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천전리 각석"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공간정보 |명칭 = 울주 천전리 각석 |대표명칭 = 울주 천전리 각석 |이칭/별칭 = (한자) 川前里 刻石 |유형 = 국보 제147호 |성격 = 암각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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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암각화 | |성격 = 암각화 | ||
|소재지 = 경상북도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207-8 | |소재지 = 경상북도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207-8 | ||
− | |관련 문화재 = | + | |관련 문화재 = 반구대 암각화, 반구서원 유허비,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 |
− | |image = | + | |image = 울주전천리각석.jpg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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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및 현황== | ==유래 및 현황== | ||
− | 천전리 각석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 207-8번지 에 위치하고 있다. 태화강 의 지류인 대곡천 (大谷川) 중류 강안 암벽지대로, 이 지역은 울산 과 경주 를 잇는 길목지대에 해당되어 울산·언양 일대의 물자가 경주로 운반되는 교통로이다.1970년 12월인데 동국대학교 불적조사단이 불교유적의 답사를 위해 언양 주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岩刻畵〕와 함께 확인되었다. 태화강 의 지류인 대곡천변의 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끝자락에 있는 바위로, 앞면은 정면으로 15도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대곡천 건너편에는 공룡발자국화석(울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6호)이 약 1,750㎡의 면적에 걸쳐서 발견되었으며, 반구대 암각화가 새겨진 위쪽 구릉에는 기와를 비롯해서 삼국시대 이래의 유물들이 채집되었다.각석은 암질은 적색 셰일이고 너비 9.5m, 높이 2.7m의 크기로, 내용상 선사시대 점각 기하학적 문양(點刻幾何學的文樣)과 각종 동물상이 새겨진 상부와,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선각화(線刻畫)와 명문이 있는 하부로 나눌 수 있는 데, 바위 그림의 상부의 문양은 주로 쪼기〔彫琢〕기법을 썼으며 하부는 긋기〔線刻〕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것은 제작시대 및 제작집단이 달랐음을 뜻한다.상부의 기하학적 문양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마름모꼴무늬·굽은무늬·둥근무늬·우렁무늬·십자무늬·삼각무늬 등이 홑이나 겹으로, 혹은 상·하·좌·우 연속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이들 기하학적 문양은 대개 직선보다 곡선이 많고 상징성을 띠는 것이 많아 명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가장 많이 새겨진 것은 마름모꼴무늬로 홑무늬·겹무늬 외에 연속문이 있다. 연속문에는 가로·세로로 겹친 것과 한 무늬 내부에 같은 무늬가 두 겹·세 겹 반복되거나 점이나 빗금이 있는 것도 있다.굽은무늬에는 가로굽은무늬와 세로굽은무늬가 있다. 원시문양에서 이들은 각기 물결과 뱀을 상징한다. 상부 오른쪽 끝의 열매를 꿴 화살모양의 무늬는 암수의 결합을 의미하는 문양으로 해석되기도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상부의 이와 같은 문양들은 본질적으로 신석기시대 무늬토기의 기하학문양과 연결된다. 