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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국사신을 접대하기 위하여 설치된 임시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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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국 사신을 접대하기 위하여 설치된 임시관서이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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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업무===
중국 사신(使臣)을 접대하였으며 조선 초부터 별도의 기록을 유지했다.<ref>『태조실록』 6권, 태조 3년 7월 15일 임자 1번째 기사, ‘명나라 사신에 의탁하여 폐단 끼치는 무리를 징계하다.’</ref> 주요 업무로 사신접대에 필요한 물품의 제조, 연회와 행사의 시행을 담당했다.<ref>김경록, 「朝鮮時代 使臣接對와 迎接都監」, 『한국학보』 30, 일지사, 2004, 97쪽.</ref> 사신을 접대한 내용으로 『영접도감의궤(迎接都監儀軌)』를 작성하여 보관하였는데, 1643년(인조 21) 이후 제작되지 않았다. 이에 관하여 [[명|명(明)]] 멸망 이후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킨다는 입장 때문에 [[의궤]]를 작성하지 않고 [[등록|등록(謄錄)]]의 형식으로 작성하였다는 견해가 있다. 인조 이후의 사신접대 내역은 『[[칙사일기|칙사일기(勅使日記)]]』에 수록하였는데, 『[[칙사일기]]』는 체제와 내용이 『영접도감의궤』와 같다.<ref>김경록, 위의 논문, 94~96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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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신(使臣)을 접대하였으며 조선 초부터 별도의 기록을 유지했다.<ref>『태조실록』 6권, 태조 3년 7월 15일 임자 1번째 기사, ‘명나라 사신에 의탁하여 폐단 끼치는 무리를 징계하다.’</ref> 주요 업무로 사신접대에 필요한 물품의 제조, 연회와 행사의 시행을 담당했다. 사신을 접대한 내용으로 『영접도감의궤(迎接都監儀軌)』를 작성하여 보관하였는데, 1643년(인조 21) 이후 제작되지 않았다. 이에 관하여 [[명|명(明)]] 멸망 이후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킨다는 입장 때문에 [[의궤]]를 작성하지 않고 [[등록|등록(謄錄)]]의 형식으로 작성하였다는 견해가 있다. 인조 이후의 사신접대 내역은 『[[칙사일기|칙사일기(勅使日記)]]』에 수록하였는데, 『[[칙사일기]]』는 체제와 내용이 『영접도감의궤』와 같다.<ref>김경록, 「朝鮮時代 使臣接對와 迎接都監」, 『한국학보』 30, 일지사, 2004, 94~97쪽.</ref>
  
 
===구성===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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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관원으로는 판서급의 원접사(遠接使)ㆍ관반(館伴)ㆍ[[제조|제조(提調)]] 등의 도청 당상(堂上)과 낭청(郎廳) 2~3인, 각 색에는 낭청 2~3인이 임명되었다.<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7675&cid=46622&categoryId=4662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영접도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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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인희, 「1609년 『영접도감미면색의궤(迎接都監米麵色儀軌)』의 중국 사신 접대 기명류(器皿類)」, 『石堂論叢』 64, 동아대학교 석당전통문화연구원, 2016.
 
* 송인희, 「1609년 『영접도감미면색의궤(迎接都監米麵色儀軌)』의 중국 사신 접대 기명류(器皿類)」, 『石堂論叢』 64, 동아대학교 석당전통문화연구원, 2016.
 
* 신병주, 「광해군 시기 의궤의 편찬과 그 성격」, 『南冥學硏究』 22,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06.
 
* 신병주, 「광해군 시기 의궤의 편찬과 그 성격」, 『南冥學硏究』 22,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06.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7675&cid=46622&categoryId=4662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영접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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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궁중기록화]]
 
[[분류:궁중기록화]]
 
[[분류:단체]]
 
[[분류:단체]]

2017년 11월 4일 (토) 11:00 기준 최신판

영접도감(迎接都監)
대표명칭 영접도감
한자표기 迎接都監
주요업무 중국사신 접대
담당업무 빈례
관련기관 예조(禮曹)



정의

조선시대 중국 사신을 접대하기 위하여 설치된 임시관서이다.

