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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부안 개암사|개암사(開巖寺)]] 뒤에 위치한 석굴(石窟).<ref>"[http://www.who-who.net/wh/wh%20m-5.htm 원효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원효의 유적지』<sup>online</sup></online></htm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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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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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방(元曉房)은 [[부안 개암사|개암사(開巖寺)]] 뒤 울금바위에 있는 석굴(石窟)로, 신라시대의 승려 [[원효|원효대사(元曉大師)]]가 수도했다고 전해오는 곳이다. 원효방의 형태가 어떤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토굴이나 석굴일 것이다. 고려시대의 문신 [[이규보|이규보(李奎報)]]가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에 남긴 글로 보아, 이 석굴이 원효방으로 추정된다.<ref>"[http://www.who-who.net/wh/wh%20m-5.htm 원효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원효의 유적지』<sup>online</sup></online></html>.</ref>
  
 
===원효방과 관련한 이야기===
 
===원효방과 관련한 이야기===
원효가 부안에 온 것은 삼국 통일 이후였다. 오랜 전쟁으로 민초들이 원한과 상처로 고통 받고 있었다. 백제 무왕의 왕사였던 묘련스님이 창건한 개암사 위에서 묘련의 제자인 복신이 숨어 백제부흥을 꾀했던 동굴에 원효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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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원효(元曉)]]는 삼국 통일 이후 부안에 왔는데, 그 시기엔 오랜 전쟁으로 백성들이 원한과 상처로 고통 받고 있었다. [[백제 무왕]]의 [[왕사|왕사(王師)]]였던 묘련스님이 창건한 [[부안 개암사|개암사]] 뒤 울금바위에 위치한 동굴에 [[원효]]가 왔다. 이 굴 옆에는 수백명이 머물 수 있는 대규모 굴들이 있었고, 울금바위 뒤쪽엔 백제부흥군들이 베를 짜 옷을 해 입었다는 베틀굴이 있었다. [[원효]]는 이곳에서 가끔 저 김제평야로 나가서 야단법석(野壇法席)을 열었다. 야단법석에서 백성들과 함께 춤추며 원한과 갈등의 가슴을 어루만지고 상생의 노래를 불렀다. 그때 사복(蛇福)도 이 토굴에 같이 머물렀는데, [[원효]]에게 차를 끓어주려고 해도 물이 없었는데, 난데없이 바위틈에서 물이 새어나와, 달콤한 차맛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3&cp_code=cp0901&index_id=cp09010031&content_id=cp090100310001&search_left_menu= 원효방의 샘물]", 원효대사 스토리뱅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콘텐츠닷컴』<sup>online</sup></online></html>, 한국콘텐츠진흥원.</ref>
개암사 뒤 '울금바위'라 부르는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의 남쪽 면이 큰 입을 벌린 것처럼 패여 있어 수백 명의 사람이 그 안에 들어 앉을 수 있는 바위굴로 되어 있다. 이 굴 옆에는 수백명이 머물 수 있는 대규모 굴들이 있고, 울금바위 뒤쪽엔 백제부흥군들이 베를 짜 옷을 해 입었다는 베틀굴이 있다. 이 곳이 원효방(元曉房)이다.
 
옛날 원효가 이 곳에 암자를 짓고 여기에 머물면서 도를 닦고, 이따금 저 김제평야로 나아가서 불법을 강의(野壇法席) 하였는데, 그 때 수백 명의 군중이 이 곳에 모여들었다고 한다. 원효는 야단법석에서 민초들과 함께 춤추며 원한과 갈등의 가슴을 어루만지고 상생의 노래를 불렀다. 사복(蛇福)도 이 토굴에 같이 머물렀는데, 원효에게 차를 끓어주려고 해도 물이 없어 안타까와하니, 그 때부터 바위틈에서 물이 나오게 되었다. 그 물 맛이 매우 달아, 다천(茶泉)혹은 유천이라 부르게 되었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3&cp_code=cp0901&index_id=cp09010031&content_id=cp090100310001&search_left_menu= 원효방의 샘물]", 원효대사 스토리뱅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콘텐츠닷컴』<sup>online</sup></online></html>, 한국콘텐츠진흥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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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부령현(扶寧縣) 현령(縣令) 이군(李君)과 다른 손[客] 6ㆍ7명과 더불어 원효방(元曉房)에 갔다. 나무 사다리가 있는데 높이가 수십 층이나 되어 발을 후들후들 떨면서 찬찬히 올라가니, 짚 앞의 계단과 창호(窓戶)가 수풀 끝에 솟아 있었다. 듣건대 종종 호랑이나 표범이 부여잡고 올라오려다가 올라오지 못한다 하였다. 곁에 한 암자(庵子)가 있는데 속전(俗傳)에 의하면 뱀포[蛇包] 성인(聖人)이 옛날에 머물던 곳인데, 원효(元曉)가 와서 살았으므로 뱀포도 또한 와서 모시고 있었는데, 차를 달여 효공(曉公)에게 드리려 하였으나 샘물이 없어 걱정을 하자 이 물이 바위 틈에서 문득 솟아났는데 물맛이 매우 달아 젖같아서 이로써 늘 차를 달였다 한다.
 
