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기록화관 개관

"원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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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음이의어: 단삼(團衫)<ref>조선 초기 명나라로부터 사여된 관복 중 왕비의 상복으로 15세기 중반(1450년)부터 17세기 초반(1617년)에 걸쳐 기록되어 있으며, 1617년을 마지막으로 단삼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연대 차이는 있지만 통수에 스란 장식을 한 15세기 단삼과 17세기 원삼이 조형성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任賢珠(2011)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박사학위 논문, 경원대학교. pp. 32~34.), 대수(大袖)<ref>색이 있는 주(紬)를 마름질하여 만드니 제도는 시속의 당의(唐衣)와 같고 넓고 커서 길이는 무릎에까지 이른다. 단지 소매가 넓고 길어 2척 2촌【주척이다.】으로 몸에 두르니 일명 대수(大袖)라고 하며 혹은 원삼(圓衫)이라고도 일컫는다【즉, 《오례의(五禮儀)》에서는 본국의 장삼(長衫)이다.】.(李縡, 《四禮便覽》 卷8, 〈祭禮〉, “裁用色紬, 制如俗唐衣, 而寬大長至膝, 但袖大袖長二尺二寸【周尺】圜枝, 一名大袖, 或稱圓衫【卽󰡔五禮儀󰡕本國長衫.】”)</ref>, 대의(大衣)<ref>원삼은 즉 대의(大衣)이다. 색이 있는 견(絹)이나 혹은 주(紬)를 써서 만드는데 아래 제례삭참조에 보인다.(李縡, 《四禮便覽》 卷3, 〈喪禮, 襲〉, “卽大衣, 用色絹或紬爲之, 制見下祭禮朔參條.”)</ref>, 장오자(長襖子)<ref>《상례비요(喪禮備要)》에서 여자의 상에는 원삼이나 몽두의(蒙頭衣) 혹은 장오자(長襖子), 치마, 채색 신을 사용한다.(柳長源, 《常變通攷》 卷7, 〈喪禮〉, “《備要》女喪圓衫, 或蒙頭衣, 或長襖子, 裳, 彩鞋.”)</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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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음이의어: 단삼(團衫)<ref>조선 초기 명나라로부터 사여된 관복 중 왕비의 상복으로 15세기 중반(1450년)부터 17세기 초반(1617년)에 걸쳐 기록되어 있으며, 1617년을 마지막으로 단삼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연대 차이는 있지만 통수에 스란 장식을 한 15세기 단삼과 17세기 원삼이 조형성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任賢珠(2011)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박사학위 논문, 경원대학교. pp. 32~34.).</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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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수(大袖)<ref>이재의 《사례편람(四禮便覽)》: 색이 있는 주(紬)를 마름질하여 만드니 제도는 시속의 당의(唐衣)와 같고 넓고 커서 길이는 무릎에까지 이른다. 단지 소매가 넓고 길어 2척 2촌【주척이다.】으로 몸에 두르니 일명 대수(大袖)라고 하며 혹은 원삼(圓衫)이라고도 일컫는다【즉, 《오례의(五禮儀)》에서는 본국의 장삼(長衫)이다.】.(李縡, 《四禮便覽》 卷8, 〈祭禮〉, “裁用色紬, 制如俗唐衣, 而寬大長至膝, 但袖大袖長二尺二寸【周尺】圜枝, 一名大袖, 或稱圓衫【卽󰡔五禮儀󰡕本國長衫.】”)</ref>, 대의(大衣)<ref>원삼은 즉 대의(大衣)이다. 색이 있는 견(絹)이나 혹은 주(紬)를 써서 만드는데 아래 제례삭참조에 보인다.(李縡, 《四禮便覽》 卷3, 〈喪禮, 襲〉, “卽大衣, 用色絹或紬爲之, 制見下祭禮朔參條.”)</ref>, 장오자(長襖子)<ref>유득공의 《상변통고(常變通攷)》:《상례비요(喪禮備要)》에서 여자의 상에는 원삼이나 몽두의(蒙頭衣) 혹은 장오자(長襖子), 치마, 채색 신을 사용한다.(柳長源, 《常變通攷》 卷7, 〈喪禮〉, “《備要》女喪圓衫, 或蒙頭衣, 或長襖子, 裳, 彩鞋.”)</ref>
  
 
2) 기본 형태
 
2) 기본 형태

2017년 2월 1일 (수) 15:35 판


원삼(圓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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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원삼(圓衫)
이칭별칭 단삼(團衫), 대수(大袖), 대의(大衣), 장오자(長襖子)
착용신분 왕실, 궁중, 서민
착용성별 여성



정의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성 예복의 하나.

