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초상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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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신인 [[김석주|김석주(재위 1634∼1684)]]의 모습을 그린 [[공신도상|공신도상(功臣圖像)]].
 
조선시대 문신인 [[김석주|김석주(재위 1634∼1684)]]의 모습을 그린 [[공신도상|공신도상(功臣圖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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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주 공신도상>은 사후에 제작된 보사공신화상(保社功臣畫像)이다. [[청풍 김씨]] 김육가문에서 소장해오다 [[실학박물관]]에 기증하였다.<br/>  
 
<김석주 공신도상>은 사후에 제작된 보사공신화상(保社功臣畫像)이다. [[청풍 김씨]] 김육가문에서 소장해오다 [[실학박물관]]에 기증하였다.<br/>  
 
작가는 현재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림에 반영된 청대의 초상화풍, 독특한 표현기법 등을 근거로 청의 화가인 [[초병정]]이 그린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시되기도 했다.<br/>   
 
작가는 현재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림에 반영된 청대의 초상화풍, 독특한 표현기법 등을 근거로 청의 화가인 [[초병정]]이 그린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시되기도 했다.<br/>   
근래에 연구에서는 『[[복훈도감의궤|복훈도감의궤(復勳都監儀軌)]]』의 기록에 ‘[[조세걸]]과 [[송창엽]]이 원훈공신의 화상元勳畫像을 출초했다.’는 기록과 <김석주 공신화상>의 양식 분석 및 [[조세걸]]의 다른 초상화와의 비교를 통해 <김석주 공신화상>을 [[조세걸]]과 [[송창엽]]이 그린 것으로 비정하기도 하였다.<ref>신민규, 「保社功臣畫像 硏究」, 『제3회 미술사학대회 발표자료집』, 한국미술사학회, 2017, 125~127쪽.</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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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연구에서는 『[[복훈도감의궤|복훈도감의궤(復勳都監儀軌)]]』의 기록에 ‘[[조세걸]]과 [[송창엽]]이 원훈공신의 화상(元勳畫像)을 출초했다.’는 기록과 <김석주 공신화상>의 양식 분석 및 [[조세걸]]의 다른 초상화와의 비교를 통해 <김석주 공신화상>을 [[조세걸]]과 [[송창엽]]이 그린 것으로 비정하기도 하였다.<ref>신민규, 「保社功臣畫像 硏究」, 『제3회 미술사학대회 발표자료집』, 한국미술사학회, 2017, 125~127쪽.</ref><br/>  
상의 형식 면에서 <김석주 공신도상>에는 17세기 전반 공신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특징들이 나타나 있다. 그 중 중요한 것은 정면관, 호피 깔린 의자가 도입되었다는 것과 바닥의 채전이 사라진 점이다. 이러한 신경향은 중국 초상화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ref>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499쪽.</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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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 형식 면에서 <김석주 공신도상>에는 17세기 전반 공신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특징들이 나타나 있다. 그 중 중요한 것은 [[정면관]], 호피 깔린 의자가 도입되었다는 것과 바닥의 채전이 사라진 점이다. 이러한 신경향은 중국 초상화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ref>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499쪽.</ref><br/>  
 
<김석주 공신도상> 공신의 사후에 화상이 제작된 희귀한 예로 공신화상의 새로운 형식과 중국 초상화풍의 영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김석주 공신도상> 공신의 사후에 화상이 제작된 희귀한 예로 공신화상의 새로운 형식과 중국 초상화풍의 영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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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김석주]]는 스스로의 외모에 대해 아래와 같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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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는 볼록하고 넓으며, 눈썹은 풍성하고 치켜 올라가 있다. 입은 크고 도톰하며, 눈 또한 작거나 가늘지 않다. 額本凸闊. 眉本濃䜿. 口本廣厚. 眸子亦不至細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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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는 볼록하고 넓으며, 눈썹은 풍성하고 치켜 올라가 있다. 입은 크고 도톰하며, 눈 또한 작거나 가늘지 않다.<br/>額本凸闊. 眉本濃䜿. 口本廣厚. 眸子亦不至細小
 