표현이 단순, 소박하면서도 명쾌한 무늬토기 문양양식을 이어받아 청동기시대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문양은 곡식이나 음식물 등이 항상 풍요롭기를 바라는 청동기시대인의 기원을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동물상은 대부분 상부 왼편에 있다. 사슴종류가 압도적으로 많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동물과 물고기·새 등이 있다. 사슴은 대개 암수 2마리가 서서 마주보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한 쌍으로 표현된 사슴 중 수사슴은 뿔이 매우 크고 가지가 무성해 순록의 일종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크기가 작은 사슴들은 신체의 특징이 각기 다르게 표현되어 염소나 말 등 다른 동물로 볼 수 있는 것도 여러 마리 있다.상부 중심부에는 도안화된 얼굴의 한 인물과 태양을 나타낸 듯한 둥근 문양의 좌우로 4마리의 사슴이 뛰어가는 모습을 새겨놓았다. 이는 당시의 어떤 종교의식이나 신앙관념과 관련있는 표현으로 보인다.이들 동물상과 기하학 문양 사이에는 곡식 이삭이나 풀뿌리·꽃봉오리를 나타낸 한 문양도 있으나 상징성을 띤 기하학 문양의 변형으로 볼 수도 있다.석각 상부문양 제작집단의 종교신앙과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상부 왼편 끝에 보이는 인두수신상(人頭獸身像)이다. 이 동물상은 부드러운 얼굴을 한 사람의 머리와 사슴을 닮은 몸체가 결합된 모습을 하고 있다.이것은 선사인이 믿고 숭배하던 신수(神獸)의 하나로 생각되며 반인반수(半人半獸) 관념의 기원과 관련해 중요하게 평가되는 자료이다. 그 밖에도 몸체가 긴 2마리의 동물이 교미를 하는 듯 돌아서서 꼬리를 맞댄 채 서있는 모습이 2군데 보인다. 어떤 동물을 나타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상부 왼편에는 상어를 나타낸 듯 꼿꼿한 지느러미가 여러 개 있는 물고기 2마리와 주둥이와 비늘까지 표현된 물고기 1마리, 붕어모양의 물고기 1마리가 각기 새겨져 있다.인물상은 뚜렷이 파악되는 것이 모두 7군데이다. 얼굴만 묘사된 것과 전신을 나타낸 것 등 두 종류가 있다. 모두 원시암각화 특유의 극도로 단순화된 표현법을 쓰고 있어 사실성이 약하며, 일면 괴상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얼굴상은 대부분 원시종교의식과 관련된 탈을 연상시킨다. 눈·코·입이 뚜렷이 새겨진 얼굴상 하나는 시베리아 아무르강유역 암벽조각에 새겨진 원시탈과 유사해 흥미를 끈다. 이 지역과의 문화적 연계성, 주민의 이동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석각 하부는 선각화와 명문이 뒤섞여 있다. 대개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선각화는 인물·기마행렬도를 비롯해 환상적인 동물들과 자연계의 동물, 크고 작은 배가 항해하는 모습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명문에는 영랑(永郎)·금랑(金郎)·정광랑(貞光郎) 등 신라 화랑의 명칭을 비롯해 관명·직명·인명 등이 여럿 새겨져 있어 신라사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선각화는인물·기마행렬도는 3군데 보인다. 이 중 하부 중앙 제2행렬도의 한 기마인물은 눈·코·입을 점으로 찍어 표현하고 얼굴 윤곽을 마름모꼴로 처리한 것이 신라의 토용(土俑)이나 토기선각화 중 인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굴과 흡사해 주목된다.상부 왼편 제3행렬도의 말은 질주하는 순간의 모습이 간략한 몇 개의 선만으로 잘 표현되어 제작자의 빼어난 표현감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환상적인 동물로는 용으로 보이는 것이 여러 마리 새겨져 있다. 특히, 하부 오른편 끝에 새겨진 용은 머리를 쳐들고 왼편을 향해 허공을 날아가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몸체의 지느러미와 비늘, S자형으로 휘며 뒤로 뻗은 꼬리부분 등이 세심하게 처리되어 있어 언뜻 고구려 중기 고분벽화의 사신도(四神圖)에 보이는 청룡을 연상시키는 측면도 지니고 있다.자연계의 동물로는 말이 홀로, 혹은 군마(群馬)의 형태로 묘사되었고, 새도 여러 마리 새겨져 있다. 