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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의'''==
수위를 조정해주기 위해 [[인천항]]에 설치된 [[갑문식 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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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위를 조정하기 위해 [[인천항]]에 설치된 [[갑문식 도크]]를 말한다.
  
 
=='''내용'''==
 
=='''내용'''==
[[인천항 도크]]는 [[인천항 제1도크]]와 [[인천항 제2도크]]로 이루어졌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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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간만의 차가 심한 항만에서 선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수위를 조정하는 장치가 필요하게 되는데, 이를 위한 구조물을 갑문<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25272docId=1056757&cid=40942&categoryId=32191 갑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 온라인 서비스』<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ref><br/>이라고 하는데, [[인천항 도크]]는 [[인천항 제1도크]]와 [[인천항 제2도크]]로 이루어졌다.<br/>
조석간만의 차가 심한 항만에서 선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수위를 조정하는 장치가 필요하게 되는데, 이를 위한 구조물을 갑문이라 한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25272docId=1056757&cid=40942&categoryId=32191 갑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 온라인 서비스』<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 최종확인: 2017년 04월 18일.</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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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 제1도크===
 
===인천항 제1도크===
[[인천항]]은 조석간만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갑문식 도크]]를 설치하였는데, [[인천항 제1도크]]는 일제시대인 191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18년 10월에 완성되었다. 동양에서 보기 드문 [[갑문식 도크]]로, 4,500톤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게 되었고, 연간 하역 능력이 130만톤에 달하게 되었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7102 인천항]",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4년 03월 19일.</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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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 제1도크]]는 일제시대인 191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18년 10월에 완성되었다. 동양에서 보기 드문 [[갑문식 도크]]로, 4,500톤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게 되었고, 연간 하역 능력이 130만톤에 달하게 되었다.<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7102 인천항]",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4년 03월 19일.</ref>  
  
 
===인천항 제2도크===
 
===인천항 제2도크===
그 뒤 일본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8,000톤급 선박을 대상으로 하는 [[인천항 제2도크]] 건설을 1935년에 착공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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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일본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1935년에 8,000톤급 선박을 대상으로 하는 [[인천항 제2도크]] 건설에 착공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광복에 뒤이어 일어난 [[한국전쟁]] 등으로 공사를 재개할 수 없었다. 이윽고 1966년 6월에 다시 건설에 착공하여 1974년 5월 10일 [[인천항 제2도크]]가 완공되었다. 이로써 대형 선박 25척이 부두까지 들어와 하역을 할 수 있게 됨 이로써 인천항에서 조수간만의 차에 구애받지 않고 대형 선박 출입 가능하게 되었다.<br/>
종전 후 1974년, [[인천항 제2도크]]가 완공되면서 대형 선박 25척이 부두까지 들어와 하역을 할 수 있게 됨 이로써 인천항에서 조수간만의 차에 구애받지 않고 대형 선박 출입 가능하게 되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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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인천항 도크#인천항 제2도크|인천항 제2도크]]에는 [[경부고속도로]] 서울-대전 구간 사용량만큼의 콘크리트가 투입되었다고 한다.<ref>정경숙, "[http://goodmorning.incheon.go.kr/board/54/1911979?curPage=&codeNm=2015/07&codeText=%EA%B9%8C%EC%B9%98%EB%B0%9C%EB%A1%9C%20%EB%B3%B8%20%EC%9D%B8%EC%B2%9C 멀어진 바다, 사라진 비린내]", 『굿모닝인천』, 2015년 07월 06일.</ref>  
실제로 [[인천항 도크#인천항 제2도크|인천항 제2도크]]에는 [[경부고속도로]] 서울-대전 간만큼의 콘크리트가 사용되었다고 한다.<ref>정경숙, "[http://goodmorning.incheon.go.kr/board/54/1911979?curPage=&codeNm=2015/07&codeText=%EA%B9%8C%EC%B9%98%EB%B0%9C%EB%A1%9C%20%EB%B3%B8%20%EC%9D%B8%EC%B2%9C 멀어진 바다, 사라진 비린내]", 『굿모닝인천』, 2015년 07월 06일.</ref>  
 
1966년 6월에 착공하여 1974년 5월 10일에 완공된 인천항 제2도크 공사 장면을
 
https://www.icpa.or.kr/content/view.do?menuKey=406&contentKey=63
 
  
http://cafe.naver.com/tourpostmark/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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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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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h.aks.ac.kr/Encyves/Graph/C102/C102.htm "인천항도크(정창섭)" 지식관계망]'''
  
http://incheonport.tistory.com/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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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11∼1918년 사이에는 동양에서 보기 드문 갑문식(閘門式) 제1선거가 건설되어 4,500톤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게 되었고, 연간 하역 능력이 130만톤에 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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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
 
 
그 뒤 일본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8,000톤급 선박을 대상으로 하는 제2선거 건설을 1935년에 착공하였으나 1943년까지 물막이 공사와 안벽 기초 공사 일부 등 약 30%의 공정만이 진척되었을 뿐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당시의 인천항은 외항과 내항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외항인 월미도 서측 해면에는 항로를 겸한 외항 묘박지(錨泊地) 29기가 있어 대부분의 대형 선박은 이곳에서 해상 이중 하역을 하고 있다. 내항은 제1잔교 전면 정박지로 가용 면적은 0.5㎢ 에 불과하며, 수심도 소형선이 정박할 정도였다.
 
 
 
종전 후 인천항은 1974년 갑문 선거가 완공되면서 그해 우리나라 최초의 컨테이너 부두인 ‘내항 4부두’가 개장하는 등 항세가 급속히 성장하였다.
 
