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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산의 제일경인 정방폭포 해안에 닻을 내린 서불은 영주산에 올라 불로초를 구한 후 서쪽으로 돌아갔다.
 
영주산의 제일경인 정방폭포 해안에 닻을 내린 서불은 영주산에 올라 불로초를 구한 후 서쪽으로 돌아갔다.
서불이 돌아가면서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는데, [[서귀포]]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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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불이 돌아가면서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는데,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서귀포 [[서복 기념관]]은 이러한 자료를 수집하여 전시한 곳이다.
 
그래서 서귀포 [[서복 기념관]]은 이러한 자료를 수집하여 전시한 곳이다.

2022년 9월 30일 (금) 07:19 판

서불과차(徐不過此)

서불과지(徐市過之) : 제주 서귀포 정방폭포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부두로 5번길 9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동 962

서불과차는 제주도에 있는 정방 폭포 옆 암벽에 새겨져 있는 곳이고, 또한 한 곳은 남해 금산 아래 각석이 새겨져 있으며, 통영 소매물도 글씽이 굴에 각석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불노초 란?: 제주도 한라산(영주산)에 있는 시로미, 영지버섯, 당귀라고 한다.)

제주도 정방 폭포 각석에 새겨진 서불과지(徐市過之)는 서귀포에 전해오는 서복(서불)(徐市 서복(徐福)이라고 함)에 대한 전설은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라는 마애명으로부터 비롯된다.

이것은 진시황의 사자인 “서불(徐市)”이 시황제의 불노장생을 위하여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 오백명(혹은 삼천명)과 함께 대신단을 이끌고 불로초가 있다는 삼신산(주1)의 하나인 영주산(한라산)을 찾아 향해를 하였다.

영주산의 제일경인 정방폭포 해안에 닻을 내린 서불은 영주산에 올라 불로초를 구한 후 서쪽으로 돌아갔다. 서불이 돌아가면서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는데,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서귀포 서복 기념관은 이러한 자료를 수집하여 전시한 곳이다. 파한록(破閒祿 上-김석익 저)에는 『귀포해안 절벽에 진나라 방사인 서불(徐市)이 새겨 놓았다는 글자 흔적이 있는데, 백락연(白樂淵)제주 목사(1877.1~1881.5)가 이러한 말을 듣고 정방폭포 절벽에 긴 밧줄을 내려 글자를 그려오게 하였다. 글자를 살펴보니 전부 12자 였는데 과두문자여서 해독 할 수가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 만약 서복이 불로초(황기)를 구하려 우리나라에 왔다면  대부분 서불과차라는 각서이 발견 된 곳은 남해, 거제, 제주 등지로 바닷가에 각석이 있는것으로  보아 배를 타고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