그 밖에 큰 돛을 단 범선과 사람이 노를 젓고 있는 용머리의 배는 당시 신라인의 해상활동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이다.명문에는 명문 중 확인된 글자는 800자가 넘는다. 상부 오른편의 원명(原銘)과 그 왼편의 추명(追銘)이 내용의 중심을 이루고 있고 그 밖에 제명(題銘)이 다량 보인다. 원명이 새겨진 기사년은 신라 법흥왕 12년(525), 추명에 새겨진 기미년은 법흥왕 26년(539)으로 추정된다.뒤의 추명은 왕과 왕비가 이곳을 찾은 것을 기념해 기록했음을 밝히고 있어 6세기경의 신라사회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명문 중에는 사탁부(沙啄部)라는 부명이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이곳이 신라 6부의 하나인 사탁부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장소임을 뜻한다. 이곳은 사탁부의 고유 종교의식이 행해지던 성지(聖地)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 밖에도 제명에는 여러 화랑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당시 많은 화랑이 이곳을 찾아 도량(道場)으로 삼았음을 전해준다.이들 각석 하부의 명문과 각종 선각화는 신라 6부체제의 발전·변화과정과 내용을 규명해나가는데 주요한 실마리를 제시해주고 있으며, 앞으로 이에 대한 보다 종합적이고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 + | 천전리 각석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 207-8번지 에 위치하고 있다. 태화강 의 지류인 대곡천 (大谷川) 중류 강안 암벽지대로, 이 지역은 울산 과 경주 를 잇는 길목지대에 해당되어 울산·언양 일대의 물자가 경주로 운반되는 교통로이다.1970년 12월인데 동국대학교 불적조사단이 불교유적의 답사를 위해 언양 주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岩刻畵〕와 함께 확인되었다. 태화강 의 지류인 대곡천변의 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끝자락에 있는 바위로, 앞면은 정면으로 15도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대곡천 건너편에는 공룡발자국화석(울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6호)이 약 1,750㎡의 면적에 걸쳐서 발견되었으며, 반구대 암각화가 새겨진 위쪽 구릉에는 기와를 비롯해서 삼국시대 이래의 유물들이 채집되었다.각석은 암질은 적색 셰일이고 너비 9.5m, 높이 2.7m의 크기로, 내용상 선사시대 점각 기하학적 문양(點刻幾何學的文樣)과 각종 동물상이 새겨진 상부와,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선각화(線刻畫)와 명문이 있는 하부로 나눌 수 있는 데, 바위 그림의 상부의 문양은 주로 쪼기〔彫琢〕기법을 썼으며 하부는 긋기〔線刻〕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것은 제작시대 및 제작집단이 달랐음을 뜻한다.상부의 기하학적 문양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마름모꼴무늬·굽은무늬·둥근무늬·우렁무늬·십자무늬·삼각무늬 등이 홑이나 겹으로, 혹은 상·하·좌·우 연속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이들 기하학적 문양은 대개 직선보다 곡선이 많고 상징성을 띠는 것이 많아 명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가장 많이 새겨진 것은 마름모꼴무늬로 홑무늬·겹무늬 외에 연속문이 있다. 연속문에는 가로·세로로 겹친 것과 한 무늬 내부에 같은 무늬가 두 겹·세 겹 반복되거나 점이나 빗금이 있는 것도 있다.굽은무늬에는 가로굽은무늬와 세로굽은무늬가 있다. 원시문양에서 이들은 각기 물결과 뱀을 상징한다. 상부 오른쪽 끝의 열매를 꿴 화살모양의 무늬는 암수의 결합을 의미하는 문양으로 해석되기도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상부의 이와 같은 문양들은 본질적으로 신석기시대 무늬토기의 기하학문양과 연결된다. 