|출처=金錫胄, 「[[연경화사 초병정에게 주는 편지|與燕京畫史焦秉貞書」]], 『息庵先生遺稿』 卷之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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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얼굴에 아름다운 눈썹을 지녔으며 풍채가 밝게 빛났다. 키는 보통 사람보다 크지 않았지만 도량은 침착하고 굳세었다. 公豐顔秀眉. 神彩燁然. 長不踰中人. 而器量沉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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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宋相琦, 「[[우의정 청성부원군 문충김공 신도비명|右議政淸城府院君文忠金公神道碑銘]]」, 『玉吾齋集』 第十四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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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도상에 묘사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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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주 공신도상>은 정면관에 [[오사모]]를 쓰고 [[흉배|단학흉배]]가 달린 녹색의 [[운보문 단령|단령]]을 입고 공수자세를 취한 채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공신상 가운데서 처음으로 정면상을 취하고 있는 작품이다. 의자에 깔린 호피는 17세기 전반과는 다른 새로운 양식의 도입을 말해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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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주]]의 얼굴표현은 선묘가 주가 되었고 음영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검고 어두운 얼굴에 넓적하면서 각진 얼굴, 넓은 이마, 짧은 주먹코, 두툼한 입술이 보이며 특히 짙은 눈썹은 극적으로 위로 치켜 올라가 그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이는 기록에 전하는 김석주의 외모 특징에 잘 부합하는 표현이다.
 
[[김석주]]의 얼굴표현은 선묘가 주가 되었고 음영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검고 어두운 얼굴에 넓적하면서 각진 얼굴, 넓은 이마, 짧은 주먹코, 두툼한 입술이 보이며 특히 짙은 눈썹은 극적으로 위로 치켜 올라가 그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이는 기록에 전하는 김석주의 외모 특징에 잘 부합하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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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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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산, 「朝鮮 中期 『錄勳都監儀軌』와 功臣畵像에 관한 硏究」, 『미술사학연구』제266호, 한국미술사학회, 2010.
 
#* 권혁산, 「朝鮮 中期 『錄勳都監儀軌』와 功臣畵像에 관한 硏究」, 『미술사학연구』제266호, 한국미술사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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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역사인물초상화]][[분류:초상화]][[분류:문헌]][[분류:문화유산]]

2017년 11월 24일 (금) 02:30 기준 최신판


김석주 공신도상
스마트K, "조선시대 사행기록화-옛 그림속에 담긴 그들의 여정", 한국미술 도서리뷰, 『스마트K』online, 한국미술정보개발원, 작성일: 2017년 11월 23일.
한자명칭 金錫胄 功臣圖像
작가 미상
제작시기 17세기
소장처 실학박물관
유형 공신도상
크기(세로×가로) 176.5×103.0㎝


정의

조선시대 문신인 김석주(재위 1634∼1684)의 모습을 그린 공신도상(功臣圖像).

내용

공신도상의 제작 및 보관

<김석주 공신도상>은 사후에 제작된 보사공신화상(保社功臣畫像)이다. 청풍 김씨 김육가문에서 소장해오다 실학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작가는 현재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림에 반영된 청대의 초상화풍, 독특한 표현기법 등을 근거로 청의 화가인 초병정이 그린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시되기도 했다.
근래에 연구에서는 『복훈도감의궤(復勳都監儀軌)』의 기록에 ‘조세걸송창엽이 원훈공신의 화상(元勳畫像)을 출초했다.’는 기록과 <김석주 공신화상>의 양식 분석 및 조세걸의 다른 초상화와의 비교를 통해 <김석주 공신화상>을 조세걸송창엽이 그린 것으로 비정하기도 하였다.[1]
상의 형식 면에서 <김석주 공신도상>에는 17세기 전반 공신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특징들이 나타나 있다. 그 중 중요한 것은 정면관, 호피 깔린 의자가 도입되었다는 것과 바닥의 채전이 사라진 점이다. 이러한 신경향은 중국 초상화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2]
<김석주 공신도상> 공신의 사후에 화상이 제작된 희귀한 예로 공신화상의 새로운 형식과 중국 초상화풍의 영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문헌에 기록된 외모

그림에 보이듯이 김석주는 매우 특이하고 강렬한 인상을 지녔는데 그 외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남아있다.
먼저 김석주는 스스로의 외모에 대해 아래와 같이 평가했다.