 
 
2009년 현재 주요 항만 시설로 인천항 갑문은 최대 5만톤급 선박이 입출거할 수 있으며, 갑문식 도크로는 동양 최대규모이다. 선박이 인천항 선거내를 드나들 수 있는 통로는 5만톤급 선박이 통과할 수 있는 갑거와 1만톤급 선박이 통행할 수 있는 2기의 갑거로 구성되어 있다. 안벽은 1만 3,046m, 방파제 2,233m, 물양장 2,059m, 잔교 22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박접안능력은 89척에 달하며 10만톤급 2척, 8만톤급 3척, 6만톤급 2척, 5만톤급 22척, 1만∼5만톤급 33척, 1만톤급 미만이 27척이다.
 
 
 
현재 인천항이 4개의 항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각 항별로 선박접안능력과 연간하역능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북항은 17척이 접안할 수 있으며, 연간 하역능력은 1,483만톤이다. 내항은 여객선 4척을 포함하여 51척이 접안할 수 있으며, 연간 하역능력은 4,729만톤에 달한다. 남항은 22척이 접안할 수 있고 연간 하역능력은 2,183톤이다. 2020년까지 건설공사가 진행되는 인천신항은 30척이 접안할 수 있고, 연간 하역능력은 6,487톤이다.
 
 
 
전용 부두화 계획에 따라 제1.2.3.부두는 잡화·원목·철강·양곡부두, 제4부두는 컨테이너·양곡·자동차, 제5부두 자동차, 제6부두 잡화·기타, 제7부두 양곡, 제8부두 고철·산물(散物), 남항은 시멘트 조선부두로 전용 부두화하고, 양곡부두도 따로 두고 있다. 북항 및 인천신항을 개발하여 부두별로 이용 효율화를 강화하고, 중소규모의 화물에 대한 유통단지를 조성하고, 화물터미널 확보, 운송 수단의 대형화 및 전용화, 화물 정보시스템의 구축 등으로 항만과 내륙의 화물유통체제를 개선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천항 [仁川港]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7061&cid=46632&categoryId=4663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96180&cid=49209&categoryId=49209
 
 
 
 
 
 
 
2도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7061&cid=46632&categoryId=46632
 
 
 
=='''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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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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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및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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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 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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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25272docId=1056757&cid=40942&categoryId=32191 갑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 온라인 서비스』<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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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7102 인천항]",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4년 0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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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incheonport.tistory.com/1994 인천항 갑문에 대해 알아보자!]", useful/특파룡의 현장취재, <html><online style="color:purple">『인천항만공사 공식 블로그』<sup>online</sup></online></html>, 인천항만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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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민족기록화]][[분류:장소]]

2017년 12월 1일 (금) 01:13 기준 최신판

인천항 도크()
"인천항 갑문에 대해 알아보자!", useful/특파룡의 현장취재, 『인천항만공사 공식 블로그』online, 인천항만공사.
대표명칭 인천항 도크
주소 인천광역시 신포동 인천항
관련장소 인천항


정의

수위를 조정하기 위해 인천항에 설치된 갑문식 도크를 말한다.

내용

조석간만의 차가 심한 항만에서 선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수위를 조정하는 장치가 필요하게 되는데, 이를 위한 구조물을 갑문[1]
이라고 하는데, 인천항 도크인천항 제1도크인천항 제2도크로 이루어졌다.

인천항 제1도크

인천항 제1도크는 일제시대인 191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18년 10월에 완성되었다. 동양에서 보기 드문 갑문식 도크로, 4,500톤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게 되었고, 연간 하역 능력이 130만톤에 달하게 되었다.[2]

인천항 제2도크

그 뒤 일본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1935년에 8,000톤급 선박을 대상으로 하는 인천항 제2도크 건설에 착공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광복에 뒤이어 일어난 한국전쟁 등으로 공사를 재개할 수 없었다. 이윽고 1966년 6월에 다시 건설에 착공하여 1974년 5월 10일 인천항 제2도크가 완공되었다. 이로써 대형 선박 25척이 부두까지 들어와 하역을 할 수 있게 됨 이로써 인천항에서 조수간만의 차에 구애받지 않고 대형 선박 출입 가능하게 되었다.
실제로 인천항 제2도크에는 경부고속도로 서울-대전 구간 사용량만큼의 콘크리트가 투입되었다고 한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정창섭-인천항도크 인천항 도크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A ekc:depicts B
정창섭-인천항제2도크 인천항 제2도크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A ekc:depicts B
인천항 도크 인천항 A는 B에 위치한다 A edm:currentLocation B
인천항 도크 인천항 제2도크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인천항 도크 인천항 제1도크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인천항 도크 갑문식 도크 A의 유형은 B이다 A dcterms:type B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 [KTV 대한뉴스] 대한뉴스 제 983호-인천항 도크 준공(게시일: 2016년 12월 7일)

  • [KTV 대한뉴스] 대한뉴스 제 722호-우리는 건설한다(게시일: 2016년 11월 16일) - 41초~ : 인천항 2도크 축조 공사 모습

주석

  1. "갑문", 『두산백과 온라인 서비스』online, 두산백과.
  2. "인천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4년 03월 19일.
  3. 정경숙, "멀어진 바다, 사라진 비린내", 『굿모닝인천』, 2015년 07월 06일.
  4. "인천항 갑문에 대해 알아보자!", useful/특파룡의 현장취재, 『인천항만공사 공식 블로그』online, 인천항만공사.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기사
  2. 웹 자원
    • "갑문", 『두산백과 온라인 서비스』online, 두산백과.
    • "인천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4년 03월 19일.
    • "인천항 갑문에 대해 알아보자!", useful/특파룡의 현장취재, 『인천항만공사 공식 블로그』online, 인천항만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