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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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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축년 7월 10일에 [[니사원]]·[[최쳔손]]·[[박몽치]] 등이 해산물 등을 상납上納하면서 [[해남윤씨]] 댁에 올린 고목告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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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축년 7월 10일에 [[니사원]]·[[최쳔손]]·[[박몽치]] 등이 해산물 등을 상납하면서 [[해남윤씨]] 댁에 올린 고목(告目)이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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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계축년 7월 10일에 [[니사원]]·[[최쳔손]]·[[박몽치]] 등이 해산물 등을 상납上納하면서 [[해남윤씨]] 댁에 올린 고목告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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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사원·최쳔손·박몽치 등은 먼저 상전인 서방님의 안부를 물었으며, 올해도 역시 섬이나 육지나 모두 생계의 상황이 어렵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어서 미역(감곽,甘藿)은 정해진 수량과 작년에 상납하지 못한 2접을 상납하며, 소각 5속束, 어유(魚油) 1말 2되 5홉과 작년에 미납(未納)한 1되, 전복 1접 5곶과 작년에 미납한 1곶을 모두 상납한다고 하였다. 문서의 말미에는 미납하여 추후에 상납한 사어유(沙魚油:상어기름)·미역·전복 등이 기재되어 있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122쪽.</REF>
니사원·최쳔손·박몽치 등은 먼저 상전인 서방님의 안부를 물었으며, 올해도 역시 섬이나 육지나 모두 생계의 상황이 어렵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어서 미역[甘藿]은 정해진 수량과 작년에 상납하지 못한 2접을 상납하며, 소각 5속束, 어유魚油 1말 2되 5홉과 작년에 미납未納한 1되, 전복 1접 5곶과 작년에 미납한 1곶을 모두 상납한다고 하였다. 문서의 말미에는 미납하여 추후에 상납한 사어유沙魚油·미역·전복·문희포聞喜逋 등이 기재되어 있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122쪽.</REF>
 
  
===해남윤씨의 도서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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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윤씨의 도서 지역 경영===
[[해남윤씨]]가는 서남해 지역의 여러 섬에 도장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도서진출은 맹골도까지 포함하는 상당히 넓은 지역을 아우르고 있다. 사대부가에서 도서 지역까지 경영을 확대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이곳에서 나는 미역을 비롯한 각종 해산물 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먼 섬에까지 경영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그만큼 섬으로부터 산출되는 경제적 이득이 컸기 때문이었다. 해남윤씨가는 도서 지역 경영 과정에서 미역, 어유, 전복과 같은 해채류에 대해 특산물의 형태로 상납을 받아 왔으며, 특히 미역은 곽전(藿田:바닷가에 미역을 따는 곳)이 매매의 대상이 될 만큼 큰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하여 섬 경영의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맹골도는 미역의 생산지로 해남윤씨 가의 주요한 관리 지역이었다. 이러한 이익 때문에 서남해 도서지역은 세가 사대부 등이 궁방, 아문과 함께 어전, 염분, 섬 등의 점유자로 자주 등장하였다. 양반가에서 어장이니 염분이니 하는 것을 사점하는 형태는 많은 제약을 받았지만 국가의 지배력이 미치기 어려운 점 등에 대해서는 사유지의 형태로 지배하고 있었다. <ref>정윤섭, 「조선후기 海南尹氏家의 海堰田개발과 島嶼·沿海 經營」, 목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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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윤씨]]가는 서남해 지역의 여러 섬에 도장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도서진출은 맹골도까지 포함하는 상당히 넓은 지역을 아우르고 있다. 사대부가에서 도서 지역까지 경영을 확대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이곳에서 나는 각종 해산물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먼 섬에까지 경영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그만큼 섬으로부터 산출되는 경제적 이득이 컸기 때문이다. 해남윤씨가는 도서 지역 경영 과정에서 미역, 어유, 전복과 같은 해채류에 대해 특산물의 형태로 상납을 받아 왔으며, 특히 미역은 곽전(藿田:바닷가에 미역을 따는 곳)이 매매의 대상이 될 만큼 큰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하여 섬 경영의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맹골도는 미역의 생산지로 해남윤씨 가의 중요한 관리 지역이었다. 이러한 이익 때문에 서남해 도서지역은 세가 사대부 등이 궁방, 아문과 함께 어전, 염분, 섬 등의 점유자로 자주 등장하였다. 양반가에서 어장이니 염분이니 하는 것을 사적으로 점유하는 형태는 많은 제약을 받았지만 국가의 지배력이 미치기 어려운 점 등 때문에 사유지의 형태로 지배하고 있었다. <ref>정윤섭, 「조선후기 海南尹氏家의 海堰田개발과 島嶼·沿海 經營」, 목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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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을 올린 상황===
 
