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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의==
1897년 12월 1일, [[김학신]]이 [[박시순]]에게 올린 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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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12월 1일, [[김학신]]이 [[박시순]]에게 올린 고목이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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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1897년 12월 1일에 [[김학신|김학신(金學信)]][[박시순|박시순(朴始淳)]]에게 올린 고목(告目)이다. 김학신은 먼저 박시순에게 문안을 아뢰고 안부를 물었으며, 본인의 소식을 전하였다. 이어서 박시순이 부탁한 물종 중에서 가격이 비싼 책력(冊曆)과 물건이 없는 인주(印朱)는 구입하지 못한 사실을 아뢰었다. 그리고 김학신은 현재 가지고 있는 물건이 있고 길이 험하여 아직 출발 일정을 정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문서의 말미에는 김학신이 구입한 물종의 수량과 가격이 기재되어 있는데, 양봉(洋鋒) 30봉(封)이 3냥이고, 금자장지(金字長只)와 갑사장지(甲紗長只) 1차(次)가 각각 7전(錢)과 6전이며, 진분(眞粉) 2각이 2전 8푼이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124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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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신|김학신(金學信)]]은 먼저 [[박시순|박시순(朴始淳)]]에게 문안을 아뢰고 안부를 물었으며, 본인의 소식을 전하였다. 이어서 박시순이 부탁한 물종 중에서 가격이 비싼 책력(冊曆)과 물건이 없는 인주(印朱)는 구입하지 못한 사실을 아뢰었다. 그리고 김학신은 현재 가지고 있는 물건이 있고 길이 험하여 아직 출발 일정을 정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문서의 말미에는 김학신이 구입한 물종의 수량과 가격이 기재되어 있는데, 양봉(洋鋒) 30봉(封)이 3냥이고, 금자장지(金字長只)와 갑사장지(甲紗長只) 1차(次)가 각각 7전(錢)과 6전이며, 진분(眞粉) 2각이 2전 8푼이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124쪽.</REF>
  
 
===「김학신 고목」의 의의===
 
===「김학신 고목」의 의의===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며 화폐유통이 활발해짐에 따라 상거래에서 물물교환 대신 화폐교환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증가한다. 다만 화폐는 공적인 세금 납부에 주로 사용되었고 사적으로는 여전히 물물교환이 이뤄뤄 했는데 이 자료에서 살펴보면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며 시장에서의 화폐경제가 거의 정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여기에서 언급된 품목들을 통해 당시 물가와 상품가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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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며 화폐유통이 활발해짐에 따라 상거래에서 물물교환 대신 화폐교환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증가한다. 다만 화폐는 공적인 세금 납부에 주로 사용되었고 사적으로는 여전히 물물교환을 하고 있었다. 이 자료에서 살펴보면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며 시장에서의 화폐경제가 거의 정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여기에서 언급된 품목들을 통해 당시 물가와 상품가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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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9일 (토) 20:19 기준 최신판

김학신 고목
한글팀 김학신 고목.jpg
영문명칭 A report from Kim Hakshin to Park Sisun
작자 김학신
작성시기 1897년
간행시기 개항기
기탁처 함양박씨 구당종택
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유형 고문서
크기(세로×가로) 25×32㎝
판본 필사본
수량 1章
표기문자 한글, 한자


정의

1897년 12월 1일, 김학신박시순에게 올린 고목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김학신(金學信)은 먼저 박시순(朴始淳)에게 문안을 아뢰고 안부를 물었으며, 본인의 소식을 전하였다. 이어서 박시순이 부탁한 물종 중에서 가격이 비싼 책력(冊曆)과 물건이 없는 인주(印朱)는 구입하지 못한 사실을 아뢰었다. 그리고 김학신은 현재 가지고 있는 물건이 있고 길이 험하여 아직 출발 일정을 정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문서의 말미에는 김학신이 구입한 물종의 수량과 가격이 기재되어 있는데, 양봉(洋鋒) 30봉(封)이 3냥이고, 금자장지(金字長只)와 갑사장지(甲紗長只) 1차(次)가 각각 7전(錢)과 6전이며, 진분(眞粉) 2각이 2전 8푼이다.[1]

「김학신 고목」의 의의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며 화폐유통이 활발해짐에 따라 상거래에서 물물교환 대신 화폐교환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증가한다. 다만 화폐는 공적인 세금 납부에 주로 사용되었고 사적으로는 여전히 물물교환을 하고 있었다. 이 자료에서 살펴보면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며 시장에서의 화폐경제가 거의 정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여기에서 언급된 품목들을 통해 당시 물가와 상품가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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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신 고목 (해독)


지식 관계망

  • 고목류 한글고문서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김학신 고목 김학신 A는 B에 의해 제작되었다 A dcterms:creator B
김학신 고목 박시순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김학신 박시순 A는 B와 교유하였다 A foaf:knows B
함양박씨 박시순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A foaf:member B
함양박씨 구당종택 함양박씨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시간정보

시간 내용
1897년 김학신김학신 고목을 작성하여 박시순에게 보냈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39197 127.054387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김학신 고목이 소장되어 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1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