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답사 남간정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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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스팟== | ==촬영 스팟== |
2017년 10월 8일 (일) 13:43 판
답사지 정보
남간정사
- 송시열이 1683년 만년에 능인암 아래에 건립한 서당으로, 송시열은 여기서 유림과 제자들을 모아 성리학을 강론하며 지냈다.
- 남간정사의 ‘남간’은 주자의 시구 ‘운곡남간’(雲谷南澗)에서 빌어온 말로 볕바른 곳에 졸졸 흐르는 개울을 뜻한다. 지금은 이 일대까지 시가지가 번져왔고 바로 옆으로 찻길이 지나가지만 예전에는 지금의 담 안쪽뿐 아니라 주변의 숲과 시내가 모두 남간정사의 뜨락이 되었을 것이다.
- 남간정사는 계곡에 있는 샘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건물의 대청 밑을 지나서 연못으로 흘러가게 하였는데, 이는 한국 정원 조경사에 새로운 조경방법이다.
- 남간정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네 칸은 대청이고 서쪽 두 칸은 방이며 동쪽 두 칸은 뒤쪽 한 칸이 방이고 앞쪽 한 칸에 대청과 연결된 누마루가 놓였다. 대청보다 한 단 높게 만들어진 이 누마루는 방에서 볼 때는 다락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아래쪽에 아궁이가 있다.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대청 밑으로 물길을 낸 점이다. 양쪽의 방은 축대 위에 세워졌고 대청은 다리 걸치듯 공중에 떠 있다. 그 아래로 집 뒤편 샘에서 나온 물이 흘러 앞쪽 연못으로 들어간다. 또 이 건물은 앞이 아니라 뒤쪽으로 출입하게 되어 있다.
기국정
기국정은 대전광역시 동구 소제동에 있던 송시열의 별당이다. 효종 5년(1654)에 송시열이 벼슬을 사양하고 내려와 있으면서 소제 방죽을 쌓고 그 연못가에 세웠던 건물로, 주변에 구기자와 국화가 무성하게 피어난다 하여 기국정(杞菊亭)이라 이름지어졌다. 일제강점기에 대전역을 지으면서 마을이 커져 소제 연못을 메우게 되자 1926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기국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기와집으로 왼쪽 네 칸은 대청, 오른쪽 뒤편의 한 칸 반은 방이고 앞쪽 반 칸은 대청보다 한 단 높은 누마루, 누마루 아래는 아궁이다. 방 바깥에 좁다란 툇마루가 달렸다.
남간사
남간정사 뒤쪽 높은 곳에 배치. 1924년 각 지방의 선비들이 기국정과 같이 시내 소제동에 있던 송시열의 고택을 이건하여 사당을 만들었다. 남간정사 뒤에 20단의 돌계단이 놓여 있고 이 계단을 오르면 현판없는 3칸대문이 있다. 문을 들어서면 횡으로 45척, 앞뒤 폭이 15척 정도의 뜰이 있는데 여기에 시멘트 보도블록을 격자로 깔아놓았다. 이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기단은 화강석을 잘다듬어 4단으로 층급쌓기를 하였다. 경사지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정면에만 기단석을 쌓고 측면과 뒤에는 토단으로 되어 있다.
촬영 스팟
- 드론 불가
- 파노라마 5
- 정문 앞
- 기국정 앞
- 남간정사 + 못 보이게
- 남간정사 뒷편
- 남간사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