===고목을 올린 상황===
해남윤씨가는 18세기경까지 다도해의 보길도, 노아도, 소안도, 평일도 등의 땅에서 해로를 통해 도지(賭地:곡식이나 돈 따위를 대가로 주고 땅을 빌림, 혹은 땅을 빌려주고 받는 대가)를 받아왔다. 특산물은 주로 자가소비용으로 사용되었지만 동족의 양반들에게 선물 명목으로 나누어 주기도 하였으며 남은 것은 상품용으로 판매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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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윤씨가는 18세기경까지 다도해의 보길도, 노아도, 소안도, 평일도 등의 땅에서 해로를 통해 도지(賭地:곡식이나 돈 따위를 대가로 주고 땅을 빌림, 혹은 땅을 빌려주고 받는 대가)를 받아왔다. 특산물은 주로 자가소비용으로 사용되었지만 동족의 양반들에게 선물 명목으로 나누어 주기도 하였으며 남은 것은 상품용으로 판매하기도 하였다.  
이 자료는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계축년이 어느 해인지도 분명하지 않고 니사원,최쳔손,박몽치 등은 ‘島民’이라고만 칭하였으므로 구체적으로 어디에 사는 어떤 신분의 사람들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고목에는 상납물종과 수량이 나와 있는데 “미역(甘藿)은 정해진 수량대로 상납하며, 작년도 미납 條 2접(貼), 소각 5속(束), 魚油 1말 2되 5홉, 同작년도 미납 조 1되, 전복 1접 5곶(串), 同작년도 미납 조 1곶 등도 모두 상납한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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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섬에서 해마다 납부하는 물품은 보리,미역,건어,전복,어유 등이다. 이 중 미역과 보리의 수학량이 유독 많은데 해남 윤씨가가 경영하고 있는 도서지역 중 미역의 주 생산지는 [[맹골도]]이므로 고목을 작성한 사람들의 출신지를 추측할 수 있다. <ref>정윤섭, 「조선후기 海南尹氏家의 海堰田개발과 島嶼·沿海 經營」, 목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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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계축년이 어느 해인지도 분명하지 않고 이성원,최쳔손,박몽치 등은 ‘섬주민(島民)’이라고만 칭하였으므로 구체적으로 어디에 사는 어떤 신분의 사람들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보고 항목에는 상납물품의 종류와 수량이 나와 있는데 “미역(甘藿)은 정해진 수량대로 상납하며, 작년도 미납했던 미역 2접(貼), 자른 미역 5속(束), 어유(魚油) 1말 2되 5홉과 작년에 미납된 1되, 전복 1접 5곶(串)과 작년에 미납되었던 1곶 등도 모두 상납한다.”고 되어있다. 이와 같이 섬에서 해마다 납부하는 물품은 보리, 미역, 건어, 전복, 어유 등이다. 이 중 미역과 보리의 수확량이 유독 많은데 해남윤씨가가 경영하고 있는 도서지역 중 미역의 주 생산지가 맹골도이므로 보고 목록을 작성한 사람들의 출신지를 짐작할 수 있다.<ref>정윤섭, 「조선후기 海南尹氏家의 海堰田개발과 島嶼·沿海 經營」, 목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ref>
 
