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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대(戀主臺)는 원래 의상대(義湘臺)라고 불렸습니다. 신라 고승 의상조사가 관악산의 수려함에 끌려 산정에 암자 의상대를 세웠다고 합니다. 의상대(義湘臺)라는 이름이 연주대(戀主臺)로 바뀐 것은 고려의 충신들 때문이었습니다. 고려가 멸망하자 강득용(康得龍)과 [[서견]](徐甄), 남을진(南乙珍), 조견(趙狷) 등 고려의 유신(遺臣)들은 관악산으로 은신을 했습니다.
 
연주대(戀主臺)는 원래 의상대(義湘臺)라고 불렸습니다. 신라 고승 의상조사가 관악산의 수려함에 끌려 산정에 암자 의상대를 세웠다고 합니다. 의상대(義湘臺)라는 이름이 연주대(戀主臺)로 바뀐 것은 고려의 충신들 때문이었습니다. 고려가 멸망하자 강득용(康得龍)과 [[서견]](徐甄), 남을진(南乙珍), 조견(趙狷) 등 고려의 유신(遺臣)들은 관악산으로 은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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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의상대에 올라 개성을 바라보면서 고려의 임금을 그리워했습니다. 주군을 연모하던 자리라고 해서 연주대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2024년 2월 13일 (화) 15:34 판

관악산 연주대(冠岳山 戀主臺) 연주대(戀主臺)는 관악산 연주암 북쪽 꼭대기 절벽에 위치한 경기도 기념물이다. 신라 문무왕 17년(667년)에 의상대사가 좌선공부를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 태조 원년(1392년)에 중건하였다. 고려의 남은 신하 강득룡, 서견, 남을진 등이 여기서 개성을 바라보고 통탄했다 해서 연주대라는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제상 채제공이 그의 유관악산기(遊冠岳山記)에는 연주대라고 하고 실제로 연주하는 곳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으며, 정조에게 올린 기록으로 왕조실록에서는 염주대 지금은 연주대 라고 하고있다

연주대(戀主臺)는 원래 의상대(義湘臺)라고 불렸습니다. 신라 고승 의상조사가 관악산의 수려함에 끌려 산정에 암자 의상대를 세웠다고 합니다. 의상대(義湘臺)라는 이름이 연주대(戀主臺)로 바뀐 것은 고려의 충신들 때문이었습니다. 고려가 멸망하자 강득용(康得龍)과 서견(徐甄), 남을진(南乙珍), 조견(趙狷) 등 고려의 유신(遺臣)들은 관악산으로 은신을 했습니다.

그들은 의상대에 올라 개성을 바라보면서 고려의 임금을 그리워했습니다. 주군을 연모하던 자리라고 해서 연주대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