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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하천(福河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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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관련항목 보기 독조봉 동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여주군 흥천면 복대리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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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하천의 발원지가 되고 있는 용인시 양지면은 남북고동서저(南北高東西低) 지형 형태에다 주위가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성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를 동·서류하는 하천들에 의해서 하곡지가 발달되어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유명한 “이천쌀”의 생산지가 청미천과 복하천 유역이다. 제일리 마수고개를 분수계로 하여 서류하는 주북천·양지천 등 경안천 상류와 동류하는 복하천 상류로 나눌 수 있다. 이 하천들은 경사가 느린 완류형 하천이다. 복하천은 남한강의 지천으로 유역 면적은 124.11㎢, 유로 연장은 18.7㎞, 하천 연장은 15㎞이며, 홍수량은 800m³/sec, 하폭은 110m이며, 2급 하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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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하천의 옛 이름은 [[남천]](南川)이다.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에는 [[복하천]](福河川)이 이천과 양지의 경계에 있는 양각산(洋角山)[386m]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삼국시대에 이천은 고구려의 남천현(南川縣)이 되었으며, 568년(진흥왕 29)에는 남천주를 설치하면서 남천정(南川停)을 두었다. 따라서 옛 이름 [[남천]](南川)은 이천의 옛 남천현명에서 유래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치러갈 때 이천에서 진을 치게 되었다. 이때 주민 [[서목]](徐穆)이 도와서 무사히 남천을 건넜다 하여 이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즉 그 어원은 “강을 건너감이 이롭다”라는 [[이섭대천]](利涉大川)에서 두 글자를 따서 이천(利川)이 되었다는 것이다. 현 지명인 [[복하천]]은 하천 연변에 있는 복하에서 유래되었다. 복하천 중류에 해당되는 이천시 부발읍 신원리 지역의 하천 연변에 복하(福河)마을이 있다. 19세기에 발간된 『이천부읍지』에도 이천군의 옛 이름이 [[남천]](南川)이고, 군의 동쪽 6리에 [[복하천]]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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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면 분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서쪽의 주북천·양지천, 그리고 동쪽의 복하천 노선을 제외하고는 금백산[418.4m]·형제봉[460m]·독조봉[432m]·건지산[410.4m] 등 대부분 500m 미만의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국도 42호선이 하곡지 연변을 따라서 동서로 발달되어 있다. 산지의 하천에서 운반된 풍화산물들이 평지를 만나면서 유속이 약해져서 복하천 연변에 퇴적되어 곳곳에 넒은 충적지를 만들어 답작 지대로 이용되고 있다. 양지면 세천 주변에는 큰 평야가 없지만 [[복하천]] 본류가 흐르는 이천 지역에는 호법면 일대에 대평야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용인시 양지면 독조봉에서 발원한 [[복하천]]은 추계리에서 동쪽으로 꺾이어 흐르다가 이천시 마장면 우천리에서 다시 남동쪽으로 꺾여 흘러서 호법면 단천리에 이르러 다시 동쪽으로 지난다. 후안리에 이르러 남쪽에서 유입해 오는 가동천과 서쪽에서 흘러오는 표교천을 합해 가지고 북쪽으로 꺾이며, 대월면·부발읍과 안흥동, 백사면의 경계를 이루며 여주군 흥천면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남한강에 유입된다. [[복하천]] 연변의 구릉성 산지들은 침식에 강한 편마암류가 주이고, 하천 연변은 화강암의 분포가 많아 장기간의 상대 침식에 의해서 저지가 되고, 이 위에 산지의 풍화산물인 토사가 퇴적되어 제4기 충적층을 이루어 풍부한 농업용수를 이용하여 답작 지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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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 양지면에서 발원하여 이천시 중앙을 가로질러 흐르면서 넓은 곡창 지대를 형성하는 복하천은 이천의 주천으로 옛날에는 수심이 깊어 남한강에서 직접 쌀을 실어 나르는 세곡선이 드나들었다. 지금은 상류 지역의 개발로 홍수로 인하여 하상이 높아졌고, 수량도 장마철을 제외하고는 많지 않다. 따라서 많은 자연 마을이 천변에 산재하고 있다. 이천의 젖줄로 하천 유역을 따라 형성된 평야 지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며, 이천 시민을 위한 상수도원이 되기도 한다. 부발읍 고담리에는 [[복하천]]을 따라서 고담제방이 인공적으로 축조되어 있고, 신하리에는 OB맥주 공장이 있다.