표현이 단순, 소박하면서도 명쾌한 무늬토기 문양양식을 이어받아 청동기시대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문양은 곡식이나 음식물 등이 항상 풍요롭기를 바라는 청동기시대인의 기원을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동물상은 대부분 상부 왼편에 있다. 사슴종류가 압도적으로 많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동물과 물고기·새 등이 있다. 사슴은 대개 암수 2마리가 서서 마주보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한 쌍으로 표현된 사슴 중 수사슴은 뿔이 매우 크고 가지가 무성해 순록의 일종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크기가 작은 사슴들은 신체의 특징이 각기 다르게 표현되어 염소나 말 등 다른 동물로 볼 수 있는 것도 여러 마리 있다.상부 중심부에는 도안화된 얼굴의 한 인물과 태양을 나타낸 듯한 둥근 문양의 좌우로 4마리의 사슴이 뛰어가는 모습을 새겨놓았다. 이는 당시의 어떤 종교의식이나 신앙관념과 관련있는 표현으로 보인다.이들 동물상과 기하학 문양 사이에는 곡식 이삭이나 풀뿌리·꽃봉오리를 나타낸 한 문양도 있으나 상징성을 띤 기하학 문양의 변형으로 볼 수도 있다.석각 상부문양 제작집단의 종교신앙과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상부 왼편 끝에 보이는 인두수신상(人頭獸身像)이다. 이 동물상은 부드러운 얼굴을 한 사람의 머리와 사슴을 닮은 몸체가 결합된 모습을 하고 있다.이것은 선사인이 믿고 숭배하던 신수(神獸)의 하나로 생각되며 반인반수(半人半獸) 관념의 기원과 관련해 중요하게 평가되는 자료이다. 그 밖에도 몸체가 긴 2마리의 동물이 교미를 하는 듯 돌아서서 꼬리를 맞댄 채 서있는 모습이 2군데 보인다. 어떤 동물을 나타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상부 왼편에는 상어를 나타낸 듯 꼿꼿한 지느러미가 여러 개 있는 물고기 2마리와 주둥이와 비늘까지 표현된 물고기 1마리, 붕어모양의 물고기 1마리가 각기 새겨져 있다.인물상은 뚜렷이 파악되는 것이 모두 7군데이다. 얼굴만 묘사된 것과 전신을 나타낸 것 등 두 종류가 있다. 모두 원시암각화 특유의 극도로 단순화된 표현법을 쓰고 있어 사실성이 약하며, 일면 괴상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얼굴상은 대부분 원시종교의식과 관련된 탈을 연상시킨다. 눈·코·입이 뚜렷이 새겨진 얼굴상 하나는 시베리아 아무르강유역 암벽조각에 새겨진 원시탈과 유사해 흥미를 끈다. 이 지역과의 문화적 연계성, 주민의 이동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석각 하부는 선각화와 명문이 뒤섞여 있다. 대개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선각화는 인물·기마행렬도를 비롯해 환상적인 동물들과 자연계의 동물, 크고 작은 배가 항해하는 모습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명문에는 영랑(永郎)·금랑(金郎)·정광랑(貞光郎) 등 신라 화랑의 명칭을 비롯해 관명·직명·인명 등이 여럿 새겨져 있어 신라사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선각화는인물·기마행렬도는 3군데 보인다. 이 중 하부 중앙 제2행렬도의 한 기마인물은 눈·코·입을 점으로 찍어 표현하고 얼굴 윤곽을 마름모꼴로 처리한 것이 신라의 토용(土俑)이나 토기선각화 중 인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굴과 흡사해 주목된다.상부 왼편 제3행렬도의 말은 질주하는 순간의 모습이 간략한 몇 개의 선만으로 잘 표현되어 제작자의 빼어난 표현감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환상적인 동물로는 용으로 보이는 것이 여러 마리 새겨져 있다. 특히, 하부 오른편 끝에 새겨진 용은 머리를 쳐들고 왼편을 향해 허공을 날아가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몸체의 지느러미와 비늘, S자형으로 휘며 뒤로 뻗은 꼬리부분 등이 세심하게 처리되어 있어 언뜻 고구려 중기 고분벽화의 사신도(四神圖)에 보이는 청룡을 연상시키는 측면도 지니고 있다.자연계의 동물로는 말이 홀로, 혹은 군마(群馬)의 형태로 묘사되었고, 새도 여러 마리 새겨져 있다. 