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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 [[고려 충렬왕|충렬왕(忠烈王)]] | + | 고려 [[고려 충렬왕|충렬왕(忠烈王)]] 때 [[일연|일연(一然, 1206-1289)]]이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유사(遺事)를 모아 지은 역사서.<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59661 삼국유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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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일연|보각국사 일연(普覺國師 一然)]]이 편찬한 사서(史書)이며<ref>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92428&cid=41708&categoryId=41711 삼국유사]", 국어국문학자료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1281∼1283년([[고려 충렬왕|충렬왕]] 7∼9) 사이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ref>류은주, 『모발학 사전』, 광문각, 2003.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14530&cid=42407&categoryId=42407 삼국유사]", 모발학 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현존하는 판본들 중 고려시대 것은 없고 모두 후대인 조선시대에 판각된 것들이다.<ref>"[http://www.gunwi.go.kr/fun/samguk/page.htm?mnu_uid=1261 삼국유사 내용]", <html><online style="color:purple">『삼국유사의 고장 군위』<sup>online</sup></online></html>, 군위군청.</ref> | |
− |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일연|보각국사 일연(普覺國師 一然)]]이 편찬한 사서(史書)이며<ref>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92428&cid=41708&categoryId=41711 삼국유사]", 국어국문학자료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1281∼1283년([[고려 충렬왕|충렬왕]] 7∼9) 사이로 보는 것이 | ||
본서는 활자본이고,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ref>류은주, 『모발학 사전』, 광문각, 2003.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14530&cid=42407&categoryId=42407 삼국유사]", 모발학 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내용은 「왕력(王歷)」, 「기이(紀異)」,「흥법(興法)」,「탑상(塔像)」,「의해(義解)」,「신주(神呪)」,「감통(感通)」,「피은(避隱)」,「효선(孝善)」등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ref>"[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1,03060200,11 삼국유사(三國遺事)]", 문화재검색,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유산정보』<sup>online</sup></online></html>, 문화재청.</ref> | 본서는 활자본이고,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ref>류은주, 『모발학 사전』, 광문각, 2003.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14530&cid=42407&categoryId=42407 삼국유사]", 모발학 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내용은 「왕력(王歷)」, 「기이(紀異)」,「흥법(興法)」,「탑상(塔像)」,「의해(義解)」,「신주(神呪)」,「감통(感通)」,「피은(避隱)」,「효선(孝善)」등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ref>"[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1,03060200,11 삼국유사(三國遺事)]", 문화재검색,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유산정보』<sup>online</sup></online></html>, 문화재청.</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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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구성<ref>"[http://www.gunwi.go.kr/fun/samguk/page.htm?mnu_uid=1261 삼국유사 내용]", <html><online style="color:purple">『삼국유사의 고장 군위』<sup>online</sup></online></html>, 군위군청.</ref>=== | ===삼국유사 구성<ref>"[http://www.gunwi.go.kr/fun/samguk/page.htm?mnu_uid=1261 삼국유사 내용]", <html><online style="color:purple">『삼국유사의 고장 군위』<sup>online</sup></online></html>, 군위군청.</ref>=== | ||
− | :* 권제1 - 「기이(紀異)」 제1에는 고조선(古朝鮮) 이하 삼한(三韓), 부여(扶餘), 고구려, 백제와 통일 이전의 신라 등 역대 여러 나라에 관한 | + | :* 권제1 - 「기이(紀異)」 제1에는 고조선(古朝鮮) 이하 삼한(三韓), 부여(扶餘), 고구려, 백제와 통일 이전의 신라 등 역대 여러 나라에 관한 기록을 수록했다. 여기에는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고대사(古代史)부터 신라의 통일 전인 [[신라 태종무열왕|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대에 이르기까지의 요사(要史) 및 질문(秩文)을 왕조 중심으로 모은 36항목의 내용이 들어 있다. |
− | :* 권제2 - 편목이 따로 있지 않고 문무왕(文武王) 이후 즉 통일 이후의 신라와 백제, 후백제, 가락국기(駕洛國記)를 | + | :* 권제2 - 편목이 따로 있지 않고 문무왕(文武王) 이후 즉 통일 이후의 신라와 백제, 후백제, 가락국기(駕洛國記)를 기술했다. 권제1과 같은 방식으로 23항목이 들어 있다. |
− | :* 권제3 - 「흥법(興法)」 제3은 불교 | + | :* 권제3 - 「흥법(興法)」 제3은 불교 전래 역사를 신라 중심으로 서술한다.「탑상(塔像)」은 불교신앙의 대상인 석탑(石塔), 범종(梵鐘), 불상(佛像), 사찰(寺刹)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
− | :* 권제4 - 「의해(義解)」 제5로 신라의 학승(學僧) 및 율사(律師)의 전기(傳記)를 | + | :* 권제4 - 「의해(義解)」 제5로 신라의 학승(學僧) 및 율사(律師)의 전기(傳記)를 수록했다. |
