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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여머리]] 위에 Y자 모양의 [[가체]]를 얹고, [[비녀]]와 [[댕기]]를 장식하여 고정시킨 것이다.<ref>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723쪽.</ref>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땋아 만든 [[다리]]로 만들었으나, 무겁고 값이 비싸 사치가 심해지자 1779년(정조 3)에 [[가체]]를 금지하면서 나무로 | + | [[어여머리]] 위에 Y자 모양의 [[가체]]를 얹고, [[비녀]]와 [[댕기]]를 장식하여 고정시킨 것이다.<ref>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723쪽.</ref>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땋아 만든 [[다리]]로 만들었으나, 무겁고 값이 비싸 사치가 심해지자 1779년(정조 3)에 [[가체]]를 금지하면서 나무로 대체하였다. Y자 모양을 형상화 한 나무틀에 땋은 머리 모양을 조각하고 옻칠을 한 [[목제큰머리|큰머리]]를 [[어여머리]] 위에 장식하여 의례에 맞는 차림을 갖추었다.<ref>신병주,『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효형출판, 2001, 192쪽; 박정자 외 7명, 『역사로 본 전통머리』, 光文閣, 2010, 73쪽.</ref> 이는 [[가체]]를 얹고자 하는 부녀자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면서도 지나치게 비용이 낭비되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ref>차서연, 「徐有榘의 服飾觀- 「贍用志」 '服飾之具‘의 분석을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29쪽.</ref> 근대 사진 자료에서는 [[영친왕비]]가 [[왕비의 대례복|적의]]를 입었을 때나 [[궁녀]]들의 [[원삼]]을 착용했을 때 [[큰머리]]를 한 모습을 볼 수 있다.<ref>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723쪽.</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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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및 참조=== | ===인용 및 참조=== | ||
− | * 김소현, 「조선후기 왕실여성의 관례복식 연구」, 『服飾』 60권 5호, 2010. | + | * 김소현, 「조선후기 왕실여성의 관례복식 연구」, 『服飾』 60권 5호, 한국복식학회, 2010. |
* 김아람, 「복식 고증을 통한 복온공주 혼례 친영반차도 구현」,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 * 김아람, 「복식 고증을 통한 복온공주 혼례 친영반차도 구현」,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 ||
* 金正子, 「우리나라 女性의 髮樣에 대한 硏究 - 文獻과 遺物을 中心으로-」, 『服飾』6권, 한국복식학회, 1982. | * 金正子, 「우리나라 女性의 髮樣에 대한 硏究 - 文獻과 遺物을 中心으로-」, 『服飾』6권, 한국복식학회, 1982. | ||
* 박영미, 「조선 후기 가체 유행에 관한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 박영미, 「조선 후기 가체 유행에 관한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
* 박정균, 「조선시대 여인의 가체금지령 전ㆍ후 신분별 머리 모양분석-드라마 왕과 나, 이산을 중심으로-」, 한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 * 박정균, 「조선시대 여인의 가체금지령 전ㆍ후 신분별 머리 모양분석-드라마 왕과 나, 이산을 중심으로-」, 한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 ||
− | * 朴貞植, 「朝鮮時代의 女子髮樣考察-中·後期操作方法-」, 『대한가정학회지』 제21권 3호, 1983. | + | * 朴貞植, 「朝鮮時代의 女子髮樣考察-中·後期操作方法-」, 『대한가정학회지』 제21권 3호, 대한가정학회, 1983. |
* 박정자 외 7명, 『역사로 본 전통머리』, 光文閣, 2010. | * 박정자 외 7명, 『역사로 본 전통머리』, 光文閣, 2010. | ||
* 신병주,『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효형출판, 2001. | * 신병주,『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효형출판, 2001. | ||
* 宋昇姬, 「가체를 중심으로 한 조선후기 여성의 머리장식 연구 –신윤복의 풍속화를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 * 宋昇姬, 「가체를 중심으로 한 조선후기 여성의 머리장식 연구 –신윤복의 풍속화를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 ||
* 李映周, 「조선시대 加髢변화에 관한 연구」, 동덕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 * 李映周, 「조선시대 加髢변화에 관한 연구」, 동덕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 ||
− | * 이은주, 「19세기 조선 왕실 여성의 머리모양」, 『服飾』 58권 3호, 2008. | + | * 이은주, 「19세기 조선 왕실 여성의 머리모양」, 『服飾』 58권 3호, 한국복식학회, 2008. |
− | * 임영자ㆍ조미영, 「조선후기 기녀의 머리형태가 일반여성의 머리 형태에 미친 영향」, 『服飾』 54권 3호, 2004. | + | * 임영자ㆍ조미영, 「조선후기 기녀의 머리형태가 일반여성의 머리 형태에 미친 영향」, 『服飾』 54권 3호, 한국복식학회, 2004. |
* 張暎淳, 「朝鮮時代 以來 女性의 머리 型態變遷에 關한 史的 考察」, 계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8. | * 張暎淳, 「朝鮮時代 以來 女性의 머리 型態變遷에 關한 史的 考察」, 계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8. | ||
