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가십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7번째 줄: 7번째 줄:
  
  
고려사(高麗史)는 오백년간 사서(史書)에 기록되고 정표된 십여인에 불과한 효우편(孝友篇)에 선생을 포함하여 소개하고 있다.
+
고려사(高麗史)는 오백년간 사서(史書)에 기록되고 정표된 십여인에 불과한 효우편(孝友篇)에 [[서능]] 선생을 포함하여 소개하고 있다.
  
또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 장성현 영이조(長城縣靈異條)에 선생의 효행과 덕행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 때 편찬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는 타와도(墮蛙圖)와 함께 효도하는 그 정성에 하늘이 감동하니 감응의 신묘함은 헤아리기 어렵도다 라고 적고 있다.
+
또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 장성현 영이조(長城縣靈異條)에 [[서능]] 선생의 효행과 덕행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 때 편찬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는 타와도(墮蛙圖)와 함께 효도하는 그 정성에 하늘이 감동하니 감응의 신묘함은 헤아리기 어렵도다 라고 적고 있다.
  
선생은 우리나라에 주자학(朱子學)이 전해지기 전에 이미 유학(儒學)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행하신 선각자로서 모암(慕巖)에 초당(草堂)을 짓고 후학양성에 진력하시어 이 고장을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 되도록 그 초석을 놓고 다져 주셨다. 선생은 모친상을 당하여 진사(辰巳)년간 여막(廬幕)에 계셨는데 이 때 친척의 자제들이 찾아와 가르침을 받게 된 바 그 중에 나이 어려 예절을 모르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대한 례법(禮法)을 취하여 1257년(고종44년) 거가십훈(居家十訓)을 지어 문인(門人)들은 물론 향민(鄕民)들에게도 인간이 바르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깨우치게 하여 향풍(鄕風)을 순화시켰다.
+
[[서능]] 선생은 우리나라에 주자학(朱子學)이 전해지기 전에 이미 유학(儒學)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행하신 선각자로서 모암(慕巖)에 초당(草堂)을 짓고 후학양성에 진력하시어 이 고장을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 되도록 그 초석을 놓고 다져 주셨다. [[서능]] 선생은 모친상을 당하여 진사(辰巳)년간 여막(廬幕)에 계셨는데 이 때 친척의 자제들이 찾아와 가르침을 받게 된 바 그 중에 나이 어려 예절을 모르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대한 례법(禮法)을 취하여 1257년(고종44년) [[거가십훈]](居家十訓)을 지어 문인(門人)들은 물론 향민(鄕民)들에게도 인간이 바르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깨우치게 하여 향풍(鄕風)을 순화시켰다.
  
거가십훈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眞理)를 담은 교훈으로서
+
[[거가십훈]]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眞理)를 담은 교훈으로서
  
 
부식삼강(扶植三綱:삼강을 바로세워라)
 
부식삼강(扶植三綱:삼강을 바로세워라)
35번째 줄: 35번째 줄:
 
대인이서(待人以恕:다른 사람은 용서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대인이서(待人以恕:다른 사람은 용서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등 10덕목을 하나 하나 마음가짐과 행하는 길을 구체적으로 밣히고 있는데 이를 우리나라 가훈의 효시(嚆矢)로 손꼽고 있다. 이 거가십훈(居家十訓)을 통하여 우리는 선생께서 대학자요 위대한 실천가이며 앞날을 내다보신 선각자임을 알수 있고 도덕적 자품과 대인의 품모를 짐작할 수 있다.
+
등 10덕목을 하나 하나 마음가짐과 행하는 길을 구체적으로 밣히고 있는데 이를 우리나라 가훈의 효시(嚆矢)로 손꼽고 있다. 이 [[거가십훈]](居家十訓)을 통하여 우리는 [[서능]] 선생께서 대학자요 위대한 실천가이며 앞날을 내다보신 선각자임을 알수 있고 도덕적 자품과 대인의 품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선생의 행적은 앞에 든 기록외 에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오산명인록(鰲山名人錄) 장성읍지(長城邑誌)등 문헌에 상세히 기록되어 전해오고 있다.
+
이와 같은 [[서능]] 선생의 행적은 앞에 든 기록외 에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오산명인록(鰲山名人錄) 장성읍지(長城邑誌)등 문헌에 상세히 기록되어 전해오고 있다.