기원

여성이 착용한 단령에서 맞깃형태로 변천.

착용신분과 착용상황

  • 왕실의 황후, 황태자비, 왕비, 왕세자빈, 왕세손빈, 내외명부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착용범위가 넓고 조선시대 말에는 혼례복으로도 많이 입혀짐.
  • 조선 말기에 원삼은 비(妃), 빈(嬪)과 내외명부(內外命婦) 및 황후까지 착용- 황후는 황원삼(黃圓衫), 왕비는 홍원삼(紅圓衫), 공주와 반가 여인들은 녹원삼(綠圓衫)으로 신분에 따라 색을 구별.

내용

1) 동음이의어: 단삼(團衫)[1] , 대수(大袖)[2], 대의(大衣)[3], 장오자(長襖子)[4]

2) 기본 형태

  • 깃이 서로 마주하는 대금형(對衿形)의 맞깃 혹은 배자깃으로 불리는 깃이 달려있어 앞자락이 겹치지 않음.
  • 길이는 뒷길이 앞길보다 긴 전단후장(前短後長)이 대부분이며, 바닥까지 이르는 긴 포의 형태.
  • 겨드랑이 아래로 길게 트임이 있고 섶과 무가 없음.
  • 두리소매 형태의 넓은 소매가 달렸고, 소매 끝에는 색동과 백색의 한삼(汗衫)을 연결.
  • 여밈 방식은 고름이나 매듭단추가 달렸고, 길이가 매우 긴 별도의 대(帶)를 둘러 착용.

3) 시대별 특징

① 15~16세기 단령형 원삼(여성 단령)[5]

  • 품이 대체로 넉넉하거나 크게 제작해 남성 단령은 품이 대부분 50~70cm인 반면 이 시기의 원삼은 여자의 옷임에도 불구하고 80~102cm까지 품이 매우 넓은 유물 존재.
  • 소매모양이 직배래의 통수 형태로 한삼이 달렸거나 달았던 흔적이 발견: 한삼을 달기 위한 의도로 보여 예복의 용도를 뒷받침하는 증거, 남성 단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
  • 이시기 출토 유물의 절반 가량 흉배가 부착
  • 대대가 함께 출토, 도련에 선단이 둘러져 있음.

② 17세기 초중반의 원삼[6]

  • 변화가 심한 시기로 특별히 17세기 전반기에는 단령형 원삼(여성 단령)이 전형적인 원삼으로 변하는 과정: 단령과 원삼의 특징을 동시에 지닌 형태가 나타남.
  • 도련의 모양이 직선에서 곡선으로 바뀜.
  • 직배래의 통수형태였던 소매모양에 변화가 생기며 색동이 처음 등장.
  • 앞길에만 무가 있으며 뒷길은 무가 없이 안단을 둘러 원삼의 도련과 같은 형태로의 전환이 시작.
  • 홑옷 유지.
  • 깃이 교임의 단령 깃에서 점점 둥근 깃의 대금형 깃으로의 변화가 시작.
  • 원삼의 대와 유사한 대가 출토되었고, 흉배가 부착된 형태가 감소.

③ 17세기 후반~19세기 초반의 원삼.[7]

  • 깃 모양이 대금형의 원삼 깃으로 변화.
  • 예외가 있지만 두리소매가 등장하며 두 줄 색동과 한삼이 달린 형태로 변해가는 추세.
  • 도련선이 당의의 곡선과 같은 형태로 변화.
  • 전단후장(前短後長)의 강화.
  • 겹원삼이 등장.

