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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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패옥(佩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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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정온(鄭蘊, 1569~1641)의 패옥, 문화재청, 『문화재대관 중요민속자료-복식․자수편』, 문화재청, 2006,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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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의'''==
덕의 상징으로 좌우에 늘이어 차는 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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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백관]]이 대사(大社), 경사일(慶事日), 원단(元旦), 동지(冬至) 및 조칙(詔勅)을 반포하거나 진표(進表)시에 또는 국가의 제사에 좌우에 늘어뜨려 차는 옥이다.<ref>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92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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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내용'''==
===복식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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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옥(백관)|패옥]]은 형(珩), 황(璜), 거(琚), 우(瑀), 충아(衝牙)로 구성된다. 형은 길쭉한 모양으로 가장 윗부분에 있다. 그 아래에 거 2개와 우 1개가 있는데, 우가 가운데에 있고 거는 양옆에 있다. 가장 아래에는 황과 충아가 있는데, 가운데에 충아가 있고 황은 양옆에 있다.<ref> 그 내용은 『시경(詩經)』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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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잡패(雜佩)는 좌우(左右)의 패옥(佩玉)이다. 위에 가로댄 것을 형(珩)이라 하니, 아래에서 세 개의 끈을 매달고 진주조개를 꿰며, 가운데 끈의 중간에 하나의 큰 구슬을 꿰니, 이것을 우(瑀)라 한다. 끝에 하나의 옥을 매다는데 두 끝이 모두 뾰족하니, 이것을 충아(衝牙)라 한다. 양 곁의 끈 중간에 각기 하나씩 옥을 매다는데, 길쭉하고 넓적하며 네모지니, 이것을 거(琚)라 한다. 그 끝에 각각 한 옥을 매다는데, 반벽(半璧)과 같으며 안으로 향했으니, 이것을 황(璜)이라 한다. 또 두 개의 끈으로 구슬을 꿰어 위로 형(珩)에 매달고, 양 끝은 아래로 우(瑀)에 교차시켜 꿰고 아래로 두 황(璜)에 매다니, 사람이 걸어가면 충아(衝牙)가 황(璜)에 부딪쳐 소리가 난다. 여씨(呂氏)가 말하기를 '비단 옥뿐만이 아니요 뿔송곳과 화경, 바늘과 대통 등 모든 찰만한 것은 모두 이것이다.' 하였다.(集傳: 雜佩者, 左右佩玉也. 上橫曰珩, 下繫三組, 貫以蠙珠, 中組之半, 貫一大珠, 曰瑀. 末懸一玉, 兩端皆銳, 曰衝牙. 兩旁組半, 各懸一玉, 長博而方, 曰琚, 其末各懸一玉, 如半璧而內向, 曰璜. 又以兩組貫珠, 上繫珩, 兩端下交貫瑀而下繫於兩璜, 行則衝牙觸璜而有聲也. 呂氏曰, 非獨玉也. 觿燧箴(針)管凡可佩者皆是也.)
파일:궁중기록화 복식 패옥 02.jpg|『詩傳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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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詩經』, 「鄭風」, '女曰鷄鳴'.}}</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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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의 상징인 [[패옥]]을 찬 채 걸으면 황과 충아가 서로 부딪쳐 ‘쟁쟁[鏘鏘]’하고 소리를 낸다. 군자는 이 소리를 들으면서 사악한 마음이 자신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다스렸다고 한다.<ref>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72쪽.</ref> [[백관의 조복]]에 차는 [[패옥(백관)|패옥]]에는 원래 '패옥집[紗帒]'이 없었다. [[명 세종]]이 대궐에 오를 적에 모시는 신하[侍臣]가 차고 있던 옥패가 바람에 날려 [[명 세종]]의 [[패옥]]과 서로 얽힌 일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조서를 내려 패옥집을 만들어 얽히는 것을 방지했다. [[예조|예조(禮曹)]]에서 [[태종|태종(太宗)]]대와 [[세종|세종(世宗)]]대에 걸쳐 개정하여 1~2품은 옥(玉), 3~9품은 약옥(藥玉)을 사용하다가 [[경국대전|『경국대전』]]에서 3품 이상은 [[백관의 조복]]과 [[백관의 제복|제복]]에 번청옥(燔靑玉), 4품 이하는 번백옥(燔白玉)으로 정하였다. <ref>장정윤, 「朝鮮時代 文武百官 朝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115쪽.</ref>  
  
===착용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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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문무백관]]이 착용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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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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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정보===
대사(大社), 경사일(慶事日), 원단(元旦), 동지(冬至) 및 조칙(詔勅)을 반포하거나 진표(進表)시 [[조복]]을 입을 때 착용 한다. 또한 국가 [[제례]]에 [[제복]]을 입을 때 착용 한다.
 
