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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6일 (토) 14:19 판

정약용 표준영정
한자명칭 丁若鏞 標準影幀
작가 장우성
제작시기 1974년
소장처 한국은행
유형 표준영정
크기(세로×가로) 120 x 84cm


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정약용(丁若鏞)의 모습을 그린 국가표준영정.

내용

한국은행이 제작한 표준영정

한국은행에서는 화폐인물로서 표준영정을 몇 점 제작하였는데, 을지문덕 표준영정, 이황 표준영정, 정몽주 표준영정 등이다. 정약용 표준영정 역시 이에 포함된다. 한국은행에서 제작한 이들 영정은 모두 반신상이며 좌측면상으로 제작되었다. 작품의 사이즈 역시 가로 84cm에 세로 120cm 안팎으로 거의 동일한 크기이다. 또한 하단 처리가 근대 사진처럼 안개에 싸인 듯 아스라이 사라지는 기법을 하고 있어 표준영정에서 반신상의 경우 영정 하단처리가 그라데이션으로 나타나는 전형을 보여준다.[1]

초상화 묘사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정약용 초상은 사방관과 흰 두루마기 차림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편 2009년 정약용의 유배지로 알려진 강진군에서는 정약용의 영정을 새로이 제작하였는데, 기존에 제작된 영정들이 정약용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으며 관모나 의상이 시대상과 맞지 않다는 지적을 수용하였다고 밝혔다. 즉 50세 전후의 다산의 생전모습을 화폭에 담기 위해 다산 후손인 '나주 정씨 월헌공파 종회'를 찾아 300명이 넘는 후손들의 인상을 직접 관찰했으며, 특히 직계후손 4명의 인상을 면밀히 살펴 그 특징을 이번 영정에 표현했다.
또 다산 관련 분석을 통해 어릴적 천연두를 앓은 흔적으로 인해 눈썹이 세갈래로 갈라진 '삼미자(三眉子)'라고 스스로 별호를 지었다는 기록, 방대한 독서량과 저술로 인해 시력이 많이 약해졌다는 기록도 참고했다.
다산이 입은 의복은 한국복식사의 권위자인 단국대 고부자 교수의 자문을 받아 당시의 의상을 재현했으며, 도포의 쪽빛을 표현하기 위해 강진지역에 식생하는 쪽을 구해 천연안료를 만들어 사용했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정약용 표준영정 표준영정 A는 B에 해당한다
정약용 표준영정 정약용 A는 B를 묘사하였다
정약용 표준영정 한국은행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정약용 표준영정 장우성 A는 B에 의해 그려졌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74년 정약용 표준영정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이영미, 「한국표준영정연구 -제도의 제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 109쪽.
  2. 안현주, "다산 정약용, 173년만에 초상화로 환생", 뉴시스, 『네이버 뉴스』online.
  3. 안현주, "다산 정약용, 173년만에 초상화로 환생", 뉴시스, 『네이버 뉴스』online.
  4. 안현주, "다산 정약용, 173년만에 초상화로 환생", 뉴시스, 『네이버 뉴스』online.

참고문헌

  1. 기사
  2. 논문
    • 이영미, 「한국표준영정연구 -제도의 제정과 변천과정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5년.
  3. 웹 자원

더 읽을거리

  • 전시도록
    • 문화체육부, 『표준영정도록-역사를 빛낸 선현』, 문화체육부, 1993.
    • 문화체육부, 『표준영정도록-역사를 빛낸 선현』, 문화체육부, 1999.
    •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월전의 붓끝, 한국화 100년의 역사』, 이천시립월전미술관, 2012.
  • 단행본
    • 장우성, 『월전회고록-화단풍상칠십년』, 미술문화, 2003.
  • 논문
    • 조인수, 「월전 장우성의 초상화」, 『제2회 월전학술포럼』발표자료집, 월전학술포럼, 2014, 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