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동 별서정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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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별서정원]]은 남아 있던 유구와 옛 기록에 근거하여 2008년 강진군에서 복원을 시작하여 복원이 완료되었다. 현재는 한국전쟁 이후에 다시지어 살림집으로 쓰던 낡은 본채를 헐고 중건하는 일과 화단의 식재, 주변 공간의 정리 및 진입로 정비만 남겨둔 상태다.<ref>박성우,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0/31/0200000000AKR20161031094400054.HTML?input=1195m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문화재로 지정 추진]", 『연합뉴스』, 작성일: 2016년 10월 31일.</ref><br/>
 
[[백운동 별서정원]]은 남아 있던 유구와 옛 기록에 근거하여 2008년 강진군에서 복원을 시작하여 복원이 완료되었다. 현재는 한국전쟁 이후에 다시지어 살림집으로 쓰던 낡은 본채를 헐고 중건하는 일과 화단의 식재, 주변 공간의 정리 및 진입로 정비만 남겨둔 상태다.<ref>박성우,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10/31/0200000000AKR20161031094400054.HTML?input=1195m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문화재로 지정 추진]", 『연합뉴스』, 작성일: 2016년 10월 31일.</ref><br/>
 
특히, 1812년 [[백운동 별서정원]]을 직접 방문했던 [[정약용]]은 제자 [[의선|초의]]에게 [[백운동도|「백운동도」]]와 [[다산도|「다산도」]]를 그리게 한 뒤 자신의 친필 시를 합첩한 [[백운첩|『백운첩(白雲帖)』]]과 백운동 5대 주인 [[이시헌]]이 엮어 정리한 [[백운세수첩|『백운세수첩(白雲世守帖)』]]은 초기 백운동의 모습을 재구성하는데 큰 밑바탕이 되었다.
 
특히, 1812년 [[백운동 별서정원]]을 직접 방문했던 [[정약용]]은 제자 [[의선|초의]]에게 [[백운동도|「백운동도」]]와 [[다산도|「다산도」]]를 그리게 한 뒤 자신의 친필 시를 합첩한 [[백운첩|『백운첩(白雲帖)』]]과 백운동 5대 주인 [[이시헌]]이 엮어 정리한 [[백운세수첩|『백운세수첩(白雲世守帖)』]]은 초기 백운동의 모습을 재구성하는데 큰 밑바탕이 되었다.
 
===공간 구성===
 
====외원 공간====
 
[[백운동 별서정원]]은 [[백운첩]]에서 [[정약용]]이 꼽은 백운동 12경 중 9경이 배치되어 있다.<br/>
 
[[백운동 별서정원]]에는 차폐림 구실을 하는 동백나무와 비자나무 등 상록수림과 짚옆을 흐르는 계류에 의해 아래쪽 안운마을과는 이중으로 차단되어 있다. 이는 [[정약용]]이 [[백운첩]]에서 백운동 제2경으로 꼽은 산다경의 '유차성음'에 해당된다.<br/>
 
산다경의 동백나무 숲길이 끝나면서 계류와 만나는 지점에 놓인 큰 바위에는 '白雲洞'이란 세 글자가 암각되어 있다. 글씨는 [[백운동 별서정원]]의 입산조인 [[이담로]]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br/>
 
진입 공간인 산다경이 끝나는 지점에서 계류와 만나는데 이는 제4경 홍옥폭이다. 계류를 지나면 대문을 만나기 전에 옆으로 길게 뻗은 절벽이 있는데, 이는 제6경인 창하벽이다. 창하벽이 끝나는 지점에 백운동 별서의 대문이 나타난다.<br/>
 
