- 1977년 11월 23일-30일, 개인전, 문화화랑
- 1977년, 개인전, 대구 이목화랑
- 1977년, 카톨릭미술전, 신세계미술관
- 1978년, 강원&오승우&김태 3인전, 광주 현대화랑
- 1978년, 서양화중견작가, 신세계미술관
- 1978년-1981년, 한국카톨릭미술협회전, 미술회관
- 1979년, 한국미술 "오늘의 방법" 전, 미술회관
- 1979년, 개인전, 광주 현대화랑
- 1979년, 세종미술초대전, 세종대왕기념사업회관
- 1979년, 한국수채화9인전, 샘터화랑
- 1979년, 유화가33인담채화전, 신세계미술관
- 1980년, 개인전, 대구 이목화랑
- 1980년-1981년, 제1-2회 한국현대미술대전, 미술회관등
- 1981년, 한국미술 '81 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1년, 서양화가의 눈으로 본 한국의 자연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2년 5월 11일-16일, 개인전, 신세계미술관
- 1982년-1985년, '82-'85 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4년-1996년, 한국수채화작가회전, 미술회관
- 1985년 5월 22일-29일, 개인전, 예화랑
- 1985년, 현대미술40년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6년-1991년, '86-'91 서울미술대전, 서울시립미술관
- 1986년, 한국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7년-1990년, '87, '90 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8년, 한국현대미술전, 국립현대미술관
- 1990년, 한국일보기획 "백두산으로 가는길" 전, 롯데미술관
- 1990년, 한국미술-오늘의상황전, 예술의전당
- 1991년 5월 1일-5월 11일, 개인전, 선화랑
- 1992년, '92 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93년, 전관개관기념 현대미술전, 예술의전당
- 1994년, '94 서울미술대전, 서울시립미술관
- 1994년, 서울국제현대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 1994년, 서울풍경의 변천전, 예술의전당
- 1994년, 서울미술 신춘서양화초대전, 서울갤러리
- 1995년, 가고싶다.보고싶다.그곳에展-DMZ특별전, 선화랑
- 1996년, 대한민국원로작가초대전, 서울시립미술관
- 1996년 9월 18일-10월 4일, 개인전 1952-1972, 서울대학교박물관 현대미술전시실
- 1997년 4월 16일-4월 30일, 개인전, 모란갤러리
- 2000년 2월 29일, 한국미술99전-인간.자연.사물, 국립현대미술관
수상
주요작품
- 민족기록화
김태-동령부 오라산성의 공함 75년作
김태-육진개척 75년作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76년作
김태-김정호의 대동여지도 79년作
- 민족기록화 외 작품
노드 및 관계
노드 | 관계 | 클래스 | 노드 | 설명 |
---|---|---|---|---|
김태 | creates | 민족기록화 | 김태-김정호의 대동여지도 | 김태-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김태의 작품이다. |
관련 항목
참고문헌
- 월간미술 "김태"
- [1]
- [2]
- [3] - 작품평론
- [4]
- [5]
- [6]
- [7]
- 조은정,「6.25전쟁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조형 아카이브』, 제2호, 2010, 261-295쪽.
웹 사이트
온라인 사전
"세잔", 네이버 인명 사전에서 발췌, 2016년 12월 26일 검색
- 원천자료: 사전
- "세잔", 인명사전, 인명사전편찬위원회, 2002. 1. 10., 민중서관
개인 웹사이트
블로그
- "(김복기@칼럼) 분단의 미술사, 분단의 화가", 김복기의 Art 25시 네이버 블로그, 2016년 12월 26일 확인
- 원천자료: 잡지 - 월간 잡지
- 김복기, "북녘화가 100인, 그 잃어버린 얼굴을 찾아서", 『 Art』, 2000년, 07.
- 원천자료: 잡지 - 월간 잡지
[8] 나무 위키 참고!
각주
- ↑ "자연은 표면보다...두었다"-"세잔", 네이버 인명 사전에서 발췌, 2016년 12월 26일 검색
추가자료
- 정명목 서용선 진행, 「작가와의 대담」, 『김태, 1952–1972』,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