− | :* 권제5 - 4개의 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신주(神呪)」 제6은 밀교(密敎) 신승(神僧)의 사적, 「감통(感通)」 제7은 감동을 주는 고전(古傳), 「피은(避隱)」 제8은 행적을 감추어버린 고승(高僧)들의 전기, 「효선(孝善)」 제9는 효행과 보은에 관한 미담을 | + | :* 권제5 - 4개의 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신주(神呪)」 제6은 밀교(密敎) 신승(神僧)의 사적, 「감통(感通)」 제7은 감동을 주는 고전(古傳), 「피은(避隱)」 제8은 행적을 감추어버린 고승(高僧)들의 전기, 「효선(孝善)」 제9는 효행과 보은에 관한 미담을 수록했다. |
− | 『삼국유사』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마찬가지로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의 | + | 『삼국유사』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마찬가지로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의 역사뿐 아니라 고조선과 기자, 위만조선을 비롯하여 가락 등의 사적, 신화·전설·시가(詩歌) 등을 풍부하게 수록했다.<ref>강래업,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5500851 삼국유사]",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그러나 『삼국유사』는 여러 자료의 내용을 다듬어서 쓴 『[[삼국사기]]』와는 달리 전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실은 것이 많다. 그래서 글이 세련되지 않고 때로는 허황되어 보이는 이야기도 나온다. 심지어 사실이나 자료들과 맞지 않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역사 자료로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비롯한 다른 역사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나 사건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ref>김한종,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책과함께어린이, 2015.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60228&cid=47306&categoryId=47306 삼국유사]",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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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히 『삼국유사』는 지금까지 보존된 책 중에서 가장 먼저 단군 신화와 고조선의 역사를 쓰고 있다. 단군 신화를 우리 민족의 건국 신화로, 고조선을 최초의 국가로 인정하는 데 『삼국유사』가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일연이 『삼국유사』에 단군 신화에 대해 쓴 것은 당시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으면서 잃어버린 민족의식과 자주성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ref>김한종,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책과함께어린이, 2015.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60228&cid=47306&categoryId=47306 삼국유사]",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이러한 그의 인식은 『삼국유사』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ref>김남윤, "[http://contents.koreanhistory.or.kr/id/N0137 일연(一然)]",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사 콘텐츠』<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 | ||
{{Blockquote|스스로 서술하여 말하기를 “대저 옛 성인(聖人)은 예악(禮樂)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仁義)로 가르침을 베푸는 데 있어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帝王)이 장차 일어날 때 부명(符命)에 응하거나 도록(圖籙)을 받아 반드시 범인(凡人)과 다름이 있은 연후에야 능히 큰 변화를 타고 대기(大器)를 잡고 대업(大業)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Blockquote|스스로 서술하여 말하기를 “대저 옛 성인(聖人)은 예악(禮樂)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仁義)로 가르침을 베푸는 데 있어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帝王)이 장차 일어날 때 부명(符命)에 응하거나 도록(圖籙)을 받아 반드시 범인(凡人)과 다름이 있은 연후에야 능히 큰 변화를 타고 대기(大器)를 잡고 대업(大業)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
···그런즉 삼국(三國)의 시조(始祖)가 모두 신이(神異)한 데서 나왔다는 것이 어찌 괴이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 기이(紀異)가 제편(諸篇)의 첫머리에 실린 것은 그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그런즉 삼국(三國)의 시조(始祖)가 모두 신이(神異)한 데서 나왔다는 것이 어찌 괴이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 기이(紀異)가 제편(諸篇)의 첫머리에 실린 것은 그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
|출처=『삼국유사』 권 제1, 제1기이, 「서왈」.<ref>"[http://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setId=-1&prevPage=0&prevLimit=&itemId=sy&types=r&synonym=off&chinessChar=on&levelId=sy_001r_0020_0010_0010&position=-1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한 데서 나오다]", 『삼국유사』 권 제1, 제1기이, 「서왈」,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사데이터베이스』<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 | |출처=『삼국유사』 권 제1, 제1기이, 「서왈」.<ref>"[http://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setId=-1&prevPage=0&prevLimit=&itemId=sy&types=r&synonym=off&chinessChar=on&levelId=sy_001r_0020_0010_0010&position=-1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한 데서 나오다]", 『삼국유사』 권 제1, 제1기이, 「서왈」,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사데이터베이스』<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 | ||