그 밖에 큰 돛을 단 범선과 사람이 노를 젓고 있는 용머리의 배는 당시 신라인의 해상활동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이다.명문에는 명문 중 확인된 글자는 800자가 넘는다. 상부 오른편의 원명(原銘)과 그 왼편의 추명(追銘)이 내용의 중심을 이루고 있고 그 밖에 제명(題銘)이 다량 보인다. 원명이 새겨진 기사년은 신라 법흥왕 12년(525), 추명에 새겨진 기미년은 법흥왕 26년(539)으로 추정된다.뒤의 추명은 왕과 왕비가 이곳을 찾은 것을 기념해 기록했음을 밝히고 있어 6세기경의 신라사회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명문 중에는 사탁부(沙啄部)라는 부명이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이곳이 신라 6부의 하나인 사탁부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장소임을 뜻한다. 이곳은 사탁부의 고유 종교의식이 행해지던 성지(聖地)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 밖에도 제명에는 여러 화랑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당시 많은 화랑이 이곳을 찾아 도량(道場)으로 삼았음을 전해준다.이들 각석 하부의 명문과 각종 선각화는 신라 6부체제의 발전·변화과정과 내용을 규명해나가는데 주요한 실마리를 제시해주고 있으며, 앞으로 이에 대한 보다 종합적이고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
==민족기록화와의 연관성== | ==민족기록화와의 연관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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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주 천전리 각석]] || ~이 주변에 있다 || [[반구대 암각화]] | | [[울주 천전리 각석]] || ~이 주변에 있다 || [[반구대 암각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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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7714&cid=42840&categoryId=42852 답사여행의 길잡이 4 - 충남 '삼화목장']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7714&cid=42840&categoryId=42852 답사여행의 길잡이 4 - 충남 '삼화목장'] |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599073&cid=51929&categoryId=54130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농협중앙회 한우개량사업소']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599073&cid=51929&categoryId=54130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농협중앙회 한우개량사업소'] | ||
+ | (출처: '울주 천전리 각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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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민족기록화]][[분류:공간]] | [[분류:민족기록화]][[분류:공간]] |
2016년 12월 25일 (일) 13:31 판
개요
울산과 경주 를 잇는 길목지대에 해당되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 207-8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천전리 각석은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 (大谷川) 중류의 강안 암벽지대로, 암질은 적색 셰일이고 너비 9.5m, 높이 2.7m의 크기로, 각석 상부에는 선사시대 점각 기하학적 문양(點刻幾何學的文樣)과 각종 동물상이 새겨져 있고, 각석 하부에는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선각화(線刻畫)와 명문이 새겨져 있다.