내용

업무

중국 사신(使臣)을 접대하였으며 조선 초부터 별도의 기록을 유지했다.[1] 주요 업무로 사신접대에 필요한 물품의 제조, 연회와 행사의 시행을 담당했다. 사신을 접대한 내용으로 『영접도감의궤(迎接都監儀軌)』를 작성하여 보관하였는데, 1643년(인조 21) 이후 제작되지 않았다. 이에 관하여 명(明) 멸망 이후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킨다는 입장 때문에 의궤를 작성하지 않고 등록(謄錄)의 형식으로 작성하였다는 견해가 있다. 인조 이후의 사신접대 내역은 『칙사일기(勅使日記)』에 수록하였는데, 『칙사일기』는 체제와 내용이 『영접도감의궤』와 같다.[2]

구성

사신접대의 업무는 도청(都廳)이 총괄하였으며, 그 아래에 각종 기구가 배속되었다. 하위기구로는 군색(軍色)응판색(應辦色)연향색(宴享色)미면색(米麵色)반선색(盤膳色)잡물색(雜物色)별공작(別工作)분공조(分工曹)분내자시(分內資寺)분내섬시(分內贍寺)분예빈시(分禮賓寺)가 있었다. 또한 수리소(修理所)전설사(典設司)사옹원(司饔院)장흥고(長興庫)제용감(濟用監)상의원(尙衣院)사축서(司畜署)태평관(太平館)과 업무를 협조하였다. 이상의 기구는 사신의 성격에 따라 빠지거나 추가되는 경우가 있었다.[3] 담당 관원으로는 판서급의 원접사(遠接使)ㆍ관반(館伴)ㆍ제조(提調) 등의 도청 당상(堂上)과 낭청(郎廳) 2~3인, 각 색에는 낭청 2~3인이 임명되었다.[4]

지식 관계망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영접도감 빈례 A는 B를 담당하였다 A ekc:administrates B
영접도감 영접례 A는 B를 담당하였다 A ekc:administrates B
영접도감 영접도감사제청의궤 A는 B를 편찬하였다 A dcterms:publisher B

시간정보

시간 내용
1609년 5월 영접도감사제청의궤를 편찬하였다

주석

  1. 『태조실록』 6권, 태조 3년 7월 15일 임자 1번째 기사, ‘명나라 사신에 의탁하여 폐단 끼치는 무리를 징계하다.’
  2. 김경록, 「朝鮮時代 使臣接對와 迎接都監」, 『한국학보』 30, 일지사, 2004, 94~97쪽.
  3. 김경록, 위의 논문, 97~101쪽.
  4. 영접도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네이버.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태조실록』
  • 김경록, 「朝鮮時代 使臣接對와 迎接都監」, 『한국학보』 30, 일지사, 2004.
  • 김경록, 「조선시대 서울의 외교활동 공간」, 『서울학연구』 31,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008.
  • 김상보, 이성우, 「조선왕조의 영접도감 반선색의궤에 관한 분석적 연구 : 1609년 1626년 1634년의 의궤를 중심으로」, 『韓國食生活文化學會誌』 6-4, 한국식생활문화학회, 1991.
  • 김상보, 이성우, 「조선왕조의 영접도감 연향색의궤에 관한 분석적 연구 : 익일연 별차담 및 두목연향상의 상차림과 그 찬품구성에 관하여(1609년 1634년 1643년의 의궤를 중심으로)」, 『韓國食生活文化學會誌』 7-1, 한국식생활문화학회, 1992.
  • 김상보, 이성우, 「조선왕조의 영접도감 연향색의궤에 관한 분석적 연구 : 찬품 및 재료와 그 분량에 관하여(1634년 1643년의 의궤를 중심으로)」, 『韓國食生活文化學會誌』 7-2, 한국식생활문화학회, 1992.
  • 김상보, 이성우, 「조선왕조의 영접도감 잡물색의궤에 관한 분석적 연구 : 식품의 재료와 소용기용에 관하여(1609년 1643년의 의궤를 중심으로) 」, 『韓國食生活文化學會誌』 7-2, 한국식생활문화학회, 1992.
  • 만명, 「중국에 소장된 조선 당案 유일본, 『조선영접천사도감도청의궤(朝鮮迎接天使都監都廳儀軌)』에 대한 재고」, 『大東文化硏究』 88,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4.
  • 송인희, 「1609년 『영접도감미면색의궤(迎接都監米麵色儀軌)』의 중국 사신 접대 기명류(器皿類)」, 『石堂論叢』 64, 동아대학교 석당전통문화연구원, 2016.
  • 신병주, 「광해군 시기 의궤의 편찬과 그 성격」, 『南冥學硏究』 22,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