<!--또한 맹골도는 1905년 4월부터 조세 거부를 시작해 납부가 잠시 중단되었다가 해남윤씨가에서 여러 차례 관아 청원서를 올려 해결하고자 하여 2년만에 다시 조세를 거뒀다. 조세를 거두지 못한 기간동안 미납된 물품도 함께 납부하도록 했는데 본문에 미납된 미역에 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시기는 맹골도 조세 거부 운동이 있었던 1905년 후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맹골도는 1905년 4월부터 조세 거부를 시작해 납부가 잠시 중단되었다가 해남윤씨가에서 여러 차례 관아 청원서를 올려 해결하고자 하여 2년만에 다시 조세를 거뒀다. 조세를 거두지 못한 기간동안 미납된 물품도 함께 납부하도록 했는데 본문에 미납된 미역에 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시기는 맹골도 조세 거부 운동이 있었던 1905년 후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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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읽을 거리===
 
===더 읽을 거리===
 
*단행본
 
*단행본
**『古文書集成3,海南尹氏編正書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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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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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古文書集成3,海南尹氏編正書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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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논문
**한국고문서학회·호남사학회·전남대학교 사학과 21세기 리더형 역사학교육사업단, 「고문서를 통해 본 도서지역의 사회와 문화」, 한국고문서학회·호남사학회·전남대학교 사학과 21세기 리더형 역사학교육사업단,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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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문서학회·호남사학회·전남대학교 사학과 21세기 리더형 역사학교육사업단, 「고문서를 통해 본 도서지역의 사회와 문화」, 한국고문서학회·호남사학회·전남대학교 사학과 21세기 리더형 역사학교육사업단, 2007.
  
 
[[분류:한글고문서]]
 
[[분류:한글고문서]]
[[분류:전시자료]] [[분류: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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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전시자료]] [[분류:문헌]]
[[분류:장원석]] [[분류:김선미]] [[분류:서동신]]
 

2017년 12월 9일 (토) 19:15 기준 최신판

이사원 등 고목
한글팀 이사원등 고목.jpg
영문명칭 A report by Ni Sawon, Choi Cheonson and Bak Mongchi to the Yun family of Haenam as they were offering seafood
작자 니사원, 최쳔손, 박몽치 등
작성시기 미상(계축년)
간행시기 미상
소장처 해남윤씨 녹우당
유형 고문서
크기(세로×가로) 32.8×38.1㎝
판본 필사
수량 1章
표기문자 한글, 한자


정의

계축년 7월 10일에 니사원·최쳔손·박몽치 등이 해산물 등을 상납하면서 해남윤씨 댁에 올린 고목(告目)이다.

내용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니사원·최쳔손·박몽치 등은 먼저 상전인 서방님의 안부를 물었으며, 올해도 역시 섬이나 육지나 모두 생계의 상황이 어렵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어서 미역(감곽,甘藿)은 정해진 수량과 작년에 상납하지 못한 2접을 상납하며, 소각 5속束, 어유(魚油) 1말 2되 5홉과 작년에 미납(未納)한 1되, 전복 1접 5곶과 작년에 미납한 1곶을 모두 상납한다고 하였다. 문서의 말미에는 미납하여 추후에 상납한 사어유(沙魚油:상어기름)·미역·전복 등이 기재되어 있다.[1]

해남윤씨의 도서 지역 경영

해남윤씨가는 서남해 지역의 여러 섬에 도장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도서진출은 맹골도까지 포함하는 상당히 넓은 지역을 아우르고 있다. 사대부가에서 도서 지역까지 경영을 확대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이곳에서 나는 각종 해산물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먼 섬에까지 경영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그만큼 섬으로부터 산출되는 경제적 이득이 컸기 때문이다. 해남윤씨가는 도서 지역 경영 과정에서 미역, 어유, 전복과 같은 해채류에 대해 특산물의 형태로 상납을 받아 왔으며, 특히 미역은 곽전(藿田:바닷가에 미역을 따는 곳)이 매매의 대상이 될 만큼 큰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하여 섬 경영의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맹골도는 미역의 생산지로 해남윤씨 가의 중요한 관리 지역이었다. 이러한 이익 때문에 서남해 도서지역은 세가 사대부 등이 궁방, 아문과 함께 어전, 염분, 섬 등의 점유자로 자주 등장하였다. 양반가에서 어장이니 염분이니 하는 것을 사적으로 점유하는 형태는 많은 제약을 받았지만 국가의 지배력이 미치기 어려운 점 등 때문에 사유지의 형태로 지배하고 있었다. [2]