유래 및 현황
천전리 각석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 207-8번지 에 위치하고 있다. 태화강 의 지류인 대곡천 (大谷川) 중류 강안 암벽지대로, 이 지역은 울산 과 경주 를 잇는 길목지대에 해당되어 울산·언양 일대의 물자가 경주로 운반되는 교통로이다.1970년 12월인데 동국대학교 불적조사단이 불교유적의 답사를 위해 언양 주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岩刻畵〕와 함께 확인되었다. 태화강 의 지류인 대곡천변의 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끝자락에 있는 바위로, 앞면은 정면으로 15도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대곡천 건너편에는 공룡발자국화석(울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6호)이 약 1,750㎡의 면적에 걸쳐서 발견되었으며, 반구대 암각화가 새겨진 위쪽 구릉에는 기와를 비롯해서 삼국시대 이래의 유물들이 채집되었다.각석은 암질은 적색 셰일이고 너비 9.5m, 높이 2.7m의 크기로, 내용상 선사시대 점각 기하학적 문양(點刻幾何學的文樣)과 각종 동물상이 새겨진 상부와,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선각화(線刻畫)와 명문이 있는 하부로 나눌 수 있는 데, 바위 그림의 상부의 문양은 주로 쪼기〔彫琢〕기법을 썼으며 하부는 긋기〔線刻〕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것은 제작시대 및 제작집단이 달랐음을 뜻한다.상부의 기하학적 문양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마름모꼴무늬·굽은무늬·둥근무늬·우렁무늬·십자무늬·삼각무늬 등이 홑이나 겹으로, 혹은 상·하·좌·우 연속으로 나타나기도 한다.이들 기하학적 문양은 대개 직선보다 곡선이 많고 상징성을 띠는 것이 많아 명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가장 많이 새겨진 것은 마름모꼴무늬로 홑무늬·겹무늬 외에 연속문이 있다. 연속문에는 가로·세로로 겹친 것과 한 무늬 내부에 같은 무늬가 두 겹·세 겹 반복되거나 점이나 빗금이 있는 것도 있다.굽은무늬에는 가로굽은무늬와 세로굽은무늬가 있다. 원시문양에서 이들은 각기 물결과 뱀을 상징한다. 상부 오른쪽 끝의 열매를 꿴 화살모양의 무늬는 암수의 결합을 의미하는 문양으로 해석되기도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상부의 이와 같은 문양들은 본질적으로 신석기시대 무늬토기의 기하학문양과 연결된다. 표현이 단순, 소박하면서도 명쾌한 무늬토기 문양양식을 이어받아 청동기시대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문양은 곡식이나 음식물 등이 항상 풍요롭기를 바라는 청동기시대인의 기원을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동물상은 대부분 상부 왼편에 있다. 사슴종류가 압도적으로 많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동물과 물고기·새 등이 있다. 사슴은 대개 암수 2마리가 서서 마주보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한 쌍으로 표현된 사슴 중 수사슴은 뿔이 매우 크고 가지가 무성해 순록의 일종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크기가 작은 사슴들은 신체의 특징이 각기 다르게 표현되어 염소나 말 등 다른 동물로 볼 수 있는 것도 여러 마리 있다.상부 중심부에는 도안화된 얼굴의 한 인물과 태양을 나타낸 듯한 둥근 문양의 좌우로 4마리의 사슴이 뛰어가는 모습을 새겨놓았다. 이는 당시의 어떤 종교의식이나 신앙관념과 관련있는 표현으로 보인다.이들 동물상과 기하학 문양 사이에는 곡식 이삭이나 풀뿌리·꽃봉오리를 나타낸 한 문양도 있으나 상징성을 띤 기하학 문양의 변형으로 볼 수도 있다.석각 상부문양 제작집단의 종교신앙과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상부 왼편 끝에 보이는 인두수신상(人頭獸身像)이다. 이 동물상은 부드러운 얼굴을 한 사람의 머리와 사슴을 닮은 몸체가 결합된 모습을 하고 있다.이것은 선사인이 믿고 숭배하던 신수(神獸)의 하나로 생각되며 반인반수(半人半獸) 관념의 기원과 관련해 중요하게 평가되는 자료이다. 그 밖에도 몸체가 긴 2마리의 동물이 교미를 하는 듯 돌아서서 꼬리를 맞댄 채 서있는 모습이 2군데 보인다. 어떤 동물을 나타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상부 왼편에는 상어를 나타낸 듯 꼿꼿한 지느러미가 여러 개 있는 물고기 2마리와 주둥이와 비늘까지 표현된 물고기 1마리, 붕어모양의 물고기 1마리가 각기 새겨져 있다.인물상은 뚜렷이 파악되는 것이 모두 7군데이다. 얼굴만 묘사된 것과 전신을 나타낸 것 등 두 종류가 있다. 