창하벽의 상부는 대문 안쪽 내원에서 보면 하단 끝에 둘러쳐진 담장 너머 굽어 도는 길을 따라 난 제11경 정선대 공간이다. 정선대 옆에 낙락장송의 소나무 군락은 제7경 정유강이다. 대문 뒤 내원에서 볼 때 솟은 창하벽의 꺾인 북면은 제10경 풍단이다. 정선대 위에서는 붂쪽으로 다산이 백운동 제1경으로 꼽은 월출산 옥판봉의 일렬로 늘어선 암봉이 시야에 잡힌다.<br/>
 
계류 반대편인 내원의 왼쪽 담장 밖은 제12경 [[운당원]]이 자리잡았다. 상당히 넓은 구역에 걸쳐 대밭이 조성되어 있다.<br/>
 
외원을 구성하는 마지막 요소는 본채 담장 뒤편 공간으로, 집 둘레와 비탈로 오르는 언덕이 제3경 백매오다.
 
 
====내원 공간====
 
  
 
==시각자료==
 
==시각자료==

2017년 4월 23일 (일) 23:33 판

백운동 별서정원()
[[file:|270px|thumb|center|]]
대표명칭 백운동 별서정원
유형 정원


정의

백운동 별서정원월출산 옥판봉 남쪽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안운마을에 자리잡은 전통 정원으로, 입산조인 이담로(李聃老)가 중년에 조성하여 만년에 둘째 손자 이언길(李彦吉)을 데리고 들어와 살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2대에 걸쳐 이어져온 유서 깊은 생활공간이다.[1]
백운동 별서정원담양소쇄원, 보길도세연정과 더불어, 호남 3대 정원으로 불린다.

설명

백운동주 계보

역대 백운동주 가운데 뚜렷한 행적을 남긴 사람은 많지 않다. 입산조 이담로와 그의 손자 이언길백운동 별서정원을 처음 경영하였고 오늘의 모습으로 일군 주역이다. 조부의 유언에 따라 제2대 백운동 별서정원의 주인이 된 이언길은 84세의 장수를 누리면서 이 공간을 평생에 걸쳐 정성을 쏟아 가꾸었다.
이담로 시대에 별서였던 이곳은 이언길의 만년인 1756년 이후 온 가족이 이거하면서 생활 주거 공간으로 탈바꿈했다.[2]
현재 백운동 별서정원은 11대 동주인 이승현에 이르기까지 13대째 직계의 후손으로만 한 줄기로 대를 이어 지켜오고 있다.[3]

복원

백운동 별서정원은 남아 있던 유구와 옛 기록에 근거하여 2008년 강진군에서 복원을 시작하여 복원이 완료되었다. 현재는 한국전쟁 이후에 다시지어 살림집으로 쓰던 낡은 본채를 헐고 중건하는 일과 화단의 식재, 주변 공간의 정리 및 진입로 정비만 남겨둔 상태다.[4]
특히, 1812년 백운동 별서정원을 직접 방문했던 정약용은 제자 초의에게 「백운동도」「다산도」를 그리게 한 뒤 자신의 친필 시를 합첩한 『백운첩(白雲帖)』과 백운동 5대 주인 이시헌이 엮어 정리한 『백운세수첩(白雲世守帖)』은 초기 백운동의 모습을 재구성하는데 큰 밑바탕이 되었다.

시각자료

360 VR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설록다원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A는 B와 관련이 있다
이시헌 백운동 별서정원 A는 B의 주인이었다
백운첩 백운동 별서정원 A는 B와 관련이 있다
설록다원강진 아모레퍼시픽 A는 B와 관련이 있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4.7419353 126.6975985 백운동 별서정원은 백운동 별서정원과 관련이 있다
34.7406953 126.7047464 설록다원강진은 백운동 별서정원과 관련이 있다

참고문헌

  • 정민,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글항아리, 2015.

주석

  1. 정민,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글항아리, 2015, 12쪽.
  2. 정민,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글항아리, 2015, 73쪽.
  3. 정민,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글항아리, 2015, 80쪽.
  4. 박성우,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문화재로 지정 추진", 『연합뉴스』, 작성일: 2016년 10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