  
===기본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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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정보===
형(珩), 황(璜), 거(琚), 우(瑀), 충아(衝牙)로 구성 되었다. 형은 가로로 길쭉한 모양이고 가장 윗부분에 있다. 그 아래에 거 2개와 우 1개가 있는데, 우가 가운데에 있고 거는 양옆에 있다. 그리고 가장 아래에는 황과 충아가 있는데, 가운데에 충아가 있고 황은 양옆에 있다.
 
{{Blockquote|잡패(雜佩)는 좌우(左右)의 패옥(佩玉)이다. 위에 가로댄 것을 형(珩)이라 하니, 아래에서 세 개의 끈을 매달고 진주조개를 꿰며, 가운데 끈의 중간에 하나의 큰 구슬을 꿰니, 이것을 우(瑀)라 한다. 끝에 하나의 옥을 매다는데 두 끝이 모두 뽀족하니, 이것을 충아(衝牙)라 한다. 양 곁의 끈 중간에 각기 하나씩 옥을 매다는데, 길쭉하고 넓적하며 네모지니, 이것을 거(琚)라 한다. 그 끝에 각각 한 옥을 매다는데, 반벽(半璧)과 같으며 안으로 향했으니, 이것을 황(璜)이라 한다. 또 두 개의 끈으로 구슬을 꿰어 위로 형(珩)에 매달고, 양 끝은 아래로 우(瑀)에 교차시켜 꿰고 아래로 두 황(璜)에 매다니, 사람이 걸어가면 충아(衝牙)가 황(璜)에 부딪쳐 소리가 난다. 여씨(呂氏)가 말하기를 '비단 옥뿐만이 아니요 뿔송곳과 화경, 바늘과 대통 등 모든 찰만 한 것은 모두 이것이다.' 하였다.<ref>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76쪽.</ref> (集傳: 雜佩者, 左右佩玉也. 上橫曰珩, 下繫三組, 貫以蠙珠, 中組之半, 貫一大珠, 曰瑀. 末懸一玉, 兩端皆銳, 曰衝牙. 兩旁組半, 各懸一玉, 長博而方, 曰琚, 其末各懸一玉, 如半璧而內向, 曰璜. 又以兩組貫珠, 上繫珩, 兩端下交貫瑀而下繫於兩璜, 行則衝牙觸璜而有聲也. 呂氏曰, 非獨玉也. 觿燧箴(針)管凡可佩者皆是也.)
 
|출처= 『詩經』, 「鄭風」, '女曰鷄鳴'.}}
 
  
[[예조|예조(禮曹)]]에서 [[태종|태종(太宗)]]代와 [[세종|세종(世宗代)]]에 걸쳐 개정하여 1~2품은 옥(玉), 3~9품은 약옥(藥玉)을 사용하다가 『경국대전』에서 1~3품은 조복과 제복에 번청옥(燔靑玉), 4~9품은 번백옥(燔白玉)으로 정하였다.<ref>장정윤, 「朝鮮時代 文武百官 朝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115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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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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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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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궁중기록화 복식 패옥 04.jpg|심동신(沈東臣, 1824~?) 패옥.<ref>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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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궁중기록화 복식 패옥 02.jpg| 패옥의 구조.<ref>『詩傳圖』.</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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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궁중기록화 복식 패옥 04.jpg|심동신(沈東臣, 1824~?) 패옥.<ref>문화재청, 『문화재대관 중요민속자료-복식․자수편』, 문화재청, 2006, 123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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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옥]]은 [[혁대]]에 걸어야 하지만 조선 전기 [[면복]]에는 [[혁대]]를 착용하지 않았으므로 [[대대]]에 걸었을 것이고, 조선 후기에 [[혁대]]를 착용하면서부터 [[혁대]]에 걸었을 것.<ref>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7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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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궁중기록화 인물 종친 밀창군01 초상화의 비밀146쪽.jpg | .<ref>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 14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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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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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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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덕의 상징으로, [[패옥]]을 찬 채 걸으면 황과 충아가 서로 부딪쳐 ‘쟁쟁[鏘鏘]’하고 소리를 내, 군자는 이 소리를 들으면서 사악한 마음이 자신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다스렸다고 한다.<ref>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72쪽.</ref>[[조복]]에 차는 패옥에는 원래 [[패옥집]][紗帒]이 없었다. [[가정|가정(嘉靖)]]년간에 세종이 대궐에 오를 적에 시신(侍臣)이 차고 있던 옥패가 바람에 날려 세종의 패옥과 서로 얽힌 일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조서를 내려 패옥집을 만들어 얽히는 것을 방지했다.<ref>장정윤, 「朝鮮時代 文武百官 朝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115쪽.</ref>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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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A!!항목B!!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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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백관]] || '''{{PAGENAME}}''' ||A는 B를 착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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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NAME}}'''  || [[조복]] ||A는 B의 일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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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NAME}}'''  || [[제복]] ||A는 B의 일습이다
 
|}
 
  
 
