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음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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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 속 향음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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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의 지관(地官) 향대부조(鄕大夫條)에는 “향학(鄕學)에서 학업을 닦고 난 다음, 제후의 향대부가 향촌에서 덕행과 도예(道藝)를 고찰해 인재를 뽑아 조정에 천거할 때, 출향(出鄕)에 앞서 그들을 빈례(賓禮)로써 대우하고 일종의 송별 잔치를 베푼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향음례]]이다.
 
『[[주례]]』의 지관(地官) 향대부조(鄕大夫條)에는 “향학(鄕學)에서 학업을 닦고 난 다음, 제후의 향대부가 향촌에서 덕행과 도예(道藝)를 고찰해 인재를 뽑아 조정에 천거할 때, 출향(出鄕)에 앞서 그들을 빈례(賓禮)로써 대우하고 일종의 송별 잔치를 베푼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향음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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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음주의에 기록된 행례 절차는 고을의 관(官)이 주인이 되어 나이가 많고 덕과 조행(操行)이 있는 사람을 빈(賓)으로 삼아 주탁(酒卓)을 마련하여 읍양(揖讓)하는 예절을 지키며 주연을 베푼다. 주연이 끝나면 사정(司正)이 자리에서 나가 북향하여 서서 말하기를, “우러러 생각건대, 국가에서 옛날의 제도를 따라 예교(禮敎)를 숭상하여 지금 향음주례를 거행하게 되니, 오로지 음식(飮食)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무릇 우리들 어른과 어린이는 각자가 서로 권면하여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안으로는 규문(閨門)에 화목하고, 밖으로는 향당(鄕黨)에 친밀하며, 서로 훈고(訓告)하고, 서로 교회(敎誨)하여, 혹시 과실과 나태함으로써 그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하라.”라는 서사(誓詞)를 읽었다. 결국 향음례는 수령이 앞장서서 향중(鄕中)의 유덕자를 골라 베푸는 주연이되, 음주를 즐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례(酒禮)를 통한 예법의 훈련이기도 하였다.
 
향음주의에 기록된 행례 절차는 고을의 관(官)이 주인이 되어 나이가 많고 덕과 조행(操行)이 있는 사람을 빈(賓)으로 삼아 주탁(酒卓)을 마련하여 읍양(揖讓)하는 예절을 지키며 주연을 베푼다. 주연이 끝나면 사정(司正)이 자리에서 나가 북향하여 서서 말하기를, “우러러 생각건대, 국가에서 옛날의 제도를 따라 예교(禮敎)를 숭상하여 지금 향음주례를 거행하게 되니, 오로지 음식(飮食)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무릇 우리들 어른과 어린이는 각자가 서로 권면하여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안으로는 규문(閨門)에 화목하고, 밖으로는 향당(鄕黨)에 친밀하며, 서로 훈고(訓告)하고, 서로 교회(敎誨)하여, 혹시 과실과 나태함으로써 그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하라.”라는 서사(誓詞)를 읽었다. 결국 향음례는 수령이 앞장서서 향중(鄕中)의 유덕자를 골라 베푸는 주연이되, 음주를 즐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례(酒禮)를 통한 예법의 훈련이기도 하였다.
 
<ref>최호, "[http://folkency.nfm.go.kr/kr/topic/%ED%96%A5%EC%9D%8C%EC%A3%BC%EB%A1%80/5252 향음주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속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국립민속박물관.</ref>
 
<ref>최호, "[http://folkency.nfm.go.kr/kr/topic/%ED%96%A5%EC%9D%8C%EC%A3%BC%EB%A1%80/5252 향음주례]",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속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국립민속박물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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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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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관계정보===

2017년 8월 22일 (화) 13:15 판

사알
(司謁)
대표명칭 사알
한자표기 司謁
이칭 향음주례



정의

향촌의 선비·유생들이 향교·서원 등에 모여 학덕과 연륜이 높은 이를 주빈(主賓)으로 모시고 술을 마시며 잔치를 하는 향촌의례(鄕村儀禮)의 하나이다.

내용

문헌 속 향음례

주례 속 향음례

주례』의 지관(地官) 향대부조(鄕大夫條)에는 “향학(鄕學)에서 학업을 닦고 난 다음, 제후의 향대부가 향촌에서 덕행과 도예(道藝)를 고찰해 인재를 뽑아 조정에 천거할 때, 출향(出鄕)에 앞서 그들을 빈례(賓禮)로써 대우하고 일종의 송별 잔치를 베푼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향음례이다.

의례 속 향음례

향음주례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인 『의례』 향음주의조(鄕飮酒義條)에 의하면, 향음주란 향대부가 나라 안의 어진 사람을 대접하는 것으로, 향음주례를 가르쳐야 어른을 존중하고(尊長) 노인을 봉양하는(養老) 것을 알며, 효제(孝悌)의 행실도 따라서 실행할 수 있으며, 귀천의 분수도 밝혀지며, 주석(酒席)에서는 화락하지만 지나침이 없게 되어, 자기 몸을 바르게 해 국가를 편안하게 하기에 족하게 된다고 한다.

한국의 향음례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향음례를 실시했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1136년(인종 14)에 과거제도를 정비하면서 여러 주(州)의 공사(貢士)를 중앙으로 보낼 때 향음주례를 행하도록 규정한 일이 있다. 조선시대의 향음주례는 제도적으로 명나라 제도를 따랐으니, 세종이 집현전에 상정(詳定)하도록 명해 1474년(성종 5)에야 편찬을 완성했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와 더불어 일반화되었다.[1]

행사내용

향음주의에 기록된 행례 절차는 고을의 관(官)이 주인이 되어 나이가 많고 덕과 조행(操行)이 있는 사람을 빈(賓)으로 삼아 주탁(酒卓)을 마련하여 읍양(揖讓)하는 예절을 지키며 주연을 베푼다. 주연이 끝나면 사정(司正)이 자리에서 나가 북향하여 서서 말하기를, “우러러 생각건대, 국가에서 옛날의 제도를 따라 예교(禮敎)를 숭상하여 지금 향음주례를 거행하게 되니, 오로지 음식(飮食)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무릇 우리들 어른과 어린이는 각자가 서로 권면하여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안으로는 규문(閨門)에 화목하고, 밖으로는 향당(鄕黨)에 친밀하며, 서로 훈고(訓告)하고, 서로 교회(敎誨)하여, 혹시 과실과 나태함으로써 그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하라.”라는 서사(誓詞)를 읽었다. 결국 향음례는 수령이 앞장서서 향중(鄕中)의 유덕자를 골라 베푸는 주연이되, 음주를 즐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례(酒禮)를 통한 예법의 훈련이기도 하였다. [2]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향음례 주례 A는 B에 언급되었다
향음례 국조오례의 A는 B에 언급되었다
향음례 의례 A는 B에 언급되었다
향음례 오륜행실도 A는 B에 언급되었다

주석

  1. 금장태, "향음주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최호, "향음주례", 『한국민속대백과사전』online, 국립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