④ 19~20세기 원삼[8]

  • 조선 후기로 가면서 원삼은 궁중 여성 및 사대부 부인의 예복이자 서민들의 혼례복으로 형태적인 이분화를 이루며 착용.
  • <가례도감의궤>에 의하면 왕비용 원삼은 없고 왕세자빈과 왕세손비의 녹원삼이 있으며, 실제로 왕자비나 공주‧외명부와 같은 높은 신분에서는 녹원삼을 예복으로 입음.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에는 왕비를 황후로 격상시켜 부르며 황원삼을 입도록 하고 황태자비는 홍원삼을 그 이하의 신분에서는 녹원삼을 입도록 함.
  • 민가의 혼례용 원삼은 왕실 복식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직금과 금박으로 장식한 궁중원삼과 달리 민가에서는 금장식이 배제되고 대신 소매에 색동의 수가 많아지며 직선미가 돋보이는 단순한 형태.
  • 궁중원삼은 전단후장형으로 길이가 매우 긴 특징을 보이며, 민가의 원삼은 길이가 짧은 편.
  • 궁중원삼은 소매가 매우 넓고 길며 두 줄의 색동과 한삼이 달리는 반면 민가의 원삼은 색동의 수가 정해진 양식이 없이 많이 달린다.
  • 원삼의 옆선과 도련의 형태가 점차 직선형으로 변화.
  • 겹원삼이 정착, 흑원삼만 홑.
  • 민가 원삼의 특징으로 길과는 다른 색의 깃과 고름을 달음.

주석

  1. 조선 초기 명나라로부터 사여된 관복 중 왕비의 상복으로 15세기 중반(1450년)부터 17세기 초반(1617년)에 걸쳐 기록되어 있으며, 1617년을 마지막으로 단삼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연대 차이는 있지만 통수에 스란 장식을 한 15세기 단삼과 17세기 원삼이 조형성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任賢珠(2011)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박사학위 논문, 경원대학교. pp. 32~34.).
  2. 이재의 《사례편람(四禮便覽)》: 색이 있는 주(紬)를 마름질하여 만드니 제도는 시속의 당의(唐衣)와 같고 넓고 커서 길이는 무릎에까지 이른다. 단지 소매가 넓고 길어 2척 2촌【주척이다.】으로 몸에 두르니 일명 대수(大袖)라고 하며 혹은 원삼(圓衫)이라고도 일컫는다【즉, 《오례의(五禮儀)》에서는 본국의 장삼(長衫)이다.】.(李縡, 《四禮便覽》 卷8, 〈祭禮〉, “裁用色紬, 制如俗唐衣, 而寬大長至膝, 但袖大袖長二尺二寸【周尺】圜枝, 一名大袖, 或稱圓衫【卽󰡔五禮儀󰡕本國長衫.】”)
  3. 원삼은 즉 대의(大衣)이다. 색이 있는 견(絹)이나 혹은 주(紬)를 써서 만드는데 아래 제례삭참조에 보인다.(李縡, 《四禮便覽》 卷3, 〈喪禮, 襲〉, “卽大衣, 用色絹或紬爲之, 制見下祭禮朔參條.”)
  4. 유득공의 《상변통고(常變通攷)》:《상례비요(喪禮備要)》에서 여자의 상에는 원삼이나 몽두의(蒙頭衣) 혹은 장오자(長襖子), 치마, 채색 신을 사용한다.(柳長源, 《常變通攷》 卷7, 〈喪禮〉, “《備要》女喪圓衫, 或蒙頭衣, 或長襖子, 裳, 彩鞋.”)
  5. 任賢珠(2011)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박사학위 논문, 경원대학교. pp. 51~85.
  6. 任賢珠(2011)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박사학위 논문, 경원대학교. pp. 85~99.
  7. 任賢珠(2011)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박사학위 논문, 경원대학교. pp. 99~120.
  8. 任賢珠(2011) 朝鮮時代 圓衫의 由來와 變遷過程 硏究. 박사학위 논문, 경원대학교. pp. 121~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