=='''참고문헌'''==
 
=='''참고문헌'''==
*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
+
===인용 및 참조===
* 권현주, 「접섭대(䪓韘帶)에 관한 연구」, 『中央아시아硏究』, V.11, 중앙아시아학회, 2005.
+
* 高光林, 「金冠 朝服에 關한 硏究」, 인천교육대학교 논문집12, 1978.
*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 『名選-下』, 단국대학교출판부, 2004.
+
* 高光林, 『韓國의 冠服』, 和成社, 1990.
 +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 『名選-中』, 단국대학교출판부, 2004.
 
* 류희경, 『우리옷 이천년』, 미술문화, 2001.
 
* 류희경, 『우리옷 이천년』, 미술문화, 2001.
 
* 문화재청, 『한국의 초상화-역사속의 인물과 조우하다』, 문화재청, 2007.
 
* 문화재청, 『한국의 초상화-역사속의 인물과 조우하다』, 문화재청, 2007.
 +
* 李善熙, 「祭服의 起源과 變遷에 關한 硏究」, 성신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2.
 +
* 朴京子, 「祭禮의 思想과 祭服에 關한 硏究」, 성신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5.
 
* 석주선, 『한국복식사』, 보진재, 1971.
 
* 석주선, 『한국복식사』, 보진재, 1971.
 +
* 石宙善, 『衣』, 고려서적주식회사, 1985.
 
* 이강칠 외, 『역사인물초상화대사전』, 현암사, 2003.
 
* 이강칠 외, 『역사인물초상화대사전』, 현암사, 2003.
 +
* 임상임ㆍ유관순ㆍ추미경, 「조선후기 죽산(竹山) 박씨 집안의 조복(朝服)에 관한 연구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赤綃衣·赤綃裳을 중심으로-」, 『한국의류학회지』 26권 5호, 한국의류학회, 2002.
 
* 장정윤, 「朝鮮時代 文武百官 朝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장정윤, 「朝鮮時代 文武百官 朝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周錫保, 『中國古代服飾史』, 中國戱劇出版社, 1983.
 
* 최규순, 『中國歷代帝王冕服硏究』, 동화대학출판부, 2007.
 
* 최규순, 「이 시대의 진정한 ‘紳士’를 위하여」, 『전통 의생활 연구』, 제 2집, 단국대학교 전통복식연구소, 2008.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최영선, 「朝鮮時代 文武百官 祭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 최영선, 「朝鮮時代 文武百官 祭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 홍나영, 「佩玉에 관한 硏究」, 『韓國服飾』 8,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1990.
 
* 홍나영, 「佩玉에 관한 硏究」, 『韓國服飾』 8,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1990.
  
=='''주석'''==
+
[[분류:궁중기록화]] [[분류:복식]]
<references/>
 
 
 
[[분류:궁중기록화]]
 
[[분류:복식]]
 

2017년 10월 27일 (금) 20:54 기준 최신판


패옥
(佩玉)
정온(鄭蘊, 1569~1641)의 패옥, 문화재청, 『문화재대관 중요민속자료-복식․자수편』, 문화재청, 2006, 205쪽
대표명칭 패옥
한자표기 佩玉
구분 기타
착용신분 백관, 종친
착용성별 남성



정의

조선시대 백관이 대사(大社), 경사일(慶事日), 원단(元旦), 동지(冬至) 및 조칙(詔勅)을 반포하거나 진표(進表)시에 또는 국가의 제사에 좌우에 늘어뜨려 차는 옥이다.[1]