모두 원시암각화 특유의 극도로 단순화된 표현법을 쓰고 있어 사실성이 약하며, 일면 괴상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얼굴상은 대부분 원시종교의식과 관련된 탈을 연상시킨다. 눈·코·입이 뚜렷이 새겨진 얼굴상 하나는 시베리아 아무르강유역 암벽조각에 새겨진 원시탈과 유사해 흥미를 끈다. 이 지역과의 문화적 연계성, 주민의 이동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석각 하부는 선각화와 명문이 뒤섞여 있다. 대개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선각화는 인물·기마행렬도를 비롯해 환상적인 동물들과 자연계의 동물, 크고 작은 배가 항해하는 모습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명문에는 영랑(永郎)·금랑(金郎)·정광랑(貞光郎) 등 신라 화랑의 명칭을 비롯해 관명·직명·인명 등이 여럿 새겨져 있어 신라사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선각화는인물·기마행렬도는 3군데 보인다. 이 중 하부 중앙 제2행렬도의 한 기마인물은 눈·코·입을 점으로 찍어 표현하고 얼굴 윤곽을 마름모꼴로 처리한 것이 신라의 토용(土俑)이나 토기선각화 중 인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굴과 흡사해 주목된다.상부 왼편 제3행렬도의 말은 질주하는 순간의 모습이 간략한 몇 개의 선만으로 잘 표현되어 제작자의 빼어난 표현감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환상적인 동물로는 용으로 보이는 것이 여러 마리 새겨져 있다. 특히, 하부 오른편 끝에 새겨진 용은 머리를 쳐들고 왼편을 향해 허공을 날아가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몸체의 지느러미와 비늘, S자형으로 휘며 뒤로 뻗은 꼬리부분 등이 세심하게 처리되어 있어 언뜻 고구려 중기 고분벽화의 사신도(四神圖)에 보이는 청룡을 연상시키는 측면도 지니고 있다.자연계의 동물로는 말이 홀로, 혹은 군마(群馬)의 형태로 묘사되었고, 새도 여러 마리 새겨져 있다. 그 밖에 큰 돛을 단 범선과 사람이 노를 젓고 있는 용머리의 배는 당시 신라인의 해상활동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이다.명문에는 명문 중 확인된 글자는 800자가 넘는다. 상부 오른편의 원명(原銘)과 그 왼편의 추명(追銘)이 내용의 중심을 이루고 있고 그 밖에 제명(題銘)이 다량 보인다. 원명이 새겨진 기사년은 신라 법흥왕 12년(525), 추명에 새겨진 기미년은 법흥왕 26년(539)으로 추정된다.뒤의 추명은 왕과 왕비가 이곳을 찾은 것을 기념해 기록했음을 밝히고 있어 6세기경의 신라사회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명문 중에는 사탁부(沙啄部)라는 부명이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이곳이 신라 6부의 하나인 사탁부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장소임을 뜻한다. 이곳은 사탁부의 고유 종교의식이 행해지던 성지(聖地)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 밖에도 제명에는 여러 화랑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당시 많은 화랑이 이곳을 찾아 도량(道場)으로 삼았음을 전해준다.이들 각석 하부의 명문과 각종 선각화는 신라 6부체제의 발전·변화과정과 내용을 규명해나가는데 주요한 실마리를 제시해주고 있으며, 앞으로 이에 대한 보다 종합적이고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민족기록화와의 연관성
민족기록화는 김종필의 주도 하에 시작되고 진행된 사업이며 이는 삼화목장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민족기록화의 상당수가 새마을운동 관련 작품인데 삼화목장 역시 새마을운동에서 주도하였던 대한민국 축산업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가상현실
노드 및 관계 테이블
노드 | 관계 | 노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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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천전리 각석 | ~에 있다 |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
울주 천전리 각석 | ~이 주변에 있다 | 반구대 암각화 |
울주 천전리 각석 | ~이 주변에 있다 |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 |
울주 천전리 각석 | ~이 주변에 있다 | 울주 천전리 각석 |
참고
(출처: '울주 천전리 각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