고목을 올린 상황

해남 윤씨가는 18세기경까지 다도해의 보길도, 노아도, 소안도, 평일도 등의 땅에서 해로를 통해 도지(賭地:곡식이나 돈 따위를 대가로 주고 땅을 빌림, 혹은 땅을 빌려주고 받는 대가)를 받아왔다. 특산물은 주로 자가소비용으로 사용되었지만 동족의 양반들에게 선물 명목으로 나누어 주기도 하였으며 남은 것은 상품용으로 판매하기도 하였다.

이 자료는 그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계축년이 어느 해인지도 분명하지 않고 이성원,최쳔손,박몽치 등은 ‘섬주민(島民)’이라고만 칭하였으므로 구체적으로 어디에 사는 어떤 신분의 사람들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보고 항목에는 상납물품의 종류와 수량이 나와 있는데 “미역(甘藿)은 정해진 수량대로 상납하며, 작년도 미납했던 미역 2접(貼), 자른 미역 5속(束), 어유(魚油) 1말 2되 5홉과 작년에 미납된 1되, 전복 1접 5곶(串)과 작년에 미납되었던 1곶 등도 모두 상납한다.”고 되어있다. 이와 같이 섬에서 해마다 납부하는 물품은 보리, 미역, 건어, 전복, 어유 등이다. 이 중 미역과 보리의 수확량이 유독 많은데 해남윤씨가가 경영하고 있는 도서지역 중 미역의 주 생산지가 맹골도이므로 이 보고 목록을 작성한 사람들의 출신지를 짐작할 수 있다.[3]


연계 자원 보러 가기
이사원 등 고목 (해독)


지식 관계망

  • 고목류 한글고문서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니사원 이사원 등 고목 A는 B에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최쳔손 이사원 등 고목 A는 B에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박뭉치 이사원 등 고목 A는 B에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해남윤씨 이사원 등 고목 A는 B에 언급되었다 A ekc:isMentionedIn B
니사원 최쳔손 A는 B와 교유하였다 A foaf:knows B
니사원 박몽치 A는 B와 교유하였다 A foaf:knows B
최쳔손 박몽치 A는 B와 교유하였다 A foaf:knows B
해남윤씨 니사원 A는 B와 소작 관계에 있다 A edm:isRelatedTo B
해남윤씨 최쳔손 A는 B와 소작 관계에 있다 A edm:isRelatedTo B
해남윤씨 박몽치 A는 B와 소작 관계에 있다 A edm:isRelatedTo B
이사원 등 고목 해남윤씨 녹우당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시간정보

시간 내용
계축년 니사원, 박몽치, 최쳔손 등이 이사원 등 고목을 작성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4.549811 126.619720 해남윤씨 녹우당이사원 등 고목이 소장되어 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 122쪽.
  2. 정윤섭, 「조선후기 海南尹氏家의 海堰田개발과 島嶼·沿海 經營」, 목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3. 정윤섭, 「조선후기 海南尹氏家의 海堰田개발과 島嶼·沿海 經營」, 목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단행본
    • 정구복, 『고문서와 양반사회』, 일조각, 2002.
    • 『古文書集成3,海南尹氏編正書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 논문
    • 한국고문서학회·호남사학회·전남대학교 사학과 21세기 리더형 역사학교육사업단, 「고문서를 통해 본 도서지역의 사회와 문화」, 한국고문서학회·호남사학회·전남대학교 사학과 21세기 리더형 역사학교육사업단,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