내용

패옥은 형(珩), 황(璜), 거(琚), 우(瑀), 충아(衝牙)로 구성된다. 형은 길쭉한 모양으로 가장 윗부분에 있다. 그 아래에 거 2개와 우 1개가 있는데, 우가 가운데에 있고 거는 양옆에 있다. 가장 아래에는 황과 충아가 있는데, 가운데에 충아가 있고 황은 양옆에 있다.[2] 덕의 상징인 패옥을 찬 채 걸으면 황과 충아가 서로 부딪쳐 ‘쟁쟁[鏘鏘]’하고 소리를 낸다. 군자는 이 소리를 들으면서 사악한 마음이 자신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다스렸다고 한다.[3] 백관의 조복에 차는 패옥에는 원래 '패옥집[紗帒]'이 없었다. 명 세종이 대궐에 오를 적에 모시는 신하[侍臣]가 차고 있던 옥패가 바람에 날려 명 세종패옥과 서로 얽힌 일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조서를 내려 패옥집을 만들어 얽히는 것을 방지했다. 예조(禮曹)에서 태종(太宗)대와 세종(世宗)대에 걸쳐 개정하여 1~2품은 옥(玉), 3~9품은 약옥(藥玉)을 사용하다가 『경국대전』에서 3품 이상은 백관의 조복제복에 번청옥(燔靑玉), 4품 이하는 번백옥(燔白玉)으로 정하였다. [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백관 패옥(백관)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종친 패옥(백관)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백관의 조복 패옥(백관)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백관의 제복 패옥(백관)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패옥(백관) 제복 상의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패옥(백관) 제복 하상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패옥(백관) 조복 상의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패옥(백관) 조복 하상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92쪽.
  2. 그 내용은 『시경(詩經)』에 기록되어 있다.
    Quote-left.png 잡패(雜佩)는 좌우(左右)의 패옥(佩玉)이다. 위에 가로댄 것을 형(珩)이라 하니, 아래에서 세 개의 끈을 매달고 진주조개를 꿰며, 가운데 끈의 중간에 하나의 큰 구슬을 꿰니, 이것을 우(瑀)라 한다. 끝에 하나의 옥을 매다는데 두 끝이 모두 뾰족하니, 이것을 충아(衝牙)라 한다. 양 곁의 끈 중간에 각기 하나씩 옥을 매다는데, 길쭉하고 넓적하며 네모지니, 이것을 거(琚)라 한다. 그 끝에 각각 한 옥을 매다는데, 반벽(半璧)과 같으며 안으로 향했으니, 이것을 황(璜)이라 한다. 또 두 개의 끈으로 구슬을 꿰어 위로 형(珩)에 매달고, 양 끝은 아래로 우(瑀)에 교차시켜 꿰고 아래로 두 황(璜)에 매다니, 사람이 걸어가면 충아(衝牙)가 황(璜)에 부딪쳐 소리가 난다. 여씨(呂氏)가 말하기를 '비단 옥뿐만이 아니요 뿔송곳과 화경, 바늘과 대통 등 모든 찰만한 것은 모두 이것이다.' 하였다.(集傳: 雜佩者, 左右佩玉也. 上橫曰珩, 下繫三組, 貫以蠙珠, 中組之半, 貫一大珠, 曰瑀. 末懸一玉, 兩端皆銳, 曰衝牙. 兩旁組半, 各懸一玉, 長博而方, 曰琚, 其末各懸一玉, 如半璧而內向, 曰璜. 又以兩組貫珠, 上繫珩, 兩端下交貫瑀而下繫於兩璜, 行則衝牙觸璜而有聲也. 呂氏曰, 非獨玉也. 觿燧箴(針)管凡可佩者皆是也.) Quote-right.png
    출처: 『詩經』, 「鄭風」, '女曰鷄鳴'.

  3.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72쪽.
  4. 장정윤, 「朝鮮時代 文武百官 朝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115쪽.
  5. 『詩傳圖』.
  6. 문화재청, 『문화재대관 중요민속자료-복식․자수편』, 문화재청, 2006, 123쪽.
  7.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8.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 국립중앙박물관, 2011, 146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高光林, 「金冠 朝服에 關한 硏究」, 인천교육대학교 논문집12, 1978.
  • 高光林, 『韓國의 冠服』, 和成社, 1990.
  • 국립고궁박물관, 『왕실문화도감』, 국립고궁박물관, 2013.
  •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 『名選-中』, 단국대학교출판부, 2004.
  • 류희경, 『우리옷 이천년』, 미술문화, 2001.
  • 문화재청, 『한국의 초상화-역사속의 인물과 조우하다』, 문화재청, 2007.
  • 李善熙, 「祭服의 起源과 變遷에 關한 硏究」, 성신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2.
  • 朴京子, 「祭禮의 思想과 祭服에 關한 硏究」, 성신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5.
  • 석주선, 『한국복식사』, 보진재, 1971.
  • 石宙善, 『衣』, 고려서적주식회사, 1985.
  • 이강칠 외, 『역사인물초상화대사전』, 현암사, 2003.
  • 임상임ㆍ유관순ㆍ추미경, 「조선후기 죽산(竹山) 박씨 집안의 조복(朝服)에 관한 연구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赤綃衣·赤綃裳을 중심으로-」, 『한국의류학회지』 26권 5호, 한국의류학회, 2002.
  • 장정윤, 「朝鮮時代 文武百官 朝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최영선, 「朝鮮時代 文武百官 祭服에 關한 硏究」,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 홍나영ㆍ신혜성ㆍ이은진 지음, 『동아시아 복식의 역사』, 교문사, 2011.
  • 홍나영, 「佩玉에 관한 硏究」, 『韓國服飾』 8,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