2024년 3월 4일 (월) 20:58 판

거가십훈(居家十訓)

「거가십훈」은 고려 고종 때 관료를 지냈던 서능이 시묘살이할 때 배우러 온 어린 자제 들이 예제를 알지 못하므로 만들어 가르쳤던 것이다. 모두 10조목으로 구성되었는데 사서 삼경을 참고하여 완성하였다. 「거가십훈」을 최초로 수록한 간본은 1578년 또는 직후에 간행된 「고려시중절효선생서공거가십훈」이다. 이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 있었다. 첫째, 「거가십훈」은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지켜나가야 할 규범과 덕목들로 구성되 어 있다. 참고한 문헌은 「논어」, 「맹자」, 「중용」, 「서경」, 「주역」 등 사서삼경이었다. 둘째, 저자는 「주자가례」에 대한 해석, 그리고 현실에 맞지 않는 주자의 상례에 대해 적합한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 내용은 「주자가례」가 13세기 전기에 이미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를 알려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셋째, 저자는 성균관 학생들을 지도하는 학록을 맡은 학자풍의 관료이자 효자였다. 넷째, 「거가십훈」을 만들었던 1232~3년은 조모상을 당해 시묘살이하던 중이었다. 다섯째, 1578년 혹은 그 직후에 간행된 「고려시중절효선생서공거 가십훈」과 후대 간본 및 족보에 전하는 내용은 문자의 차이가 제법 있다. 「고려시중절효선 생서공거가십훈」은 이들을 교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Geogasiphoon(거가십훈) was written by Seo Nung(서능) in 1232 and used to teach his young relatives who lacked the knowledge of proper customs. This family precepts of ten items was written, based on the teachings from the Seven Chinese Classics. The first printed book of Geogasiphoon was Goryousijoongjeorhyoseonsaeng- seogong-geogasiphoon(고려시중절효선생서공거가십훈) published in or immediately after 1578. As a result of this study, the following facts were found: First, Geogasiphoon consists of ten virtues and moral standards that people should keep in mind for their life. Seo Nung’s bibliography for the Seven Chinese Classics includes The Analects of Confucius(논어), The Works of Mencius(맹자), The Doctrine of the Mean(중용), The Canon of History(서경), and The Book of Changes(주역). Second, Seo Nung presented his interpretation of Joojagarye(주자가례) and alternative proposals against the improper funeral rites of Jooja(주자). This record documents that Joojagarye was first originated in the Song Dynasty(송) and later introduced to Korea in the early 13th century during the Goryo Dynasty. Third, Seo Nung was a government official, a dutiful son, and a professor at Sunggyoongwan(성균관). Fourth, he was guarding his grandmother’s grave from 1232 to 1233, during which he wrote Geogasiphoon. Fifth, since there are some variances in texts of Goryousijoong-jeorhyoseonsaengseogong- geogasiphoon printed in or immediately after 1578, its later editions and the genealogical tables of his family, this first printed edition helps correct the errors found in the later documents.


고려사(高麗史)는 오백년간 사서(史書)에 기록되고 정표된 십여인에 불과한 효우편(孝友篇)에 서능 선생을 포함하여 소개하고 있다.

또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 장성현 영이조(長城縣靈異條)에 서능 선생의 효행과 덕행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 때 편찬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는 타와도(墮蛙圖)와 함께 효도하는 그 정성에 하늘이 감동하니 감응의 신묘함은 헤아리기 어렵도다 라고 적고 있다.

서능 선생은 우리나라에 주자학(朱子學)이 전해지기 전에 이미 유학(儒學)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행하신 선각자로서 모암(慕巖)에 초당(草堂)을 짓고 후학양성에 진력하시어 이 고장을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 되도록 그 초석을 놓고 다져 주셨다. 서능 선생은 모친상을 당하여 진사(辰巳)년간 여막(廬幕)에 계셨는데 이 때 친척의 자제들이 찾아와 가르침을 받게 된 바 그 중에 나이 어려 예절을 모르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대한 례법(禮法)을 취하여 1257년(고종44년) 거가십훈(居家十訓)을 지어 문인(門人)들은 물론 향민(鄕民)들에게도 인간이 바르게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깨우치게 하여 향풍(鄕風)을 순화시켰다.

거가십훈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眞理)를 담은 교훈으로서

부식삼강(扶植三綱:삼강을 바로세워라)

돈서오륜(惇敍五倫:오륜을 돈독히 펴라)

관이어하(寬以御下:아래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라)

예이사상(禮以事上:윗사람은 예로서 섬겨라)

임상치애(臨喪致哀:상을 당하거든 슬픔을 다하라)

당제치경(當祭致敬:제사는 경건하게 모셔라)

지심이공(持心以公:마음은 항상 공평하게 가져라)

처사이의(處事以義:일 처리는 정의롭게 하라)

교자이정(敎子以正:자식은 바르게 가르쳐라)

대인이서(待人以恕:다른 사람은 용서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등 10덕목을 하나 하나 마음가짐과 행하는 길을 구체적으로 밣히고 있는데 이를 우리나라 가훈의 효시(嚆矢)로 손꼽고 있다. 이 거가십훈(居家十訓)을 통하여 우리는 서능 선생께서 대학자요 위대한 실천가이며 앞날을 내다보신 선각자임을 알수 있고 도덕적 자품과 대인의 품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서능 선생의 행적은 앞에 든 기록외 에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오산명인록(鰲山名人錄) 장성읍지(長城邑誌)등 문헌에 상세히 기록되어 전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