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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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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대사 긍양靜眞大師 兢讓)은 878년([[신라 헌강왕|헌강왕]] 4)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왕씨(王氏)로 할아버지는 숙장(淑長), 아버지는 양길(亮吉)이고, 어머니는 김씨(金氏)이다. 긍양의 고조와 증조부 때부터 군읍(郡邑)의 토호였으므로, 집집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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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대사 긍양靜眞大師 兢讓)은 878년([[신라 헌강왕|헌강왕]] 4)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왕씨(王氏)로 할아버지는 숙장(淑長), 아버지는 양길(亮吉)이고, 어머니는 김씨(金氏)이다. 긍양의 고조와 증조부 때부터 군읍(郡邑)의 토호였으므로, 집집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rp0703&index_id=rp07030128&content_id=rp070301280001&search_left_menu=2 긍양]", 디지털 삼국유사 사전 박물지 시범개발,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원형라이브러리』<sup>online</sup></online></html>, 한국콘텐츠진흥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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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의 휘는 긍양(兢讓)이요, 속성은 왕씨(王氏)로 공주 출신이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숙장(淑長)이고, 아버지는 양길(亮吉)이니, 모두 인(仁)을 머리에 이고 의(義)를 실천하며 자신을 통달하려고 노력하였다. 덕(德)을 쌓으며 공덕을 풍부히 하였으므로, 그 음덕(蔭德)이 멀리 자손에까지 끼쳤다. 공무(公務)를 봉직함에는 사심(私心)없이 노력하였고, 청렴결백함은 비길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주리(州里)에서 장자(長者)라는 이름으로 존경하였고, 원근(遠近)에는 현인군자(賢人君子)라는 칭송이 자자하였다. 고조와 증조부 때부터 모두 군읍(郡邑)의 토호로서 집집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 그들의 행적은 여기에 싣지 않는다. 어머니는 김씨니, 가정과 사회(社會)에 끼친 공이 그를 필적(匹敵)할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부도(婦道)에 있어서도 규범(規範)이 있어 모범적인 주부였다. 머리를 잘라 팔아서 아들이 초대한 친구를 접대한 고사(故事)를 본받았으며,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짜던 베틀의 씨실과 날실을 모두 잘라서 아들이 중단한 공부를 독려한 것과 같이 자녀를 교육하였다. 따라서 불법승 삼보를 신봉하고, 시부모에게도 극진히 효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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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양의 어머니는 어느 날 밤 별이 흘러 와서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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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양의 어머니는 어느 날 밤 별이 흘러 와서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을 하였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rp0703&index_id=rp07030128&content_id=rp070301280001&search_left_menu=2 긍양]", 디지털 삼국유사 사전 박물지 시범개발,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원형라이브러리』<sup>online</sup></online></html>, 한국콘텐츠진흥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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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에 별이 흘러 와서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그 크기가 독만하고 빛은 황금색으로 매우 윤택하였다. 이 같은 태몽으로 인하여 임신하였다. 그 후부터 고기와 오신채(五辛菜)는 일절 먹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재계(齋戒)를 가지면서 계속 태교(胎敎)에 정성을 다하였다. 만삭이 되어 탄생하니, 대사는 타고난 모습이 특이하고 신채(神彩)가 영기(英奇)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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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양은 타고난 모습이 특이하였으며 어려서부터 나이든 사람과 같이 점잖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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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양은 타고난 모습이 특이하였으며 어려서부터 나이든 사람과 같이 점잖았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4&cp_code=rp0703&index_id=rp07030128&content_id=rp070301280001&search_left_menu=2 긍양]", 디지털 삼국유사 사전 박물지 시범개발, <html><online style="color:purple">『문화원형라이브러리』<sup>online</sup></online></html>, 한국콘텐츠진흥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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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五色)으로 찬란한 때때옷을 입을 때로부터 죽마(竹馬)를 타고 유희하는 나이에 이르러 비록 아이들과 장난을 하나, 마치 노성(老成)한 사람과 같이 음전하였다. 앉을 때에는 반드시 가부(跏趺)를 맺었고, 다닐 때에는 모름지기 합장하였다. 모래를 모아 불단(佛壇)을 만들고, 불상(佛像)을 모방하여 모시고는 향기로운 잎과 꽃을 따서 불전(佛前)에 공양을 올리곤 하였다. 글방에서 공부할 나이가 되어서는 날마다 경(經)을 수지 독송하였다. 시(詩)와 예(禮)는 이정(鯉庭)에서 배웠고, 강론(講論)은 전사(鱣肆)에서 들었다. 자못 절묘하게 뛰어난 세 가지 분야인 삼절(三絶)에 정통하여 그 이름이 모든 학파(學派), 곧 구류(九流)에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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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5일 (금) 23:15 판

긍양(兢讓)
BHST Monk1.png
대표명칭 긍양
한자 兢讓
생몰년 878(헌강왕 4)-956(광종 7)
시호 정진(靜眞)
탑호 원오(圓悟)
이칭 백암화상(伯巖和尙), 봉종대사(奉宗大師), 증공대사(證空大師)
성씨 왕씨(王氏)
출신지 충청남도 공주
승탑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
승탑비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비



정의

신라 말 고려 초의 승려.

