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기록화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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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31일 (화) 11:21 판


진주성싸움
강대운-진주성싸움(김시민)-1975s.jpg
작가 강대운
제작연도 1975년
규격 300호(290.9x197cm)
유형 전쟁, 조선
분류 유화
소장처 미상


개요

진주성싸움박정희 대통령 재임중인 1975년에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강대운 화백의 작품이다.
민족기록화 전승편 20작품 중 하나로, 임진왜란 중인 1592년 10월 1차 진주성싸움에서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이 3,800명의 관군과 2만여명의 백성들을 지휘하여 진주성을 공격하던 왜군을 격파하여 곡창지대인 호남 진출을 막아낸 장면을 담았다.

민족기록화 작품 시각화 예시

내용

일반적인 민족기록화의 경우 주요 장수나 아군을 중앙에 배치하여 중심으로 삼고 아군의 시점에서 적군의 공격을 막아내거나 추격하는 구도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경우 원근감을 이용하여 화폭을 상하로 이등분하여 하단의 중앙에는 일본의 전통 투구인 가부토를 쓴 귀신 모양을 한 왜장이 한손에는 흰 빛의 일본도를 치켜 들고 있는 장면이 화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왜장이 탄 말은 사나운 표정으로 울부짖고 있고, 왜장의 왼편에는 등 뒤에 여러 대의 화살을 맞고 고통스럽게 죽아 가는 왜병의 모습과 쓰려져 가는 말을 표현하였다.
오른편에는 불길에 휩싸여 말 발굽에 치이는 반라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왼편 하단에는 적병의 시신이 겹겹이 쓰러져 있는 모양을 짙은 색으로, 불화살 공격으로 화염속에 타들어 가는 왜병들의 모습을 붉은 색을 사용하여 강렬하게 표현하였다. 그림 전체에서 왜군들은 반라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1차 진주성싸움에서 왜군은 대나무로 만든 사다리와 나무 방패를 이용하여 성을 공격하였는데, 이 작품의 여러 곳에서 대나무 방패 뒤에 숨어 성을 향해 조총을 발사하는 왜군과 사다리를 타고 성안으로 진입하려는 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림의 상단의 왼쪽 끝에는 푸른 색으로 칠해진 남강이 보이고 왜군의 주요 공격 지점이었던 동문과 북문을 두축으로 성을 공격하는 적군에 각종 무기로 반격하는 조선군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대나무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오르는 왜군을 향해 끊는 물을 붓고 화살을 아끼기 위하여 돌을 던지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김시민 장군은 백성들에게 군복을 입히고 군기(軍旗)를 여럿 세워 병력을 많아 보이게 하는 심리전을 걸었는데, 그림에서도 성안에 노랑,파랑,적색의 용대기들이 수 없이 나부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전경과 중경을 격퇴당하는 적군의 모습으로 가득 채우고 이를 검은 색의 거친 윤곽선과 전체적인 붉은 톤으로 묘사함으로써 보는 이의 긴장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널려있는 적군의 시체, 총포의 폭음과 인마(人馬)의 절규로 가득한 아비규환의 상황은 잔혹한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반감(反感)이나 비애가 아닌 적의 파멸을 통한 아군의 승리를 역으로 강하게 전달한다.[1]

관련 민족기록화

임진왜란 3대 대첩 배경 작품

추출정보

작품정보 연결망

관련항목

노드 관계 노드
강대운-진주성싸움 ~에 의해 그려지다 강대운

시간정보

중심 시간정보명 시간값
강대운-진주성싸움 제작연도 1975년

참고문헌

  • 박혜성, 「1960-1970년대 민족기록화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년.

주석

  1. 박혜성, 「1960-1970년대 민족기록화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3년, 92-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