− | 본서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고대사적의 | + | 본서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고대사적의 쌍벽으로,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史官)에 의해 이루어진 정사(正史)<ref>정확한 사실의 역사. 또는 그런 기록.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33646300 정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국어사전』<sup>online</sup></online></html>.</ref>이므로 그 체재나 문장이 잘 정돈된 데 비하여,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씌어진, 이른바 야사(野史)<ref>민간(民間)에서 사사로이 기록한 역사.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25641400 야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국어사전』<sup>online</sup></online></html>.</ref>이므로 형식이나 문장이 『[[삼국사기]]』에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나, 거기서 볼 수 없는 많은 고대 사료들을 수록하고 있어 둘도 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문헌이다.<ref>류은주, 『모발학 사전』, 광문각, 2003.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14530&cid=42407&categoryId=42407 삼국유사]", 모발학 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 | 『삼국유사』의 편찬자인 [[일연]]은 [[고려 충렬왕|충렬왕]]의 명령에 따라 1277년부터 1281년까지 [[청도 운문사]]에서 | + | 『삼국유사』의 편찬자인 [[일연]]은 [[고려 충렬왕|충렬왕]]의 명령에 따라 1277년부터 1281년까지 [[청도 운문사]]에서 머물며 불교를 일으키는 데 힘썼다. 『삼국유사』는 바로 이 무렵에 쓰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한다.<ref>김한종,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책과함께어린이, 2015.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60228&cid=47306&categoryId=47306 삼국유사]",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1278년에는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역대연표(歷代年表)』를 [[대구 인흥사|인흥사(仁興寺)]]에서 간행했다. 이것은 『삼국유사』 「왕력(王歷)」편의 토대가 되었으나<ref>김남윤, "[http://contents.koreanhistory.or.kr/id/N0137 일연(一然)]",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사 콘텐츠』<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ref>강래업,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dataType=99&contents_id=GC05500851 삼국유사]",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 [[일연]] | + | [[일연]]이 승려이므로 『삼국유사』에도 불교와 관련한 내용이 많다. 특히 이름난 승려가 한 일이나 불교에 관한 설화가 많으며 있으며 절이나 탑, 불상에 관한 중요한 자료도 실었다.<ref>김한종,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책과함께어린이, 2015.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60228&cid=47306&categoryId=47306 삼국유사]",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 | 제자 [[무극|무극(無極)]]이 1310년대에 『삼국유사』를 | + | 제자 [[무극|무극(無極)]]이 1310년대에 『삼국유사』를 간행했다.<ref>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사전연구사, 1998. 온라인 참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92428&cid=41708&categoryId=41711 삼국유사]", 국어국문학자료사전, <html><online style="color:purple">『네이버 지식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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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4일 (금) 18:59 기준 최신판
삼국유사(三國遺事) | |
대표명칭 | 삼국유사 |
---|---|
한자표기 | 三國遺事 |
영문명칭 |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
저자 | 일연(一然) |
저술시기 | 고려시대 |
시대 | 고려시대 |
정의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일연(一然, 1206-1289)이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유사(遺事)를 모아 지은 역사서.[1]
내용
『삼국유사(三國遺事)』는 보각국사 일연(普覺國師 一然)이 편찬한 사서(史書)이며[2] 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1281∼1283년(충렬왕 7∼9) 사이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3] 현존하는 판본들 중 고려시대 것은 없고 모두 후대인 조선시대에 판각된 것들이다.[4]
본서는 활자본이고,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5] 내용은 「왕력(王歷)」, 「기이(紀異)」,「흥법(興法)」,「탑상(塔像)」,「의해(義解)」,「신주(神呪)」,「감통(感通)」,「피은(避隱)」,「효선(孝善)」등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6]
삼국유사 구성[7]
- 권제1 - 「기이(紀異)」 제1에는 고조선(古朝鮮) 이하 삼한(三韓), 부여(扶餘), 고구려, 백제와 통일 이전의 신라 등 역대 여러 나라에 관한 기록을 수록했다. 여기에는 단군조선(檀君朝鮮)의 고대사(古代史)부터 신라의 통일 전인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대에 이르기까지의 요사(要史) 및 질문(秩文)을 왕조 중심으로 모은 36항목의 내용이 들어 있다.
- 권제2 - 편목이 따로 있지 않고 문무왕(文武王) 이후 즉 통일 이후의 신라와 백제, 후백제, 가락국기(駕洛國記)를 기술했다. 권제1과 같은 방식으로 23항목이 들어 있다.
