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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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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년(영조 36)부터 1910년(융희 4)까지 국왕의 동정을 중심으로 국정 운영에 관해 매일 기록한 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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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9년 [[조선 세종]]의 명으로 [[정초]], [[변효문]] 등이 편찬한 조선의 실정에 맞는 농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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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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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직설]]의 편찬===
 
===[[농사직설]]의 편찬===

2017년 9월 21일 (목) 17:23 판

일성록(日省錄)
"일성록", 세계기록유산,『문화재청』online, 문화재청.
대표명칭 일성록
한자표기 日省錄
유형 고서
저자 조선 정조, 규장각
편자 규장각
간행시기 1760~1910년
시대 조선
소장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지정번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보 제153호


정의

1429년 조선 세종의 명으로 정초, 변효문 등이 편찬한 조선의 실정에 맞는 농서이다.

내용

농사직설의 편찬

농사직설(農事直說)은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1450) 때의 문신인 정초(鄭招, ?~1434), 변효문(卞孝文, 1396~?) 등이 왕명에 의하여 1429년(세종 11년)에 편찬한 농서(農書)로 조선의 실정에 맞는 농업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1]

농사직설의 편찬 배경

정초가 서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풍토가 다르면 농사의 법도 다르기 때문에 중국의 농서를 조선에 적용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므로 조선에 맞는 농사법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각지의 농군에게 그 방법을 물어 경험들을 수집한 농서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농사직설』은 우리나라 풍토에 맞는 농법을 기록한 최초의 책이며, 이후 간행된 농서들의 모범이 되었다. 편찬 직후 각 도의 감사(監司)와 주⋅부⋅군⋅현 및 경중(京中)의 2품 이상에게 널리 나누어 주고, 각 지방에서 활용하도록 하였다. 한편 판본을 거듭하면서 끊임없이 그 내용을 개수하고 증보하여, 실제 농법에 더 많이 적용할 수 있게 하였다. [2]

농사직설의 내용

내용은 비곡(備穀)⋅지경(地耕)⋅종마(種麻)⋅종도(種稻)⋅종서속(種黍粟)⋅종직(種稷)⋅종대두소두(種大豆小豆)⋅종맥(種麥)⋅종호마(種胡麻)⋅종교맥(種蕎麥)⋅ 등 10항목으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먼저 일반론으로서 종자와 토양을 다루는 법을 설명하고, 각론(各論)으로 각종 작물의 재배법을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보는 바와 같이 중요 곡식류에 국한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하였다는 한계가 있지만, 조선의 자주적인 농법을 편 농서로서 농업 기술의 변천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일성록 조선 정조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일성록 규장각 A는 B에 의해 저술되었다
일성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A는 B에 소장되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일성록 A는 B와 관련이 있다

시각 자료

영상

  • 일성록과 조선왕조실록, youtube, 게시일: 2014.10.16.

주석

  1. "농사직설", 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우리역사넷』online, 국사편찬위원회.
  2. "농사직설", 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우리역사넷』online, 국사편찬위원회.
  3. "농사직설", 교과서 속 이미지 자료,『우리역사넷』online, 국사편찬위원회.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연갑수, 「《日省錄》의 사료적 가치와 활용 방안」, 『민족문화』27, 한국고전번역원, 2004.
    • 홍순민, 「《日省錄》의 편찬 과정과 구성 원리」, 『민족문화』27, 한국고전번역원, 2004.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