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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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9일 (금) 20:17 판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求禮 鷰谷寺 玄覺禪師塔碑)
BHST Stele.png
대표명칭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영문명칭 Stele for Master Hyeongak at Yeongoksa Temple, Gurye
한자 求禮 鷰谷寺 玄覺禪師塔碑
주소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1017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152호
문화재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찬자 왕융(王融)
서자 장신원(張信元)
각자 미상
서체 해서(楷書)
승려 현각선사(玄覺禪師)



정의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연곡사(鷰谷寺)에 있는 고려시대 승려 현각선사(玄覺禪師)의 탑비.

내용

개요

고려 전기의 승려 현각선사(玄覺禪師)를 기리기 위해 979년(경종 4)에 건립되었다.[1] 임진왜란 당시 비의 몸체가 없어져 현재는 귀부(龜趺)이수(螭首)만이 남아 있다. 이수 앞면 가운데에는 ‘玄覺王師碑銘(현각왕사비명)’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이 비의 주인이 현각선사임을 알 수 있다.[2]

비문은 왕융(王融)이 지었고, 장신원(張信元)이 썼다고 전한다. 글씨는 2㎝ 정도의 해서로 구양순체(歐陽詢體)를 바탕으로 하면서 자형을 바르게 하였다.[3]

비를 받치고 있는 돌거북은 부리부리한 두 눈과 큼직한 입이 웅장하며, 수염을 가진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에는 안상과 꽃조각이 새겨져 있다. 이수에는 여러 마리의 용의 서로 얽힌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4]

비는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손상을 입은 것이 풍화로 파손이 되고, 그 뒤에는 구한말 의병항쟁 때 일본군의 방화와 약탈 등으로 더 손상이 된 것을, 1970년에 떨어진 조각들을 모아 붙여 놓았다고 한다.[5] 한국전쟁 때 생긴 피탄 자국이 받침돌과 머릿돌 뒷부분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으며, 현재의 탑비는 귀부의 머리 부분과 몸통 부분이 조각난 것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6]

현재 비는 조각만 남아 있고 146자만 남은 비문의 탁본 일부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보물 제152호로 지정되었다.[7]

비문

사라진 비의 몸체에는 현각선사의 일대기가 적혀있으며, 비문을 지은 사람, 쓴 사람이 나와있다.[8]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구례 연곡사 A는 B에 있다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현각선사 A는 B를 위한 비이다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왕융 A는 B가 비문을 지었다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장신원 A는 B가 비문을 썼다

시각자료

영상

주석

  1. 정충락,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3. 정충락,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보물 152호)", 『Culture & History Traveling』online.
  5. 하주성, "일본의 만행으로 인해 훼손된 보물 현각선사탑비", 『ohmynews』online. 작성일: 2010년 11월 08일.
  6. "(보물 제152호)연곡사 현각선사탑비", 관광명소, 『구례여행』online, 문화관광.
  7. "석불좌상",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원.
  8. 하주성, "일본의 만행으로 인해 훼손된 보물 현각선사탑비", 『ohmynews』online. 작성일: 2010년 11월 08일.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