내용

가계와 탄생

정진대사 긍양靜眞大師 兢讓)은 878년(헌강왕 4)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왕씨(王氏)로 할아버지는 숙장(淑長), 아버지는 양길(亮吉)이고, 어머니는 김씨(金氏)이다. 긍양의 고조와 증조부 때부터 군읍(郡邑)의 토호였으므로, 집집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1]

Quote-left.png 대사의 휘는 긍양(兢讓)이요, 속성은 왕씨(王氏)로 공주 출신이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숙장(淑長)이고, 아버지는 양길(亮吉)이니, 모두 인(仁)을 머리에 이고 의(義)를 실천하며 자신을 통달하려고 노력하였다. 덕(德)을 쌓으며 공덕을 풍부히 하였으므로, 그 음덕(蔭德)이 멀리 자손에까지 끼쳤다. 공무(公務)를 봉직함에는 사심(私心)없이 노력하였고, 청렴결백함은 비길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주리(州里)에서 장자(長者)라는 이름으로 존경하였고, 원근(遠近)에는 현인군자(賢人君子)라는 칭송이 자자하였다. 고조와 증조부 때부터 모두 군읍(郡邑)의 토호로서 집집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 그들의 행적은 여기에 싣지 않는다. 어머니는 김씨니, 가정과 사회(社會)에 끼친 공이 그를 필적(匹敵)할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부도(婦道)에 있어서도 규범(規範)이 있어 모범적인 주부였다. 머리를 잘라 팔아서 아들이 초대한 친구를 접대한 고사(故事)를 본받았으며,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짜던 베틀의 씨실과 날실을 모두 잘라서 아들이 중단한 공부를 독려한 것과 같이 자녀를 교육하였다. 따라서 불법승 삼보를 신봉하고, 시부모에게도 극진히 효도하였다. Quote-right.png
출처:


탄생설화

긍양의 어머니는 어느 날 밤 별이 흘러 와서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을 하였다.[2]

Quote-left.png 어느 날 밤에 별이 흘러 와서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그 크기가 독만하고 빛은 황금색으로 매우 윤택하였다. 이 같은 태몽으로 인하여 임신하였다. 그 후부터 고기와 오신채(五辛菜)는 일절 먹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재계(齋戒)를 가지면서 계속 태교(胎敎)에 정성을 다하였다. 만삭이 되어 탄생하니, 대사는 타고난 모습이 특이하고 신채(神彩)가 영기(英奇)하였다. Quote-right.png
출처:


유년기

긍양은 타고난 모습이 특이하였으며 어려서부터 나이든 사람과 같이 점잖았다.[3]

Quote-left.png 오색(五色)으로 찬란한 때때옷을 입을 때로부터 죽마(竹馬)를 타고 유희하는 나이에 이르러 비록 아이들과 장난을 하나, 마치 노성(老成)한 사람과 같이 음전하였다. 앉을 때에는 반드시 가부(跏趺)를 맺었고, 다닐 때에는 모름지기 합장하였다. 모래를 모아 불단(佛壇)을 만들고, 불상(佛像)을 모방하여 모시고는 향기로운 잎과 꽃을 따서 불전(佛前)에 공양을 올리곤 하였다. 글방에서 공부할 나이가 되어서는 날마다 경(經)을 수지 독송하였다. 시(詩)와 예(禮)는 이정(鯉庭)에서 배웠고, 강론(講論)은 전사(鱣肆)에서 들었다. 자못 절묘하게 뛰어난 세 가지 분야인 삼절(三絶)에 정통하여 그 이름이 모든 학파(學派), 곧 구류(九流)에 가득하였다. Quote-right.png
출처:


출가수행

활동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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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긍양", 디지털 삼국유사 사전 박물지 시범개발, 『문화원형라이브러리』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
  2. "긍양", 디지털 삼국유사 사전 박물지 시범개발, 『문화원형라이브러리』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
  3. "긍양", 디지털 삼국유사 사전 박물지 시범개발, 『문화원형라이브러리』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

참고문헌

  • 임세권, 『한국금석문집성 2: 고려4 비문4』, 한국국학진흥원, 2014. 온라인 참조: "한국금석문집성 20", 한국금석문집성 20: 고려4 비문4, 『KRpia - 한국의 지식콘텐츠』online, 누리미디어.
  • "봉암사정진대사원오탑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소.
  • 이지관,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문", 『교감역주 역대고승비문』고려편1,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4, 440-513쪽.
  •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긍양", 용어해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김위석, "긍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긍양",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긍양", 디지털 삼국유사 사전 박물지 시범개발, 『문화원형라이브러리』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