2022년 10월 26일 (수) 06:46 판

복하천(福河川)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관련항목 보기 독조봉 동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여주군 흥천면 복대리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복하천의 발원지가 되고 있는 용인시 양지면은 남북고동서저(南北高東西低) 지형 형태에다 주위가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성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를 동·서류하는 하천들에 의해서 하곡지가 발달되어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유명한 “이천쌀”의 생산지가 청미천과 복하천 유역이다. 제일리 마수고개를 분수계로 하여 서류하는 주북천·양지천 등 경안천 상류와 동류하는 복하천 상류로 나눌 수 있다. 이 하천들은 경사가 느린 완류형 하천이다. 복하천은 남한강의 지천으로 유역 면적은 124.11㎢, 유로 연장은 18.7㎞, 하천 연장은 15㎞이며, 홍수량은 800m³/sec, 하폭은 110m이며, 2급 하천이다.

복하천의 옛 이름은 남천(南川)이다.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에는 복하천(福河川)이 이천과 양지의 경계에 있는 양각산(洋角山)[386m]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삼국시대에 이천은 고구려의 남천현(南川縣)이 되었으며, 568년(진흥왕 29)에는 남천주를 설치하면서 남천정(南川停)을 두었다. 따라서 옛 이름 남천(南川)은 이천의 옛 남천현명에서 유래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치러갈 때 이천에서 진을 치게 되었다. 이때 주민 서목(徐穆)이 도와서 무사히 남천을 건넜다 하여 이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즉 그 어원은 “강을 건너감이 이롭다”라는 이섭대천(利涉大川)에서 두 글자를 따서 이천(利川)이 되었다는 것이다. 현 지명인 복하천은 하천 연변에 있는 복하에서 유래되었다. 복하천 중류에 해당되는 이천시 부발읍 신원리 지역의 하천 연변에 복하(福河)마을이 있다. 19세기에 발간된 『이천부읍지』에도 이천군의 옛 이름이 남천(南川)이고, 군의 동쪽 6리에 복하천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양지면 분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서쪽의 주북천·양지천, 그리고 동쪽의 복하천 노선을 제외하고는 금백산[418.4m]·형제봉[460m]·독조봉[432m]·건지산[410.4m] 등 대부분 500m 미만의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국도 42호선이 하곡지 연변을 따라서 동서로 발달되어 있다. 산지의 하천에서 운반된 풍화산물들이 평지를 만나면서 유속이 약해져서 복하천 연변에 퇴적되어 곳곳에 넒은 충적지를 만들어 답작 지대로 이용되고 있다. 양지면 세천 주변에는 큰 평야가 없지만 복하천 본류가 흐르는 이천 지역에는 호법면 일대에 대평야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용인시 양지면 독조봉에서 발원한 복하천은 추계리에서 동쪽으로 꺾이어 흐르다가 이천시 마장면 우천리에서 다시 남동쪽으로 꺾여 흘러서 호법면 단천리에 이르러 다시 동쪽으로 지난다. 후안리에 이르러 남쪽에서 유입해 오는 가동천과 서쪽에서 흘러오는 표교천을 합해 가지고 북쪽으로 꺾이며, 대월면·부발읍과 안흥동, 백사면의 경계를 이루며 여주군 흥천면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남한강에 유입된다. 복하천 연변의 구릉성 산지들은 침식에 강한 편마암류가 주이고, 하천 연변은 화강암의 분포가 많아 장기간의 상대 침식에 의해서 저지가 되고, 이 위에 산지의 풍화산물인 토사가 퇴적되어 제4기 충적층을 이루어 풍부한 농업용수를 이용하여 답작 지대가 된 것이다.

용인시 양지면에서 발원하여 이천시 중앙을 가로질러 흐르면서 넓은 곡창 지대를 형성하는 복하천은 이천의 주천으로 옛날에는 수심이 깊어 남한강에서 직접 쌀을 실어 나르는 세곡선이 드나들었다. 지금은 상류 지역의 개발로 홍수로 인하여 하상이 높아졌고, 수량도 장마철을 제외하고는 많지 않다. 따라서 많은 자연 마을이 천변에 산재하고 있다. 이천의 젖줄로 하천 유역을 따라 형성된 평야 지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며, 이천 시민을 위한 상수도원이 되기도 한다. 부발읍 고담리에는 복하천을 따라서 고담제방이 인공적으로 축조되어 있고, 신하리에는 OB맥주 공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