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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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5일 (일) 23:10 판

몽여(夢如)
BHST Monk1.png
대표명칭 몽여
한자 夢如
생몰년 ?-1252년
시호 청진국사(淸眞國師)



정의

고려 중기의 승려.

내용

수선사(修禪社) 16국사(國師) 중 제3세 국사로, 몽고 침입기에 수선사를 맡아 지눌(知訥)이 선양시킨 선풍(禪風)을 크게 진작시켰다. 스승 혜심(慧諶)의 비를 세우고, 혜심의 『선문염송(禪門拈頌)』을 열람한 뒤 거기에 347칙(則)을 첨가하여 보완하는 등, 참신한 선풍을 잇게 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그리고 당대의 법왕으로 추앙받으면서 혼원(混元)·천영(天英) 등의 제자를 배출했다. 1252년 수선사 사주직(社主職)을 제4세 혼원에게 물려주고 입적하였다.[1] 문인 이규보(李奎報)와도 친분이 두터워, 그에게 정이안(丁而安)의 흑죽도(黑竹圖)를 부탁하자 흑죽도를 보내면서 찬(撰)하였다는 글이 『동문선(東文選)』에 전한다.[2]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몽여 이규보 A는 B와 교유하였다
혜심 몽여 A는 B의 스승이다
몽여 혼원 A는 B의 스승이다
수선사 몽여 A는 B를 구성원으로 갖는다

각주

  1. 김위석, "몽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몽여",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참고문헌

  • 김위석, "몽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몽여",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