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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오륜, 이색, 최문한, [[서견]], 원천석, 구홍, 길재
 
전오륜, 이색, 최문한, [[서견]], 원천석, 구홍, 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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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그저 한자로 옮겨놓은 것 같지만, “벙어리처럼 말을 삼가고 배고픔을 견디며 오로지 충의를 밝히자”는 비장한 의미를 담고 있는 가사다. ‘도원’은 고려 충렬왕 때 정선의 이름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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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가곡은 정선가곡이나 다름없다. 이 가곡은 처음 공개될 때 큰 주목을 받았는데, 무엇보다도 정선아리랑의 존재를 고려 말까지 끌어올린 근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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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현 기리는 비석엔 그들의 한시 새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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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거칠현동 어귀에는 작은 공원이 마련돼 있는데, 이곳에는 7현을 기리는 비석과 사당 칠현사(七賢祠)가 세워져 있다. 또 이와 별도로 높다란 기단 위에 세워진 팔각형 비석의 한 면에는 ‘高麗遺臣七賢碑(고려 유신 칠현비)라 새겨져 있는데, 다른 7면에는 7현들의 한시가 한 편씩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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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來朝服在臣身/ 동쪽으로 올 때 가지고 온 조복으로 갈아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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遙望松京哭滿巾/ 송도를 바라보니 애달파 눈물만 흐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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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虞世遠吾安適/ 요순성대 가버렸으니 어디서 머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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矯首西山繼絶塵/ 서산을 향하고 세상 인연을 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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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미헌(採薇軒) 전오륜의 시다. 이 시는 개성의 남동쪽에 있던 광덕산 부조현에서 조복(朝服)을 벗어던지고 두문동으로 들어가 머물던 상황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 동쪽을 정선 땅으로 생각해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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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쉬움이 있다. 칠현비와 칠현사가 세워진 곳은 거칠현동의 입구일 뿐이다. 거칠현동은 공원 안쪽 계곡으로 10리나 된다는데, 조금 걸어 들어가 보니 난파(難破)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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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석회암 광산이 있었다. 골동품의 가치가 있는 문짝을 불쏘시개로 써버렸던 시절처럼, 역사문화자원이자 관광자원을 깨뜨리고 있으니 가슴 아픈 일이다. 정선에 살고 있는 정선 전씨들이 군청과 광산을 찾아가 항의해봤지만, 공사는 그치지 않고 있다. 아리랑 가락이 울려 퍼져야 할 곳에 발파음이 난무하니 패망한 고려의 참상을 보는 듯하다.

2024년 2월 13일 (화) 15:18 판

도원가곡비의 7현

전오륜, 이색, 최문한, 서견, 원천석, 구홍, 길재

소리를 그저 한자로 옮겨놓은 것 같지만, “벙어리처럼 말을 삼가고 배고픔을 견디며 오로지 충의를 밝히자”는 비장한 의미를 담고 있는 가사다. ‘도원’은 고려 충렬왕 때 정선의 이름이었으니,

도원가곡은 정선가곡이나 다름없다. 이 가곡은 처음 공개될 때 큰 주목을 받았는데, 무엇보다도 정선아리랑의 존재를 고려 말까지 끌어올린 근거가 됐다.

7현 기리는 비석엔 그들의 한시 새겨져

현재 거칠현동 어귀에는 작은 공원이 마련돼 있는데, 이곳에는 7현을 기리는 비석과 사당 칠현사(七賢祠)가 세워져 있다. 또 이와 별도로 높다란 기단 위에 세워진 팔각형 비석의 한 면에는 ‘高麗遺臣七賢碑(고려 유신 칠현비)라 새겨져 있는데, 다른 7면에는 7현들의 한시가 한 편씩 새겨져 있다.


東來朝服在臣身/ 동쪽으로 올 때 가지고 온 조복으로 갈아입고

遙望松京哭滿巾/ 송도를 바라보니 애달파 눈물만 흐르네

唐虞世遠吾安適/ 요순성대 가버렸으니 어디서 머물리요

矯首西山繼絶塵/ 서산을 향하고 세상 인연을 끊네

채미헌(採薇軒) 전오륜의 시다. 이 시는 개성의 남동쪽에 있던 광덕산 부조현에서 조복(朝服)을 벗어던지고 두문동으로 들어가 머물던 상황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 동쪽을 정선 땅으로 생각해도 잘 어울린다.

그런데 아쉬움이 있다. 칠현비와 칠현사가 세워진 곳은 거칠현동의 입구일 뿐이다. 거칠현동은 공원 안쪽 계곡으로 10리나 된다는데, 조금 걸어 들어가 보니 난파(難破)돼 있었다.

그곳엔 석회암 광산이 있었다. 골동품의 가치가 있는 문짝을 불쏘시개로 써버렸던 시절처럼, 역사문화자원이자 관광자원을 깨뜨리고 있으니 가슴 아픈 일이다. 정선에 살고 있는 정선 전씨들이 군청과 광산을 찾아가 항의해봤지만, 공사는 그치지 않고 있다. 아리랑 가락이 울려 퍼져야 할 곳에 발파음이 난무하니 패망한 고려의 참상을 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