− | * 최경순, 「조선조 加髢논의와 그 요인」, 『복식문화연구』 4권 1호, 1996. | + | * 최경순, 「조선조 加髢논의와 그 요인」, 『복식문화연구』 4권 1호, 복식문화학회, 1996. |
* 崔民植, 「조선후기 내명부의 머리 양식 및 고찰」, 한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 * 崔民植, 「조선후기 내명부의 머리 양식 및 고찰」, 한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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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5일 (수) 00:47 기준 최신판
큰머리 (擧頭美) |
|
대표명칭 | 큰머리 |
---|---|
한자표기 | 擧頭美 |
이칭별칭 | 거두미(擧頭尾), 거두미(巨頭味) |
구분 | 수식 |
착용신분 | 황후, 황태자비,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외명부, 궁녀 |
착용성별 | 여성 |
정의
대한제국의 황후, 황태자비와 조선의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외명부, 궁녀 등이 의례를 위해 머리를 크게 꾸민 모양이다.[1]
내용
어여머리 위에 Y자 모양의 가체를 얹고, 비녀와 댕기를 장식하여 고정시킨 것이다.[2]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땋아 만든 다리로 만들었으나, 무겁고 값이 비싸 사치가 심해지자 1779년(정조 3)에 가체를 금지하면서 나무로 대체하였다. Y자 모양을 형상화 한 나무틀에 땋은 머리 모양을 조각하고 옻칠을 한 큰머리를 어여머리 위에 장식하여 의례에 맞는 차림을 갖추었다.[3] 이는 가체를 얹고자 하는 부녀자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면서도 지나치게 비용이 낭비되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4] 근대 사진 자료에서는 영친왕비가 적의를 입었을 때나 궁녀들의 원삼을 착용했을 때 큰머리를 한 모습을 볼 수 있다.[5]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황후 | 큰머리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황태자비 | 큰머리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비 | 큰머리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왕세자빈 | 큰머리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내명부 | 큰머리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외명부 | 큰머리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궁녀 | 큰머리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큰머리 | 어염머리 |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큰머리 | 원삼 |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큰머리 | 적의 |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723쪽.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723쪽.
- ↑ 신병주,『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효형출판, 2001, 192쪽; 박정자 외 7명, 『역사로 본 전통머리』, 光文閣, 2010, 73쪽.
- ↑ 차서연, 「徐有榘의 服飾觀- 「贍用志」 '服飾之具‘의 분석을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29쪽.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723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김소현, 「조선후기 왕실여성의 관례복식 연구」, 『服飾』 60권 5호, 한국복식학회, 2010.
- 김아람, 「복식 고증을 통한 복온공주 혼례 친영반차도 구현」,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 金正子, 「우리나라 女性의 髮樣에 대한 硏究 - 文獻과 遺物을 中心으로-」, 『服飾』6권, 한국복식학회, 1982.
- 박영미, 「조선 후기 가체 유행에 관한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박정균, 「조선시대 여인의 가체금지령 전ㆍ후 신분별 머리 모양분석-드라마 왕과 나, 이산을 중심으로-」, 한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 朴貞植, 「朝鮮時代의 女子髮樣考察-中·後期操作方法-」, 『대한가정학회지』 제21권 3호, 대한가정학회, 1983.
- 박정자 외 7명, 『역사로 본 전통머리』, 光文閣, 2010.
- 신병주,『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효형출판, 2001.
- 宋昇姬, 「가체를 중심으로 한 조선후기 여성의 머리장식 연구 –신윤복의 풍속화를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 李映周, 「조선시대 加髢변화에 관한 연구」, 동덕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 이은주, 「19세기 조선 왕실 여성의 머리모양」, 『服飾』 58권 3호, 한국복식학회, 2008.
- 임영자ㆍ조미영, 「조선후기 기녀의 머리형태가 일반여성의 머리 형태에 미친 영향」, 『服飾』 54권 3호, 한국복식학회, 2004.
- 張暎淳, 「朝鮮時代 以來 女性의 머리 型態變遷에 關한 史的 考察」, 계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8.
- 최경순, 「조선조 加髢논의와 그 요인」, 『복식문화연구』 4권 1호, 복식문화학회, 1996.
- 崔民植, 「조선후기 내명부의 머리 양식 및 고찰」, 한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