Quote-left.png 이마는 볼록하고 넓으며, 눈썹은 풍성하고 치켜 올라가 있다. 입은 크고 도톰하며, 눈 또한 작거나 가늘지 않다.
額本凸闊. 眉本濃䜿. 口本廣厚. 眸子亦不至細小
Quote-right.png
출처: 金錫胄, 「與燕京畫史焦秉貞書」, 『息庵先生遺稿』 卷之八


송상기김석주의 신도비명에 아래와 같이 기록하였다.

Quote-left.png 두툼한 얼굴에 아름다운 눈썹을 지녔으며 풍채가 밝게 빛났다. 키는 보통 사람보다 크지 않았지만 도량은 침착하고 굳세었다.
公豐顔秀眉. 神彩燁然. 長不踰中人. 而器量沉毅.
Quote-right.png
출처: 宋相琦, 「右議政淸城府院君文忠金公神道碑銘」, 『玉吾齋集』 第十四卷


모두 그의 눈썹에 특징이 있는 것을 묘사했으며 이는 그림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공신도상에 묘사된 모습

<김석주 공신도상>은 정면관오사모를 쓰고 단학흉배가 달린 녹색의 운보문 단령을 입고 공수자세를 취한 채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공신상 가운데서 처음으로 정면상을 취하고 있는 작품이다. 의자에 깔린 호피는 17세기 전반과는 다른 새로운 양식의 도입을 말해준다.
김석주의 얼굴표현은 선묘가 주가 되었고 음영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검고 어두운 얼굴에 넓적하면서 각진 얼굴, 넓은 이마, 짧은 주먹코, 두툼한 입술이 보이며 특히 짙은 눈썹은 극적으로 위로 치켜 올라가 그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이는 기록에 전하는 김석주의 외모 특징에 잘 부합하는 표현이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김석주 공신도상 공신도상 A는 B에 해당한다 A dcterms:type B
김석주 공신도상 김석주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김석주 공신도상 실학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김석주 공신도상 보사공신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연경화사 초병정에게 주는 편지 김석주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김석주 연경화사 초병정에게 주는 편지 A는 B를 썼다 A dcterms:creator B
김석주 공신도상 초병정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우의정 청성부원군 문충김공 신도비명 김석주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송상기 우의정 청성부원군 문충김공 신도비명 A는 B를 썼다 A dcterms:creator B
정면관 김석주 공신도상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오사모 김석주 공신도상 A는 B에 나타난다 A ekc:depicts B
단학흉배 김석주 공신도상 A는 B에 나타난다 A ekc:depicts B
운보문 단령 김석주 공신도상 A는 B에 나타난다 A ekc:depicts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5160470 127.3006060 김석주 공신도상실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신민규, 「保社功臣畫像 硏究」, 『제3회 미술사학대회 발표자료집』, 한국미술사학회, 2017, 125~127쪽.
  2.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499쪽.
  3. 스마트K, "조선시대 사행기록화-옛 그림속에 담긴 그들의 여정", 한국미술 도서리뷰, 『스마트K』online, 한국미술정보개발원, 작성일: 2017년 11월 23일.

참고문헌

유용한 정보

  1. 웹 자원

더 읽을거리

  1. 전시도록
    • 실학박물관. 『청풍김씨 김육가문 기증자료 보고서』, 실학박물관, 2014.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의 공신』, 장서각, 2012.
  2. 단행본
    • 국립문화재연구소, 『다시 보는 우리 초상의 세계 : 조선시대 초상화 학술논문집』,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 실학박물관. 『청풍김씨 김육가문 기증자료 보고서』, 실학박물관, 2014.
  3. 논문
    • 권혁산, 「朝鮮 中期 『錄勳都監儀軌』와 功臣畵像에 관한 硏究」, 『미술사학연구』제266호, 한국미술사학회,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