다음날 부령현(扶寧縣) 현령(縣令) 이군(李君)과 다른 손[客] 6ㆍ7명과 더불어 원효방(元曉房)에 갔다. 나무 사다리가 있는데 높이가 수십 층이나 되어 발을 후들후들 떨면서 찬찬히 올라가니, 짚 앞의 계단과 창호(窓戶)가 수풀 끝에 솟아 있었다. 듣건대 종종 호랑이나 표범이 부여잡고 올라오려다가 올라오지 못한다 하였다. 곁에 한 암자(庵子)가 있는데 속전(俗傳)에 의하면 뱀포[蛇包] 성인(聖人)이 옛날에 머물던 곳인데, 원효(元曉)가 와서 살았으므로 뱀포도 또한 와서 모시고 있었는데, 차를 달여 효공(曉公)에게 드리려 하였으나 샘물이 없어 걱정을 하자 이 물이 바위 틈에서 문득 솟아났는데 물맛이 매우 달아 젖같아서 이로써 늘 차를 달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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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3&cp_code=cp0901&index_id=cp09010031&content_id=cp090100310001&search_left_menu= 원효방의 샘물]", 원효대사 스토리뱅크,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콘텐츠닷컴』<sup>online</sup></online></html>,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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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who-who.net/wh/wh%20m-5.htm 원효방]", <html><online style="color:purple">『원효의 유적지』<sup>online</sup></online></html>.
  
 
[[분류:역사인물초상화]] [[분류:문화유산]]
 
[[분류:역사인물초상화]] [[분류:문화유산]]

2017년 11월 8일 (수) 23:10 판

원효방
(元曉房)
대표명칭 원효방
한자표기 元曉房
소장처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관련인물 원효(元曉)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사(開巖寺) 뒤에 위치한 석굴(石窟).[1]


내용

원효방(元曉房)은 개암사(開巖寺) 뒤 울금바위에 있는 석굴(石窟)로, 신라시대의 승려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수도했다고 전해오는 곳이다. 원효방의 형태가 어떤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토굴이나 석굴일 것이다. 고려시대의 문신 이규보(李奎報)가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에 남긴 글로 보아, 이 석굴이 원효방으로 추정된다.[2]

원효방과 관련한 이야기

원효(元曉)는 삼국 통일 이후 부안에 왔는데, 그 시기엔 오랜 전쟁으로 백성들이 원한과 상처로 고통 받고 있었다. 백제 무왕왕사(王師)였던 묘련스님이 창건한 개암사 뒤 울금바위에 위치한 동굴에 원효가 왔다. 이 굴 옆에는 수백명이 머물 수 있는 대규모 굴들이 있었고, 울금바위 뒤쪽엔 백제부흥군들이 베를 짜 옷을 해 입었다는 베틀굴이 있었다. 원효는 이곳에서 가끔 저 김제평야로 나가서 야단법석(野壇法席)을 열었다. 야단법석에서 백성들과 함께 춤추며 원한과 갈등의 가슴을 어루만지고 상생의 노래를 불렀다. 그때 사복(蛇福)도 이 토굴에 같이 머물렀는데, 원효에게 차를 끓어주려고 해도 물이 없었는데, 난데없이 바위틈에서 물이 새어나와, 달콤한 차맛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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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부령현(扶寧縣) 현령(縣令) 이군(李君)과 다른 손[客] 6ㆍ7명과 더불어 원효방(元曉房)에 갔다. 나무 사다리가 있는데 높이가 수십 층이나 되어 발을 후들후들 떨면서 찬찬히 올라가니, 짚 앞의 계단과 창호(窓戶)가 수풀 끝에 솟아 있었다. 듣건대 종종 호랑이나 표범이 부여잡고 올라오려다가 올라오지 못한다 하였다. 곁에 한 암자(庵子)가 있는데 속전(俗傳)에 의하면 뱀포[蛇包] 성인(聖人)이 옛날에 머물던 곳인데, 원효(元曉)가 와서 살았으므로 뱀포도 또한 와서 모시고 있었는데, 차를 달여 효공(曉公)에게 드리려 하였으나 샘물이 없어 걱정을 하자 이 물이 바위 틈에서 문득 솟아났는데 물맛이 매우 달아 젖같아서 이로써 늘 차를 달였다 한다.

Quote-right.png
출처: 동문선 제66권, 기(記), 『남행월 일기(南行月日記)』.[4]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원효방 원효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주석

  1. "원효방", 『원효의 유적지』online.
  2. "원효방", 『원효의 유적지』online.
  3. "원효방의 샘물", 원효대사 스토리뱅크, 『문화콘텐츠닷컴』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
  4. "남행월 일기", 『한국고전종합DB』online, 한국고전번역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웹자원
    • "원효방의 샘물", 원효대사 스토리뱅크, 『문화콘텐츠닷컴』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
    • "남행월 일기", 『한국고전종합DB』online, 한국고전번역원.
    • "원효방", 『원효의 유적지』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