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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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BorimsaVairocana.jpg | |사진 = BorimsaVairocana.jpg | ||
− | |대표명칭 = | + | |대표명칭 =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
− | |한자 = 長興 寶林寺 | + | |한자 = 長興 寶林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
|영문 = Iron Seated Vairocana Buddha of Borimsa Temple, Jangheung | |영문 = Iron Seated Vairocana Buddha of Borimsa Temple, Jangheung | ||
|이칭 = | |이칭 = |
2016년 12월 27일 (화) 21:20 판
정의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의 주불.
개요
좌상의 높이는 2.51m, 무릎 너비 l.97m이다. 보림사의 대적광전에 모셔진 철제 불상으로, 현재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는 없어지고 불신(佛身)만 남아 있다.[1]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는 철불과 비로자나불은 선종(禪宗) 사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명문이 있어 조성 연대와 배경을 정확히 알려주는 것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선종 구산(九山)의 하나인 가지산파(迦智山派)가 개창되었던 보림사(寶林寺)의 철불이다. 철불의 왼팔 뒷면에는 헌안왕(憲安王) 2년(858년)에 김수종이 왕의 허락을 받아 불상을 조성했다는 명문이 적혀 있다. 이 명문을 통해 신라 하대(下代)에는 중앙의 지원 없이 지방 유지가 개인 재산을 들여 불상을 조성할 정도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인지 이 시기에 지방에서 조성된 불상들은 고가의 비용이 소요되는 금동불보다는 철불이 많고 조각 양식도 지방색이 강한 점이 특징이다. 또 조각 양식도 중앙 양식에서 벗어나 대중의 정서에 부합되는 민예적인 친밀감이 느껴지는 이른바 '지방 양식'이 많다.[2] 그리고 보조선사탑비(普照禪師塔碑)에는 859년 부수(副守) 김언경(金彦卿)이 사재를 들여 2,500근의 노사나불(盧舍那佛)을 주성하였다고 한다. 위의 두 기록을 종합해보면, 이 불상은 858년에 착수되어 859년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3]
명문 보러가기
갤러리
- BorimsaVairocana side.jpg
옆에서 본 모습
- BorimsaVairocana head.jpg
불두
- BorimsaVairocana hand.jpg
지권인
- BorimsaVairocana inscription.jpg
비로자나불좌상 조상기
같이 보기
주석
- ↑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인용.
- ↑ 강우방, 곽동석, 민병찬, 한국 美의 재발견 - 불교 조각 II, 솔출판사, 2005, 114쪽.
- ↑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온라인 서비스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