- 권제3 - 「흥법(興法)」 제3은 불교 전래 역사를 신라 중심으로 서술한다.「탑상(塔像)」은 불교신앙의 대상인 석탑(石塔), 범종(梵鐘), 불상(佛像), 사찰(寺刹)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 권제4 - 「의해(義解)」 제5로 신라의 학승(學僧) 및 율사(律師)의 전기(傳記)를 수록했다.
- 권제5 - 4개의 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신주(神呪)」 제6은 밀교(密敎) 신승(神僧)의 사적, 「감통(感通)」 제7은 감동을 주는 고전(古傳), 「피은(避隱)」 제8은 행적을 감추어버린 고승(高僧)들의 전기, 「효선(孝善)」 제9는 효행과 보은에 관한 미담을 수록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마찬가지로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의 역사뿐 아니라 고조선과 기자, 위만조선을 비롯하여 가락 등의 사적, 신화·전설·시가(詩歌) 등을 풍부하게 수록했다.[8] 그러나 『삼국유사』는 여러 자료의 내용을 다듬어서 쓴 『삼국사기』와는 달리 전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실은 것이 많다. 그래서 글이 세련되지 않고 때로는 허황되어 보이는 이야기도 나온다. 심지어 사실이나 자료들과 맞지 않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역사 자료로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를 비롯한 다른 역사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나 사건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9]
특히 『삼국유사』는 지금까지 보존된 책 중에서 가장 먼저 단군 신화와 고조선의 역사를 쓰고 있다. 단군 신화를 우리 민족의 건국 신화로, 고조선을 최초의 국가로 인정하는 데 『삼국유사』가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일연이 『삼국유사』에 단군 신화에 대해 쓴 것은 당시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으면서 잃어버린 민족의식과 자주성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10] 이러한 그의 인식은 『삼국유사』의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11]
스스로 서술하여 말하기를 “대저 옛 성인(聖人)은 예악(禮樂)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仁義)로 가르침을 베푸는 데 있어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帝王)이 장차 일어날 때 부명(符命)에 응하거나 도록(圖籙)을 받아 반드시 범인(凡人)과 다름이 있은 연후에야 능히 큰 변화를 타고 대기(大器)를 잡고 대업(大業)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런즉 삼국(三國)의 시조(始祖)가 모두 신이(神異)한 데서 나왔다는 것이 어찌 괴이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 기이(紀異)가 제편(諸篇)의 첫머리에 실린 것은 그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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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삼국유사』 권 제1, 제1기이, 「서왈」.[12] |
본서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고대사적의 쌍벽으로,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史官)에 의해 이루어진 정사(正史)[13]이므로 그 체재나 문장이 잘 정돈된 데 비하여,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씌어진, 이른바 야사(野史)[14]이므로 형식이나 문장이 『삼국사기』에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나, 거기서 볼 수 없는 많은 고대 사료들을 수록하고 있어 둘도 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문헌이다.[15]
『삼국유사』의 편찬자인 일연은 충렬왕의 명령에 따라 1277년부터 1281년까지 청도 운문사에서 머물며 불교를 일으키는 데 힘썼다. 『삼국유사』는 바로 이 무렵에 쓰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한다.[16] 1278년에는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역대연표(歷代年表)』를 인흥사(仁興寺)에서 간행했다. 이것은 『삼국유사』 「왕력(王歷)」편의 토대가 되었으나[17]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18]
일연이 승려이므로 『삼국유사』에도 불교와 관련한 내용이 많다. 특히 이름난 승려가 한 일이나 불교에 관한 설화가 많으며 있으며 절이나 탑, 불상에 관한 중요한 자료도 실었다.[19]
제자 무극(無極)이 1310년대에 『삼국유사』를 간행했다.[20]
지식 관계망
- 보각국사 일연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일연 | 삼국유사 | A는 B를 저술하였다 | A dcterms:creator B |
삼국유사 | 청도 운문사 | A는 B와 관련있다 | A edm:isRelatedTo B |
삼국유사 | 군위 인각사 | A는 B와 관련있다 | A edm:isRelatedTo B |
삼국유사 | 삼국사기 | A는 B와 관련있다 | A edm:isRelatedTo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
1281-1283년 | 일연이 청도 운문사에서 삼국유사를 편찬하였다. |
일연이 군위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하였다. | |
1310년대 | 제자 무극이 삼국유사를 간행하였다. |
시각자료
영상
- amitaba3, "삼국유사와 일연 스님", YouTube, 게시일: 2012년 4월 29일.
- 강병규, "(안동MBC) 오래된 약속 63편 일연의 삼국유사와 인각사", YouTube, 게시일: 2016년 1월 12일.
- 대구교육미디어센터, "삼국유사", YouTube, 게시일: 2016년 5월 3일.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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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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